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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단군세기

단군세기: 12세 단군 아한 재위 52년

by 광명인 2023. 7. 30.

아한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해(환기 5364, 신시개천 2064, 단기 500, BCE 1834)년이다.

재위 2년 무자(단기 501, BCE 1833)년 여름 4월에 외뿔 달린 짐승이 송화강 북변에 나타났다. 가을 8월에 임금께서 나라를 순행하시다가 요하遼河의 왼쪽에 이르러 순수관경비를 세우고, 역대 제왕의 명호를 새겨 전하셨다. 이것이 금석문金石文으로 가장 오랜 것이다. 후에 창해 역사 여홍성이 이곳을 지나다가 시한 수를 지었는데, 그 시는 이러하다.

이곳 들판 예로부터 변한이라 불렀는데 유난히 특이한 돌 하나 서 있구나.
토대는 무너져 철쭉꽃이 붉게 피었고 글자는 이지러져 이끼만 푸르네.
저 아득한 태고 시절에 만들어져 흥망의 역사 간직한 채 홀로 서 있구나.
문헌으로 고증할 길 없지만 이것이 단군왕검의 자취가 아니겠는가!

왕개토태왕릉비: 금석문이란 금속이나 석물에 세겨진 글씨와 그림을 총칭한다.

재위 29년 을묘(단기 528, BCE 1806)년에 조칙을 내려 청아 욕살 비신서옥저 욕살 고사침맥성 욕살 돌개열한으로 봉하셨다.

재위 52년 무인(환기 5364, 신시개천 2064, 단기 500, BCE 1834)년에 아한단군께서 붕어하셨다. 우가 출신 흘달이 즉위하셨다.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요하遼河의 변천: 여기서 요하는 지금의 난하灤河를 말한다. 이 강을 경계로 동쪽을 요동, 서쪽을 요서라 한다. 이 요하의 위치는 고대 한.중 관계사에서 쟁점이 되어 왔던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 국력이 강성할 때에는 요수가 난하 서쪽에 있었고, 국력이 약할 때는 난하 동쪽 대릉하, 요하 등으로 바뀌어 국경 하천을 대표하였다. 요수의 명칭이 지금의 요하로 고정된 것은 요遼(916~1125) 건국 이후의 일이다. 종래에 한, 중 고대사에 나오는 모든 요수를 무조건 지금의 요하로 인식하게 된 것은 사대 식민주의 사학이 왜곡, 날조한 설을 아무 비판없이 답습한 결과이다.

참고로, 난하에 대해서는 다음의 흑룡의 블러그(클릭하시면 연결됨)에 잘 나와 있습니다. 금석문에 대해서는 백민 이양재님의 기사를 참조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금석문으로 가장 오랜 것: 단기고사에는 아한단군이 유위자와 대화 후에 “‘선생은 진실로 천고의 신인이라’하시고, 사방 국경에 비석을 세우고 제왕의 명호를 본국의 문자로 새겨 국문이 영원히 보전되게 하시니라”라고 하였다.

여홍성: 진조선이 연燕, 조趙와 격전을 치르는 동안 진나라가 강성하여 마침내 한, 조, 위, 연, 제, 초 등 6국을 병탄하여 천하를 통일하였다. 그러자 한인 장량이 망국의 한을 품고 조선에 들어와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왕모병이 창해역사 여홍성을 소개해 주었다. 여홍성은 120근 철퇴를 가지고 양무현 박랑사(지금의 하남성 원양현의 동남)에서 진시황을 저격하였다. 그러나 부거(수행원의 수레)만 부수고 성공하지 못하였다 (사기의 유후세가)

-행촌 이암선생의 단군세기, 환단고기 역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