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잃어버린 한국사의 9천년 국통맥
1) 뿌리 깊은 한국사
동학, 9천년 역사를 깨우다
개벽사상은 19세기 조선이 낳은 가장 위대한 사상입니다. 개벽은 자연개벽, 즉 자연환경의 대변화 뿐 아니라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인간개벽, 그리고 인류 문명의 질적 대비약을 의미하는 문명개벽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19세기 중반 최수운에 의해 선포된 동학의 핵심 메시지는 이 개벽사상에 있습니다.
『아시아 이상주의Asian Millenarianism』의 저자인 이홍범 박사에 따르면, 동경대와 미국의 명문대학에서도 동아시아의 근대사와 한국의 근현대사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동학혁명을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합니다.
[참고: 아시아 이상주의, 이 책은 바그너(Rudolf G. Wagner) 같은 미국의 저명한 학자들의 부탁에 의해 저술되었다. 미국의 학자들은 새 세상이 열린다는 동학의 개벽메시지를 알고 싶었지만, 동북아 3국의 문헌을 두루 읽을 수 있는 실력이 안 되었다. 이홍범 박사가 그런 능력이 되었기에, 반드시 동학을 연구해야 한다고 부탁했다고 한다. "아시아 이상주의"는 미국 아이비리그의 명문대에서 동양사 교재로 채택될 만큼 명저로 꼽히고 나아가 미국의 상류 지식인 계층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이홍범 박사는 한국 고대사가 '이상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고, 한국 고대사를 모르면 동학에서 선포된 근대사의 출발의 의미도 알 수 없다고 역설합니다.
그런데 한민족의 고대사도, 근대사도 왜곡되어 이 땅에서 선포된 진정한 인류의 새 역사 선언인 개벽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일본이 심어놓은 식민지 유산을 청산하지 못하고, 일본이 왜곡한 잘못된 식민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개벽의 참뜻이 무엇인지, 개벽이 왜 이 땅에서 선포되었는지를 알려면,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뿌리 문화를 알아야만 동학에서 선포한 '다시개벽'과 '시천주侍天主'의 참 뜻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홍범 박사의 책을 읽고서 고대 한국이 황하문명권을직접 통치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한국과 대중국관이 바로 서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존경하게 되었고, 한국 문화와 교육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홍범 박사는 현재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미국의 명예장관(국정자문위원, kitchen cabinet)이다.]
문명개벽과 인간개벽 차원에서 개벽의 핵심 주제는 '뿌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뿌리가 어디인지 인류 시원 문명 개벽의 비밀을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민족과 인류문명의 뿌리 - 환국桓國
한민족과 인류사의 뿌리를 밝혀주는 역사서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9,200년 전에 중아시아 천산天山(일명 파내류산)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추대를 받은 통치자가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문명 집단이 형성되었습니다. 그것을 『환단고기』 「삼성기三聖紀」 상上은 이 나라를 환족桓族이 세운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桓國'이라 전합니다.
○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
(우리 환국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 되었다.)(『환단고기』「삼성기」상)
○ 석유환국昔有桓國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환단고기』「삼성기」하)
| 환국 12국 |
비리국卑離國 | 양운국羊雲國 | 구막한국寇莫汗國 |
| 구다천국句茶川國 | 일군국一群國 | 우루국虞婁國 | |
| 객현한국客賢汗國 | 구모액국句牟額國 | 매구여국賣句餘國 | |
| 사납아국斯納阿國 | 선비국鮮卑國 | 수밀이국須密爾國 |
천산天山이 중심인 환국은 그 영토가 동서 2만여 리, 남북 5만여 리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중앙아시아에서 시베리아, 만주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입니다.
환국의 통치자를 환인桓因이라 하였는데 초대 환인은 안파견安巴堅환인이었습니다. 안함로의 『삼성기』 상은 '안파견 환인이후 환국이 7세 환인까지 계승되었으며 햇수로는 총 3,301년(BCE 7197~BCE 3897)이었다'라고 하였습니다. 환국은 모두 아홉 족속[九桓]으로 이루어졌고, 이 9환족은 열두 나라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환국의 역사를 밝힌 『환단고기』는, '하늘의 광명(환桓)과 땅의 광명(단檀)을 체험하고 살았던 역사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환국 시절은 인류가 모두 광명을 체험하고 자연과 하나 되며 살며 장수를 누렸던 황금시대였습니다. 환국의 황금시대와 장수문화는 「장자」,「마제」,「황제내경」, 인도 신화, 성서의 에덴동산 이야기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한민족사 최대의 왜곡, 석유환인
한민족의 정통 역사는 9천여 년 전 광명의 나라 환국桓國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환국은 신시(배달), (옛)조선으로 이어집니다. 『삼국유사』에는 이에 대한 아주 짤막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 고기古記에 운云 석昔에 유환국有桓國하니
옛 기록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국'이 있었나니.
