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성관련 정보

종교에서 영성으로

by 광명인 2023. 8. 25.

종교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젠 『종교에서 영성으로』 길희성 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jubMkR6kPGI&t 

책읽어주는 유튜버, 오후의 책방

길희성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센터 올라프 대학 종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강대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다. 저서로는 '인도철학사', '지눌의 선사상', '일본의 정토사상',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영성사상' '보살예수', '아직도 교회에 다니십니까', '신앙과 이성 사이' 그리고 이책의 원본인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등이 있다.

[영성이란 인간의 영적 본성인데, 이 본성은 감성이나 이성으로는 결코 접할 수 없는 깊은 실제, 그것을 우리가 만나도록 끊임없이 부추기고, 그것과 일치를 이루기 전에는 결코 만족을 모르는 우리들 영혼 깊숙히 뿌리 박고 있는 성향이라고 길희성 교수는 정의합니다. 

인간의 의식 및 정신 발달단계를 켄윌버는 인격형성 이전의 단계(의식되지 않은 지옥), 인격의 단계(의식된 지옥), 그리고 초인격의 단계(초의식적 천국)로 나누는데요. 이걸 조금 더 풀어보면 이성적, 합리적 판단력 없이 무조건적 욕망과 충동에 따라 동물적으로 행동하는 인격 형성이전의 의식되지 않은 지옥의 단계와, 자의식과 이성 그리고 합리성이 발달되고 인격이 형성되었지만 여전히 내적욕망과 끊임없이 갈등해야만 하는 의식된 지옥의 단계, 그리고 궁극으로 자의식과 이성을 초월한 초의식적 천국으로 나누는 것이죠. 그리고 초의식적 천국인 이 단계가 인간이 궁극으로 도달해야할 구원의 경지라 이야기합니다. 

18세기 서구 계몽주의 이후 개인주의와 평등주의 인간관이 인류의 보편의식에 자리잡게 되면서 개개인의 인격 권리중심의 삶이 강조되었지만, 지나친 자의식의 발달로 현대의 인간들은 자기분열 자기소외 의식에 빠지게 되고, 그로인해 점점 자연과 공동체로부터 소외되고 고립된 고독한 개인들이 늘어나게 되었죠. 따라서 분별적 이성에 대한 비판과 반작용으로 개체성을 넘어 전체성, 인격성을 넘어 초인격적 경지, 이성적 진리를 넘어 초이성적 진리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인류가 지향해야할 세상은 인격성과 합리성을 넘어서는 세계, 즉 합리성을 바탕으로 합리성을 초월한 세계인 것이죠. 따라서 길희성 교수는 결론적으로 "우리의 과제는 이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이성을 초월하여 존재의 근원에서 인간과 우주 만물, 신이 하나가 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이성을 존중하되 이성이 영성으로 승화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라고 주장하는데요. 개인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인류가 집중해야할 부분은 AI나 생명공학과 같은 과학기술 부분이 아니라 그 보다는 오히려 영성의 합리적 재발견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성에 근거한 영성에 대한 해답은 환단고기의 우주론과 영성문화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길희성 교수

아래 내용은 길희성교수의 책 "종교에서 영성으로"의 '3부 종교의 존재이유'의 '2장 영성의 대가들을 만나다'에 나오는 아래의 3가지 꼭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켄 윌버가 말하는 의식의 세 단계
생물학적 인간관을 넘어
이성과 자의식의 비극

(여기서 부터는 위 유튜브 영상을 틀어 놓고 아래 내용을 눈으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성은 인간의 영적 본성 내지 성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본성은 오감에 의존하는 감성이나 우리의 일상적 사고 능력인 이성으로는 접할 수 없는 세계와 인간이 더 깊은 실제를 만나도록 우리를 끊임없이 부추기고 끝내 그것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전에는 만족을 모르는 영혼 깊숙히 뿌리 박고 있는 성향이다. 본성 내지 성향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며, 어떠한 것일까? 


