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가정과 국가 나아가 세상을 화평하게 다스리는 궁극적인 일도 결국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는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가능하다는 유가의 대학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죠. 평이하지만 매우 근본주의적인 메세지를 전하는 구절이라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세상의 큰 물줄기를 바꾸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해 가는 사람들은 처음엔 대부분 사회로 부터 오해를 받고 부정당하지만,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엔 그들의 이상을 세상에 구현해 내게 되죠.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김주환 교수는 마음근력이 핵심 요인이라 주장합니다. 저도 동의하는데요, 결국 이상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는 사회의 정치 경제적 구조뿐만 아니라 개인의 몸과 의식의 구조도 함께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염표문에서 제시하는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길인데요. 일신강충一神降衷, 성통광명性通光明, 재세이화濟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 즉, 먼저 자신의 밝은 본성을 깨치고, 그 밝음으로 세상을 교화해야 이상세계가 완성된다는 것이 고대 동방 한민족의 제왕들이 전수해온 깨달음의 핵심입니다.]
[나를 바꾸는 것이 곧 세상을 바꾸는 것]
내면소통 명상에 대한 강의를 할 때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산적한 사회문제나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혼자 앉아서 명상이나 하고 있으면 되겠는가, 너무 '나'의 문제만 파고드는 것은 아닌가, 혹은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모두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들이다. 모두 맞는 이야기다. 개인적인 차원만 들여다봐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인 차원을 아예 들여다보지 않는 것은 더욱 곤란하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잘 들여다보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구성원의 마음근력을 튼튼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모든 것을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돌리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만을 탓하고 있는 것으로는 어떠한 변화도 가져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인식했으면 그것을 바꾸고자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가 가능하려면 반드시 개개인의 마음근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마음근력이 약하면 그러한 시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마음근력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는데 모두 '나'에 관한 것이다. 마음근력은 '내가' 나 자신을(자기조절력), '내가' 다른 사람을(대인관계력), '내가' 세상일을(자기동기력) 더 잘 다루는 능력이다. 마음근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곧 나를 바꾼다는 뜻이다. 나를 바꾼다는 것은 곧 세상을 바꾼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내가 달라지면 내가 사는 삶과 환경이 달라진다.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나의 환경과 세상은 나의 존재 이전에 고정된 실체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의 환경은 나와 세상이 만나서 형성되는 지각편린들에 의해서 구성된다. 나의 세상은 내 몸과 세상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생산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곧 나를 바꾸는 것이고, 또한 나를 바꿈으로써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나를 바꾸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개인의 마음은 따라서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통적으로 거의 모든 학문은, 특히 각종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개인을 늘 피동적인 존재로만 봐왔다. 한 인간을 역사와 사회구조로부터 수동적으로 영향을 받기만 하는 나약한 존재로 보는 유구하고도 변함없는 관점을 자랑하는 것이 오늘날의 인문사회과학이다. 사람의 태도와 행동과 인식이 객관적인 역사적·사회적·경제적·문화적·정치적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치구조가 투표 등의 정치 행태를 결정하고, 경제적 조건이 경제활동 방식을 결정하며, 역사와 문화 등이 한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인간의 의지 밖에 존재하는 '사회적 구조'가 독립변인이고,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그에 의해서 결정되는 종속변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런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의 세계관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나 혁명은 처음부터 아예 불가능 해진다. 의무교육에서는 인간의 의지, 행동, 생각이 독립변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인간 하나하나를 사회적 톱니바퀴의 부품으로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 현재 교육 시스템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면 개인이 구조를 바꿀 수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역사는 결국 개인들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분명히 깨우쳐주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믿는 사람은 소수의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의무교육이 제공하는 학교 수업으로부터 세뇌당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늘 예외적인 존재다. 그러나 역사는 항상 그런 예외적인 '미친 사람들'에 의해서 이뤄졌다. 그런 미친 사람들이 항상 세상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러한 미친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의 결과물이다. 변화를 원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사회구조에 근 본적인 변화를 꿈꾼다면 인간을 독립변인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한 인간이 정치적·사회적 조건에 의해서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만 살펴볼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이 속한 정치적·사회적 조건에 어떻게, 언제,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한 인간에게 사회구조를 바꾸겠다는 '변화의 의지'가 어떻게 발현되며, 그러한 의지를 관철하는 힘은 무엇인지도 연구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그러한 것을 연구하는 학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개인이 전체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겠는지를 설명하는 이론도 들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학교에서도 개인이 어떻게 자기가 몸 담고 있는 사회와 구조를 스스로 바꿀 수 있는지는 가르칠 수조차 없다.
인간이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려 할 때 꼭 필요한 것이 강력한 마음근력이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자기조절력, 타인과의 협력과 설득을 이뤄내는 대인관계력,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끊임없는 열정을 불러일으키기는 자기동기력 없이는 어떠한 일도 성취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근력이 약한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결코 원하는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 없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야 변화와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마음근력이 강한 사람, 즉 자기가치감과 자기존중심을 바탕으로 강력한 자기조절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만이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책임감,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발휘할 수 있다. 비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들, 타인에 대해 유형·무형의 비인간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근력이 나약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개 자기파괴적이다.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파괴하기 전에 항상 주변의 사람들을 먼저 파괴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폭력이다. 폭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가 그 사회의 민주주의의 척도다. 공정과 정의도 폭력을 기반으로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치 과정에서 모든 폭력을 몰아내는 것이 민주주의다. 인간의 폭력은 두려움과 분노 등 부정적 정서를 기반으로 한다. 마음근력이 약한 사람은 두려움과 분노를 기반으로 폭력을 행사하게 마련이다.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나가려면 감정조절과 건강한 마음근력을 지닌 구성원들이 필요하다. 마음근력을 키우자는 것은 따라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조건을 만들어가자는 제언이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사회구성원들의 마음근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은 따라서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 제기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이고도 공동체적인 제안인 셈이다.
-출처: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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