그런데 『삼국유사』의 이 기록은 안타깝게도 우리 상고사를 신화로 만드는 치명적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저자인 일연이, '석유환국'이라는 구절 옆에 '위제석야謂帝釋也(환국은 제석을 말한다)'라고 주석을 달아 놓아 역사왜곡의 빌미를 제공한 것입니다. '제석'은 인도 신화의 인드라 Indra 신으로, '제석환인'으로 환역된 단어입니다. 일연은 스님으로서, 우리의 역사를 불교의 세계관으로 바라보고 기록하여 '환국'을 '제석'으로 해석해 놓은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악용하여 일본은 환국의 역사를 말살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사를 왜곡시키기 위해 조직된 〈조선사편수회〉 3인방의 한 사람인 이마니시 류今西龍(1875~1932)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석유환국書有桓國'의 '국國' 자 가운데를 쪼아 '인因' 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러하여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書有桓國)"라는 것을 "옛적에 환인이 있었다(昔有桓因)"로 날조해 버렸습니다.

『삼국유사』경덕본(좌)과 경도제대 영인본(우) | 1926년 일본 경도제대 후지타 지도라 교수와 이마니시류 조교가 공모하여 삼국유사 경덕본을 극비리에 날조하고 영인하였다. 그들은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관계 요로에 경도제대 영인본이라는 이름으로 대량 배부하였다.
이에 따라 인류 최초의 나라 환국은 신화가 되어 버리고 환국의 국통을 계승한 배달과 배달을 계승한 단군조선의 역사가 완전히 뿌리 뽑혀 버렸습니다. 한민족 7천 년 고대 역사의 핵이 도려내지고, 한민족의 혼백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것입니다.
동북아에 새운 한민족 최초의 국가, 배달 동이
환국은 중앙아시아 천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인류사의 뿌리 시대이자 황금시대였습니다. 그런데 환국 말에 중앙아시아가 급속히 건조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곳에서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은 새 터전을 찾아 동서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면 환국의 정통정신을 계승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환국 말에 환인은, '서자부庶子部'의 수장首長인 환웅에게 인간을 널리 구제하라는 명을 내리시어, 동방의 태백산(백두산, 三神山)으로 파견하였습니다. 인간을 널리 구제하고 싶은 간절한 꿈을 간직하고 있던 환웅은, 환인께서 종통계승의 신권神權의 상징으로 내려 주신 천부인 세 종류와 동방문명 개척단 3천 명을 이끌고, 동방의 태백산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제1세 배달 환웅은 원주민인 웅족熊族을 통합하여, 3천 명의 문명개척단과 함께 신시神市에 수도를 정하고 '배달倍達'이라는 이름으로 새 나라를 건설하였습니다. 이분이 거발환居發桓 환웅이시며 이로써 동북아 한민족사의 문명국가인 배달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배달'은 밝음을 뜻하는 '배(밝)'와 땅을 뜻하는 '달'을 합친 말로서 '광명의 땅'을 뜻합니다. 우리 역사를 '배달의 역사'라 하고, 우리 민족을 '배달겨레'라 하는 것은 한민족사의 첫 번째 나라인 배달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거발환 환웅은 환인으로부터 국가 통치이념도 함께 전수 받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삼신의 가르침으로써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서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재세이화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배달국 사람들을 '동이東夷'라 불렀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학계는 동이의 뜻을 비하하여 왜곡시킨 중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를 '동방의 야만인(Eastern barbarian)'으로 각종 서책에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동이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동이의 '夷'는 '弓 + 大' 자가 합해진 글로, 동이는 '동방의 큰 활을 잘 쏘는 민족, 동방의 인자한 나라'를 의미합니다. 찬란한 해가 떠오르는 방위인 '동東'이란 말이 상징하듯이 동이는 문명을 선도한 광명민족이었습니다.