(그것은) 우리나라 선불교 사상의 확고한 기초를 다져 놓은 보조국사 지눌 선사의 선사상, 중세 카톨릭 신학자이자 영성가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의 사상, 그리고 정통 힌두교의 불이론적 베단타 사상을 고스란히 개선하고 체험함으로써 현대 인도의 가장 위대한 성자 가운데 하나로 추앙받는 스리 라마나 마하리쉬를 보면 조금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이들은 각기 자기가 속한 종교 전통의 언어를 사용하여 초인격적 영성이 실현하는 초의식적 천국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지눌 선사는 그것을 진심 혹은 공적영지심이라고 불렀고, 에크하르트는 지성 그리고 스리 라마나는 '진아' 혹은 '나의 나'라고 불렀다. 세 분 모두 인간에게는 감성이나 욕망, 이성적 사고나 분별지를 넘어 인간 모두의 공통된 영적 본성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 영적 본성, 영적 인간성의 완벽한 실현이야말로 인간이 실현해야 할 최고의 행복이라고 그들은 한 목소리로 증언한다.

[켄 윌버가 말하는 의식의 세 단계]

현대의 가장 주목할만한 영성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인 켄 윌버(Ken Wilber)는 인간의 의식 및 정신 발달의 단계를 인격형성 이전의 단계, 인격의 단계 그리고 초인격단계로 구분한다. 윌버는 이 세 단계를 인간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각각 '의식되지 않은 지옥' '의식된 지옥' '무의식적 천국'으로 특징짓는다.

자의식이 발달한 인격형성 이전 어린아이들의 정신세계는 아직 언어 능력과 합리적 사고가 형성되지 못한 세계다. 윌버는 낭만주의자들과 달리 이런 어린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천직난만한 '무의식적 천국'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온갖 제어되지 않은 욕망이 난무하는 세계, 그러나 자의식이 발달하기 전이므로 자신의 불행을 의식하지 못하는 '의식되지 않은 지옥'으로 간주한다. 그 다음 단계는 언어, 자의식, 합리성이 발달하고 인격이 형성된 정신세계로서 끝없는 욕망과 갈등이 야기되는 '의식된 지옥의 세계'다. 마지막으로 윌버에 따르면, 인간은 이 지옥을 벗어나고자 자의식과 분별적 사고, 분석적 이성이 지배하는 인격의 단계를 초월하는 '초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천국'을 갈망하고 실현하고자 한다. 이 단계야 말로, 인류의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로써 모든 종교, 특히 신비주의의 영성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구원의 경지다.

언어능력과 합리성의 발달로 개체적 인격이 형성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의 세계가 과연 천국인지 지옥인지의 문제를 떠나 우리는 맹목적 욕망과 충동이 지배하며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정신세계를 비단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미숙한 어른들에게서도 발견한다. 생물학적 인간 혹은 동물적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로서 합리적 판단과 자제력이 없이 무조건 욕망과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객관화해서 성찰할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나 양보 같은 것은 안중에 없는 유형의 사람들이라 하겠다. 

[생물학적 인간관을 넘어] 

서양의 반이상주의 사상가들 가운데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본래적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을 기본적으로 동물과 별 차이가 없다고 보는 인간관이다. 이런 생물학적 인간관은 근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토마스 홉스이며 후대에 와서는 니체나 다윈프로이트 같은 사상가가 이 반열에 속한다.  또 최근에 리차드 도킨스같은 사람도 이 부류에 속한다. 홉스나 프로이트 등에 의하면 인간은 철두철미 욕망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써 제 아무리 이성과 합리적 사고가 발달한다 해도 욕망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이성은 자기의 이기적 욕망을 억제하거나 교묘히 합리화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은 결코 이기적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 

