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삼위일체론은 9천년 전부터 전해내려온 동방 우주론의 삼극三極개념과 천부경의 일석삼극무진본一析三極無盡本,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의 개념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오히려 이해가 쉽고, 명확해지는 개념이지만, 동방의 삼신일체三神一體사상과 기독교적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은 엄연히 구분이 되는 개념입니다. 2000여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 특히 중세 교부 철학자들의 고뇌속에 다듬어진 삼위일체의 개념은 기독교 우주론의 진리적 한계가 명확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성령을 이해하는데 가치가 있는 개념이라 생각되어서 아래 삼위일체에 관한 짧은 유튜브 영상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1. 삼위일체가 뭐에요? 하나님은 세 분? 아니면 한 분? (3분)
https://www.youtube.com/watch?v=tY6J7SWU8sI
삼위일체에 대한 수많은 비유 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비유를 살펴보도록 하죠. 우선 달걀에 대한 비유입니다. 달걀은 달걀껍질과 흰자, 노른자 셋으로 구분되죠. 그러나 이 셋은 부분적으로 존재할 뿐 각자가 완전한 달걀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그 다음은 아빠에 대한 비유입니다. 아빠는 집에서 아빠로, 밖에선 동네 아저씨로, 회사에서 회사원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회사원이면서 동시에 아빠가 될 순 없겠죠.
어쩔 수 없이 저는 삼위일체에 대한 비유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한 본질을 중심으로 성부, 성자, 성령의 세 날개는 각자의 역할을 합니다. 세 날개가 함께 역사하면 하나의 날개처럼 되요. 비로소 우리에게 시원한 바람을 제공해 주죠.
어 목사님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되요. 삼위일체는 그 어떤 비유로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입니다. 신비는 신비 그 자체로 남게 될 때 빛을 발하는 법이죠. 삼위일체의 신비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성령님의 관계적인 연합으로 나타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또한 가족, 친구, 연인 사이에서도 역사하시죠. 그 역사는 온전한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랑은 그 어떤 말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 사랑은 서로 주고 받으며 그 안에서 하나됨을 경험할 수 있죠.
2.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없어요" (CBS 지식교양 채널) (4분)
https://www.youtube.com/watch?v=P5SISFR4pu4
어거스틴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졌으므로, 삼위일체를 제일 잘 이해하는 방식은 논리적인 방식이 아니라 인간을 관찰하는 거다. 그래서 인간에게 나타나는 삼위일체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흔적을 찾아내는 데, 그 중에 하나는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개념을 분석하면 사랑하는 사람, 사랑 받는 사람, 사랑, 이 세가지는 결코 분리되지도 않고, 서로 섞이지도 않고 그렇지만 이 세가지는 항상 같이 있다라는 거죠. 어떻게 이 셋이 하나인지는 신비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순간, 사랑과 사랑 받는 사람은 늘 함께 있는 거죠. (밑의 차영배 교수의 삼위일체론에 의하면 이 논리는 사벨리안주의, 즉 양태론을 양산할수 있는 일종의 이단사상으로 봄)
근데 어거스틴이 사랑을 가지고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 있었던 근거는 뭐냐면, 요한일서를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성서적 근거가 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추론을 한 거죠. 근데 위대한 신학자 답게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을 합니다. 굳이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 중에 한 분을 사랑이라고 말하려면 누굴 사랑이라고 해야할까요?
성부는 사랑하는 자, 성자는 사랑 받는 자, 성령은 사랑. 성령이 성부와 성자를 위해 사랑의 끈으로 연결시켜 주고 있죠. 하나님과 교회를 연결시켜 주는 것도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가능하고, 성령으로 인해 교회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가 될 수 있는 것이구요. 그리고 어거스틴이 얘기하는 삼위일체에 대한 통찰은 우리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만, 서로 나누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인 것 처럼 우리도 성령의 능력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3.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5분)
https://www.youtube.com/watch?v=kCVz24IBF94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삼위일체라고 하는 말이 참 어렵게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교회 현장에서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한 분 하나님이 계신데 그분이 학교에 가면 선생님, 교회가면 목사님, 집에 가면 가장, 이렇게 설명을 하죠. 한 분이 자기의 모양을, 혹은 역할을 바꾸어서 활동하는 것인데요. 이런 것들을 가리켜서 우리는 양태론, 혹은 모양을 바꾼다해서 변태론이라 부릅니다.