서양 문명의 뿌리, 수메르의 실체
환국은 열두 나라로 이루어졌는데 환국 말에 환국의 일파가 새 터전을 찾아 서쪽으로 진출하여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 문명을 건설합니다. BCE 40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여러 도시국가들을 세우고 뛰어난 문명을 건설하였던 수메르인은 자신들이 동방에서 왔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수메르인은 검은 머리 인종이었고, 교착어를 사용했고, 스승을 아버지라 부르는 군사부일체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수메르문명은 바빌론문명과 이집트문명, 페니키아문명 등으로 전수되었고 그리스문명으로 계승되었습니다.
문명의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문자입니다. 수메르인이 발명한 설형문자는 중동일대의 여러 민족들이 받아들여 국제적 문자로 사용되었습니다. 설형문자로 기록된 점토판이 대거 발견되면서 수메르문명을 비롯한 중동지역 고대문명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성서』의 창조 신화, 노아 홍수, 바벨탑 신화 등이 모두 수메르 신화가 그 원형인 것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기독교를 낳은 것은 유대인들인데 그들이 조상으로 내새우는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합니다. 아브라함이 신의 약속을 믿고 일가친척들이 사는 고향 땅 갈데아 우르를 떠나 낯선 가나안 땅으로 이주했기 때문입니다. 갈데아는 BCE 1천년경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정복한 민족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BCE 2천 년 전의 아브라함이 떠나온 우르는 정확히 말해 갈데아 우르가 아니라 수메르 우르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의 뿌리는 수메르에 있었던 것입니다.(유대인들의 역사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상정하면 4천 년 역사입니다. 그로부터 다시 천년이 흐른 후에 사울이 처음으로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이슬라엘 왕국이 주변의 강대한 제국들에 눌려 독립국으로 지낸 것은 7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슬라엘은 아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차례로 받다가 마침내 로마 제국에 의해 그 땅에서 쫓겨나 전 세계를 유랑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창세사를 다시 쓰게 한 홍산문화]
전설의 삼황오제 시대 유물 발굴
20세기에 인류의 창세 역사를 다시 쓰게 하는, 동북아 문화최대의 발굴 사건이 있었다. 만리장성 바깥, 요서 지역(발해연안지역)에서 발굴된, 전설의 삼황오제 시대 문화인 홍산문화가 그것이다.
홍산문화가 발굴되었지만 아무도 이 문화의 성격을 해석할 수 없었다. 이 홍산문화를 제대로 해석하여 한국 고대사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밝혀줄 수 있는 책이 『환단고기桓檀古記』다. 그런데 오늘날 강단사학자들은 『환단고기』를 위서로 단정하고 『환단고기』에 나오는 고조선 시대 천체관측설도 조작으로 몰고 있다. 당시에 그런 뛰어난 천문학이 있을 수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야인들은 3세기경부터 이미 0을 포함한 20진법 숫자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마야의 천문학은 매우 발달하여 그들은 1년의 주기를 365.2420일이라고까지 밝혔다.
당시의 천문학 관측 수준을 보여 주는 자료는 더 있다. 4백여 개의 거석 구조물을 조사한 바 있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알렉산더 톰 교수는,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매일매일 달이 뜨는 위치를 1초에 몇 분의 1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계산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었다. 그 후 곧 잊혀진 이 계산법은 3천 년이 지나서야 재발견되었다"라고 하였다. 『환단고기』에 보이는 천체관측의 내용이 사실임과 동시에 당시의 뛰어난 문명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홍산문화 중, 요서에서 발견된 소하서 문화는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이다. 소하서 유적은 7,000~8,000년 전에 만들어진 동방 한민족의 발해연안 빗살무늬토기와 그 연대가 일치한다. 발해연안 빗살무늬토기는 그 재질과 모양이 만주와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빗살무늬토기와 같은 계통이다.
요서의 여러 신석기 문화 가운데 세간의 가장 뚜렷한 관심을 끈 것이 홍산문화이다. 홍산문화는 내몽골의 적봉시에 위치한 산, 철광석으로 뒤덮여 산 전체가 붉게 보이는 '홍산紅山' 에서 이름을 따 명명한 것이다.

홍산문화는 1979년 객좌현 동산취촌東産嘴村 유적 발굴과 그 인근의 우하량촌牛河梁村 유적 발굴(1983년)을 계기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동산취에서 엄청난 제사 유적이 발견되고, 우하량에서 무덤(塚), 신전(廟), 제단(壇)이 한꺼번에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총塚 · 묘廟 · 단壇을 인류의 정신문화를 가늠게 하는 3요소라 한다. 이 3요소가 함께 나온 것은 일찍이 다른 신석기 문화 유적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일이다.