홉스의 따르면, 개인의 욕망이 방치된 '자연 상태'는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어 늑대처럼 싸우는 상태'이기 때문에 모두가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불안해한다. 사람들은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강력한 권력을 요구하게 되며 심지어 독재라 해도 무질서보다 낫다고 여긴다. 홉스에게 사회 질서도덕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타협에 산물이며 인간의 이기적 본성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프로이트도 이와 유사하게 인간을 철저히 성욕Libido의 지배 아래 있는 존재로 보았다. 인간은 이성이 발달하고 사회와 문화의 강요로 어느 정도 원초적 욕망을 제어하며 살지만, 이 욕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의식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여전히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뒤에서 지배한다.
프로이트에게 사회, 문화, 도덕, 종교, 사상 같은 것은 모두 표피적 현상에 지나지 않고 인간의 진실은 무의식의 세계에 감춰져 있다.

니체는 성욕 대신 '힘의 의지'를 말하며, 다윈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을,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인간의 진실로 제시했다. 이들에게 이성이니, 도덕성이니, 영성이니 하는 것은 억압된 생물학적 욕망의 부차적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 역사는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과 투쟁의 역사이며, 인생에 더 고차적 목적이나 의미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른이든 아이든 인간은 욕망의 노예다. 욕망의 사슬을 벗어날 길이 없는 인간은 일시적인 욕구의 충족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유아기나 어린아이 시절을 지나 합리적 사고를 하게 되고, 자의식이 발달된 인격이 형성된다 해도 인간에게는 새로운 고민과 불행이 시작된다고 윌버는 말한다. '의식되는 지옥'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의 바탕에는 역시 프로이트적인 인간관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이 아무리 의식과 합리성이 발달한다 해도 억압되고 축적된 무의식의 힘은 여전히 인격을 지배하고, 교묘한 형태로 표출된다. 

인격 형성의 단계에서 인간은 여전히 집단이나 공동체에 속해 살지만 각자가 자신을 인격적 주체로 의식하며 자유와 권리를 주장한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도 동등한 인격체임을 알고 존중한다. 사회적 소속이나 신분, 성별이나 빈부의 차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인격과 인권을 존중하며 나아가 보편적 인류애를 발휘하는 성숙한 인격의 경지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인간을 이렇게 인격적, 합리적 주체로 이해하는 인간관이 보편화된 것은 인류 역사상 18세기 서구 계몽주의 시기 이후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 이전에도 인간은 결코 혈연이나 지연에 의한 집단에 전적으로 함몰된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근대 이전의 전통 사회에서는 인간을 독자적 인격체나 주체로 간주하기 보다는 특정 집단에 속한 존재로 보는 인간관이 지배적이었다. 사회적 집단적 정체성이 인격체로서의 개인의 정체성에 우선했다. 

서양 근대 사상은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인류 역사를 지배해 오던 이러한 집단적 인간관 내지 타율적 인간관에 종지부를 찍었다. 모든 사람의 인격과 자율성,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평등주의적 인간관을 보편화시킨 것이다.
서구 계몽주의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통사회에서 인간을 규정하고 규제해 오던 각종 우연적 차이들, 즉 가족, 부족, 민족, 신분, 계급, 성별, 문화나 종교의 차이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인간을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존중하고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는 지극히 추상적인 평등주의적인 인간관을 상식으로 자리잡게 만든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른바 '보편인' universal man의 출현으로서, 이들이 민주사회의 시민이고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주체로 등장한 근대인들이다. 이러한 근대적 인간관이 실제로 한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성과 자의식의 비극]

인간 해방이라는 근대의 혁혁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근데 사회의 개인 인격과 권리 중심의 삶은 인간에게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의식의 지나친 발달 자체가 불행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의식의 발달과 함께 인간은 자기분열 내지 자기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인간은 자기 존재를 의식하는 대자적 존재가 되는 순간부터 동물과 달리 나와 남을 구별하고 비교하는 삶을 살며, 존재와 의식, 몸과 마음 사이의 괴리를 경험하는 이중적 자아로서 살게 된다. 인간만 경험하는 이러한 자기 분열은 인간의 비극이자 특권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이나 생각까지도 의식하고 성찰할 수 있는 존재다. 자신을 의식하고 대상화하고 살필 수 있는 자기 초월적 존재이며, 자유로운 존재라는 점은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

