대음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진(환기 5537, 신시개천 2237, 단기 673, BCE 1661)년이다. 은나라 왕 소갑小甲(7세)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이 해에 세제를 개혁하여 80분의 1 세법으로 고쳤다.
재위 2년 신사(단기 674, BCE 1660)년, 홍수가 크게 나서 민가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임금께서 심히 불쌍히 여기시어 곡식을 창해, 사수 땅으로 옮겨 백성에게 균등하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 겨울 10월에 양운, 수밀이 두 나라 사람이 와서 방물을 바쳤다.
재위 10년 기축(단기 682, BCE 1652)년에 임금께서 서쪽의 약수에 순행하여, 신지 우속에게 명하여 금과 철과 기름을 채취하게 하셨다. 가을 7월에 우루 사람 20가구가 투항해 오므로 염수 근처의 땅에 정착하게 하셨다.
재위 28년 정미(단기 700, BCE 1634)년에 임금께서 태백산에 올라 옛 성조들과 여러 제후국 왕의 공적을 새긴 비석을 세우셨다.
재위 40년 기미(단기 712, BCE 1622)년에 아우 대심을 남선비국의 대인으로 봉하셨다.
재위 51년 경오(환기 5587, 신시개천 2287, 단기 723, BCE 1611)년에 대음단군께서 붕어하셨다. 우가 출신 위나가 즉위하셨다.
창해, 사수 땅: 우리 한민족의 고대사에 얽혀 있는 중요 쟁점의 하나이다. 창해를 일반적으로 발해로 본다. 여기서 사수는 단군조선의 번한 지역(중국 동북부 발해 연안)에서 찾을 수 있다. 산해경에 “북해, 즉 발해 안쪽에 뱀산이 있다. 그곳에서 사수가 나오는데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남선비국: 내몽골에 위치
염수: 최근에 염수의 위치는 요하 상류 파림좌기(요나라 수도 상경 일대)로 밝혀졌다. 고구려 광개토열제가 후연을 치기 전 군마를 얻기 위해 정복한 지역이기도 하다. 1930년대에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기 위해 제작한 지도에서는 이 일대를 ‘고려 아이리(아이리는 몽골말로 마을을 뜻함)’라고 표기하였다. 현지 주민들은 그 마을이 부근에 있는 ‘고려강’이라는 이름을 딴 것이라고 증언했다.(KBS 역사스페셜, ‘대고구려 1부’ 2000.1.1.)
-행촌 이암선생의 단군세기, 환단고기 역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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