BCE 4천 년~BCE 3천 년경 요서에서 문명을 일군 주인공들은 바로 배달 동이족이다.
우하량의 여러 유적 중에서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제2 지점의 원형 제단으로 최하단의 직경이 22m에 달하며, 3단 높이로 지어졌다. 이 제단과 함께 조성된 방형 적석총은 '하늘의 덕성을 원만하고 땅의 덕성은 방정하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반듯하다'는 동양의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천원지방의 구조는 배달 시대 이후 단군조선 때 지은 강화도 마리산의 참성단, 명나라 때의 환구단, 조선 말기에 고종황제가 세운 환구단 등의 제천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양식이다. 5천 5백년 전의 배달 동이족이 세운 우하량 제단이 동북아 제천단의 원형인 것이다. 배달의 천제문화는 동북아뿐 아니라 인류 문화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세계 4대문명 중심으로 쓰인 인류 창세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
한민족의 전성기, 단군조선
초대 거발환웅이 배달을 개국한 지 1,565년, 마지막 18세 거불단환웅이 82세로 세상을 떠나자, 단군왕검이 천제의 아들로 추대되어 제위에 올랐습니다(신시개천 1565, BCE 2333). 단군왕검은 송화강 유역(지금의 흑룡강성 하얼빈)의 '아침 태양이 빛을 비추는 땅'인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였습니다. 단군조선은 도읍지를 이동함에 따라 크게 세 번 변천을 거쳤고 마흔일곱 분의 단군이 2,096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초대 단군왕검은 나라를 삼한, 즉 진한·번한·마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이것이 바로 단군조선의 국가 경영 제도인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입니다. 진한의 수도는 아사달(지금의 하얼빈), 번한의 수도는 안덕향(지금의 하북성 당산시), 마한의 수도는 백아강(지금의 평양)이었습니다. 일찍이 구한말의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은 삼한관경이 단군조선의 국가 경영 원리였음을 밝혀낸 바 있습니다.
단군조선은 또한 천자국이었습니다. 천자天子라는 말은 본래 삼신상제님의 심법을 체득하고 상제님을 대행하여 세상을 다스리던 환웅천왕, 단군왕검을 '천제자天帝子'라 한 데서 비롯됩니다. 이 신교의 삼신상제 신앙이 후에 중국으로 건너가 천자天子로 바뀐 것입니다.
단군조선은 그 영토가 동쪽으로는 한반도의 동해에 미치고, 북쪽으로는 흑룡강을 지나 시베리아까지, 남쪽으로는 규슈와 일본 본토까지, 서쪽으로는 몽골에 이르는 대제국이었습니다.
하가점夏家店은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의 한 촌락인데, 그 유적지의 상층에서 유목민 문화가 나타났고, 하층에서 BCE 2400~BCE 1500년에 걸친 농경 집단의 청동기문화가 나타났습니다. 이 하층에서 나온 비파형 청동검은 조선 청동기 문화의 대표적 유물로서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굴된 청동검과 동일합니다. 몽골과 만주, 한반도까지 단군조선의 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단군조선 개국과 삼한관경
초대 단군왕검은 9환족을 통치하여 아사달(지금의 흑룡강성 하얼빈)에 도읍하였다. '일신즉삼신神一卽三神' 과 천지인의 원리에 의해 고조선(BCE 2333년~BCE 238)을 진한, 마한, 번한의 삼한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이를 삼한관경이라 하며, 진한은 단군왕검께서 직접 다스리고, 압록강 이남의 마한(수도는 지금의 평양)은 웅백다熊伯多를 왕(부단군)으로, 요하 서쪽의 번한(수도는 지금의 하북성 당산시)은 치우천왕의 후손인 치두남蚩頭男을 각각 1대 왕으로 임명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한민족사의 잃어버린 고리, 북부여
단군조선의 역사가 신화가 된 이유 중 하나는, 단군조선과 고구려를 잇는 북부여의 역사가 말살되어서입니다. 환국-배달-단군조선의 7천 년 역사가 전개된 이후 한민족사는 북부여를 필두로 한 '열국列國시대'로 이어졌습니다.
단군조선 말기에 새 역사를 개척한 분이 바로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입니다. 해모수는 요하 상류에 위치한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BCE 239년에 웅심산(지금의 길림성 서란)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후 단군조선을 계승하여 북부여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BCE 232).