그런가 하면 그 하나님이 세 다른 분의 조합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리우스인데요. 아리우스는 성부 하나님은 100% 하나님이라고 생각했고, 성자는 90%, 또 성령은 80%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본질이 다른 세 신들의 조합, 이것이 삼위일체론이다라고 오해를 했죠. 이런 것을 가리켜 삼신론(기독교에서 말하는)이라 부릅니다.
교회는 이 두 가지 이해를 피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론이라는 것은 주 후 400년 이전에 다 확정된 교리로 말할 수 있는데요. 특별히 교회의 교부들 가운데 카파도키아 세 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 가운데 한 분이 이런 표현을 한 적이 있어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렇게 셋이 있는 것처럼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셋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성부라고 하는 분, 그 다음에 성자라고 하는 분, 그리고 성령이라고 하는 분, 이렇게 세 분이 계십니다는 말을 우리가 삼위三位(three persons)라고 하는 말로 표현하는 거지요. 삼위라고 하는 말은 우리 말로 바꾸면 세 분이란 말이 되겠죠.
자 그럼 일체一體(in the unity of the Godhood)라고 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일체라고 한 말을 오해해서 한 몸뚱아리 이렇게 이해한 사람이 있었죠. 칼빈 당시의 세르베투스라는 사람인데요. 이건 굉장히 큰 오해입니다. 일체라고 한 것은 하나의 본질, 즉 동일한 본질이란 말인데요. 성부라고 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도 영원하고 무한하고 불변한 하나님이시고, 성자라고 하는 분이 계신데, 그 분도 영원하고 무한하고 불변한 분이시고, 성령이라고 하는 분이 계신데, 그 분도 영원하고 무한하고 불변하신 분이시다 하는 점에 있어서 본질이 똑같다는 뜻이 되겠죠. 그래서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동일본질,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성부라고 하는 분, 성자라고 하는 분, 성령이라고 하는 분이 계셔요. 그래서 양태론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부라고 하는 분과 성자라고 하는 분과 성령이라고 하는 분은 그 본질이 다르지 않고, 동일하십니다. 그래서 아리우스적인 삼신론도 잘못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이런 표현을 쓸 때 각각 영원하고, 각각 무한하고, 각각 불변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렇게 세 분이 계신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삼위일체론에 대한 가장 분명한 설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요단강에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올때, 세례를 받으신 예수, 그 예수님 곁에 머물러 계신 성령, 그리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신 아버지,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동시간대 한 자리에 계실 수 있는 하나님, 그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아래는 전 총신대 총장을 역임한 차영배교수의 삼위일체에 관한 신앙고백 내용]
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믿습니다:
전에도 계시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그 누구에게서 나시거나 나오시지 아니하시고, 그 누구에게나 그 무엇에 속하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곧 신성의 근원이시며, 성자 하나님은 본래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셨고, 성령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심을 믿습니다.
성부聖父는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이시며, 성자聖子도 오직 한 분이신 독생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성령聖靈은 풍성하시고, 다양하게 역사하시는 '일곱 영'으로서 대언자이시고, 훼방하는 자를 영원히 사하시지 아니하시는,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전(全) 신격(神格)에서 나신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과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전 신격에서 나오시는 성령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참 하나님으로서 그 신성(神性)이 단일(單一)하시고 동질(同質)이시며, 그 영광과 권능이 동등하신 삼위(三位)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나신' 성자 하나님은 '낳으신' 성부와 '나심이 없는' 성령과 영원히 구별되며,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나오시는' 성령은 '나오심'이 없는 성부와 및 성자와 영원히 구별되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를 낳으시기 전, 또는 성령이 나오시기 전에 '고독한 하나님'으로 계셨다 하거나, 성자 하나님이 나시기 전, 또는 성령 하나님이 나오시기 전에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때가 있었다 하는 생각은 '영원한 나심과 나오심'에 어긋나는, 인간의 사색에 불과하고, '나심'과 '나오심'은 '시발(始發)'을 전제하는 '발생(發生)'이거나 '발출(發出)'이 아니며, '나심'은 '성탄(聖誕)'을 뜻하는 '출생(出生)'이 아니고, '나오심'은 신플라톤주의적 '유출(流出)'이 아님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나 성령이 될 수 없고, 성자 하나님이 성부나 성령이 될 수 없고, 성령 하나님이 성부나 성자가 될 수 없음을 믿습니다.