북부여는 4세 단군에 이르러 역사적인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한 무제가 BCE 108년에 요동을 넘어 북부여까지 침공하였는데, 이때 고두막한高豆莫汗이 분연히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였습니다. 이후 졸본卒本에서 나라를 열어(BCE 108) 졸본부여라 하고, 스스로 동명왕東明王이라 칭하였습니다. 나라를 구한 고두막한은 구국영웅으로 추앙받아 북부여의 5세 단군으로 즉위하였습니다(BCE 86).
북부여는 고두막 단군의 아들(6세 고무서)에 이르러 182년(BCE 239~BCE 58)의 짧은 역사를 끝내고 고구려(시조 주몽)로 계승됩니다.
그동안 중국의 역사 왜곡으로 북부여사가 누락되어 한민족의 국통맥은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즉, 고조선이 망한 뒤 어떻게 해서 고구려로 이어졌는지 분명치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환단고기』「북부여기」를 통해 잃어버린 북부여사를 찾아서 한민족의 국통맥을 온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북부여는 비록 단군조선을 계승하였지만, 단군조선의 전 영역을 흡수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단군조선의 옛 영토에는 북부여, 동부여, 서부여, 낙랑국, 남삼한, 옥저, 동예 등 여러 나라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열국시대는 그 후 사국(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시대를 거쳐 약 100년간의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시대로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북부여의 국통은 어디로 계승되었을까요? 북부여의 마지막 6세 고무서 단군은 주몽을 범상치 않는 인물로 여겨 둘째 딸인 소서노와 혼인시켜 사위로 삼았습니다. 아들이 없던 단군이 재위 2년 만에 붕어하면서 고주몽은 북부여의 7세 단군이 됩니다(BCE 58).
고주몽을 해모수의 아들로 알고 있지만, 고주몽은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의 4세손으로, 해모수의 둘째 아들인 고진의 손자 불리지와, 하백의 딸 유화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주몽'은 부여어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뜻합니다. 고주몽은 나라 이름을 북부여에서 고구려로 바꾸었습니다(BCE 37). 고구려의 등장은 북부여 이래 열국시대의 혼란상을 극복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고구려는 동부여의 잔여세력을 포함하여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의 열국을 모두 통합하였습니다.
한민족의 남북국 시대
고구려가 망하자 고구려의 장군이었던 대중상이 '고구려를 회복하여 부흥시킨다'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중상의 뒤를 이은 아들 대조영은 당나라군을 격파하고 6천 리의 강역을 개척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상당히 회복하고 국호를 '대진大震(동방의 큰 나라라는 뜻)'이라 하였습니다. 북쪽에는 고구려를 계승한 대진이, 남쪽에는 후신라(통일신라)가 들어서면서 남북국 시대가 펼처지게 됩니다.
단군조선 시대 사관 발리가 지은 『신지비사神誌秘詞』에 따르면, 한민족의 역사는 아홉 번을 바꿔며 전개됩니다. 그 예언처럼 실제로 우리나라는 ①환국 → ②배달 → ③단군조선 → ④북부여(열국 시대) → ⑤고구려·백제·신라·가야(사국 시대) → ⑥대진국·신라(남북국 시대) → ⑦고려 → ⑧조선 → ⑨대한민국으로 나라가 바뀌어 왔습니다. 이 아홉 번의 개국開國 과정이 바로 동북아 역사의 주역이자 인류 시원 문화 종족인 한민족의 국통 맥입니다.

9는 우주 분열의 끝을, 10은 통일을 상징하는 수입니다. 따라서 한민족의 역사가 아홉 번째 나라에서 열 번째 나라가 될 때에는 남북한뿐만 아니라 동서 문명이 통일되어 지상천국이 열립니다.
19세기 후반 동학의 창도자인 최수운 대신사는 지상천국이 도래한다는 '다시개벽'을 선포하였습니다. 우주의 통치자이신 아버지 하느님이 동방의 땅에 오셔서 지상 천국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천년왕국, 불교의 용화낙원 등은 모두 인류가 염원해온 지상천국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것이 도래하기 위해서는 천지의 틀이 전적으로 개벽되어야 합니다. 가을 대개벽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만물이 모두 살기殺氣를 뿜어내는 상극의 세상이 상생의 세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인류의 꿈인 이 지상낙원을 이루시기 위해, 인류 황금시절의 문화이며 유불선, 기독교 등 모든 종교의 모체인 신교를 열어주신 상제님이 바로 이 한국 땅에 강세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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