따라서 구약시대의 성부 하나님을 신약시대의 성자가 이어받았고, 오순절 성령강림 후부터는 성령이 성자를 이어받아 하나님은 항상 한 분 뿐이라는 '계승설'(successionism)은 일종의 단일신론적 양태론으로서 비성경적 이단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 증거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과 더불어 성령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사람을 만드실 때에 서로 의논하셨으며, 범죄한 직후에도 서로 대화를 나누셨고,,,, 그 앞에서 불이 강처럼 흐르는 성령을 보는 등, 구약시대에 주로 성자께서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시다가 마침내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마리아의 육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나셨으니, 세상 죄를 지시기 위하여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려고 죄있는 육신, 곧 우리 육신과 똑같은 '사륵스'의 모양으로 오셨으나 깨끗한 어린 양같이 순결하고 전혀 죄가 없음을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시고 그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여 사람마다 그리고 침입하는 신약시대, 곧 천국의 현림시대에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하늘의 별같이 많은 자기 백성들의 억만죄악을 구속하시고, 부활하신후 제자들에게 여러 번 보이시다가, 승천하사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계시면서, 오순절에 성령을 붓기 시작하셨고, 이 오순절에 오신 영광의 영과 동질동등한 성령을 자기 백성들에게 계속하여 부으심을 믿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진술하는 방법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이전의 교부들처럼 삼위(三位)가 어떻게 일체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길이 있고,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하나로부터 어떻게 삼위가 존재하는가"에 관한 생각, 이것은 "왜 하필이면 삼위三位냐, 사위四位일수도 있지 않느냐"라는 헛된 사색에 잠기지 않을 수 없게 하므로, 오히려 '나심'과 '나오심'의 근원 곧 신성의 근원이신 '성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위일체 교리를 진술하는 것이 월등하게 좋은 방법임을 믿습니다.
"본체(本體)가 하나이나, 삼위로 계신다"(웨스틈니스터 신조 2장 3절)라고 오역한 것을 읽은 한국 교회가 "한 본체가 삼위로 나타난다"라고 또다시 오해하면, 곧 '양태론'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단일한 신성에 삼위가 계신다"(In the unity of the Godhood there be three persons)라고 해야 옳은 번역이라는 것, 이 신조에는 '본체'라는 용어가 없고, 성경 어디에도 없는 것은 히1:3의 '본체'는 '휘포스타시스'로서 성부 하나님의 위격을 뜻하고, 빌2:6의 '본체'는 '모르훼에'이므로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의 '형체' 또는 '형상'임을 믿습니다.
삼위일체에 관한 비유들 예컨데, 사랑의 주체가 성부이고, 그 객체가 성자이며, 사랑 자체가 성령이라 하든가, 삼위를 지식의 주체와 수납자 및 지식자체라 하든가, 한 분이신 하나님이 집에서는 아버지이시고, 푸른 초장에서는 목자로서 양을 치시고, 학교에서는 성령으로서 가르치신다 하든가, 한 나무의 '뿌리' '둥지' '가지'라 하든가, '태양'과 '빛'과 '열' 등이라 비유하는 것은 사벨리안주의(Sabellianism), 곧 양태론으로 이끄는 이단사상임을 믿습니다.
따라서 '삼위(三位)'는 '三 位格', 곧 Westminster 신앙고백의 'three persons'(세 분)을 줄인 용어이며, 주 예수께서 "나와 아버지, 우리들은 '하나'이다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일체'(一體)는 '한 몸'이 아니고 '하나'(헨)이므로, '삼위일체'를 우리말로 '세 분의 하나' 또는 줄여서 '한 세분'이라 함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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