자기 행위와 인격의 대해서 책임을 지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과 바로 이러한 자유로 인해 방황을 하고 불안을 느끼는 불안정한 존재라는 것이다. 자신의 유한성과 죽음을 의식하고 자연적 욕구 이상의 욕심에 사로잡히는가 하면,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과 갈등 하고 싸워야만 한다. 존재와 의식이라는 이중 구조를 지닌 인간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자신과 되어야만 하는 당위적 자신 사이에서 갈등한다. 자의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주체성과 자유를 확보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지만, 이 때문에 인간은 자기 자신과 공동체와 자연 세계로부터 소외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근대 사회는 이런 자의식이 보편화되어 개인의 주체성, 자유, 권리, 책임이 상식으로 자리잡는 사회다.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달하면서 자의식의 과잉 현상 마저 생겨 고립된 개인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과 경쟁, 대립과 갈등을 야기한다. 신과 자연과 공동체로부터 단절되고 소외된 개인에게 고독은 운명이 된다. 이것을 윌버는 '의식된 지옥'이라고 부른다. 근대인은 행복하려고 주체 선언을 했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고 새로운 지옥을 경험하며 산다.

몸과 마음, 존재와 의식, 주체와 객체, 개인과 공동체,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과 인간 사이의 자연스러운 일체성과 유대감이 끊어지면서 인간은 분열과 대립을 넘어 원초적인 전체성을 되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게 된다. 분열된 존재,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자신을 벗어나 통합되고 치유된 존재가 되길 원하며, 분열과 대립 이전의 온전한 자아의 평안을 갈망한다. 따라서 개체성(다자多者)을 넘어 전체성(일자一者), 인격성을 넘어 초인격적 경지, 의식을 넘어 무의식의 경지, 이성적 진리를 넘어 초이성적 진리, 분별지를 넘어 무차별적인 평등지의 세계가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로 부상한다. 윌버의 표현대로 '초인격적', '의식되지 않은 천국'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근대 이전의 세계 즉 인격과 합리성과 주체성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 가자는 것도 아니다. 윌버 역시 '의식하지 못하는 지옥'으로 묘사하는 인격형성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 가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향해야할 세계는 어디까지나 인격성과 합리성을 넘어서는 세계 (합리성을 바탕으로 합리성을 초월한 영적인 세계)이지, 그 이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근대성이 가져다 준 인간 해방의 선물을 충분히 인정하고 누리되, 근대적 자아의 '의식된 지옥'을 벗어나는 새로운 정신적 차원으로 인간이 고양되고 심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생물학적 인간관의 주창자들이 인간의 허위 의식을 폭로하고 위선의 가면을 벗기는 데 공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인간의 진정한 해방으로 내세운다면 곤란하다. 그들에게 도덕과 영성은 결국 동물적 본능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성에 대한 폭력이고 압제일 수밖에 없다. 

나는 윌버가 말하는 어린 아이들의 '의식되지 않은 지옥'이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성을 갖춘 인격의 세계를 '의식적 지옥'으로 간주하는 그의 견해에 역시 부분적 진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언어와 분별심이 난무하고 자의식과 개인주의가 지나치게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이성의 역할이 대립과 갈등의 지옥을 만들어 내는 면이 다분히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성과 무의식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우리 과제는 이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이성을 초월하여 존재의 근원에서 인간과 우주 만물, 신이 하나가 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이성을 존중하되 이성이 영성으로 승화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길희성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센터 올라프 대학 종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강대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다. 저서로는 '인도철학사', '지눌의 선사상', '일본의 정토사상',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영성사상' '보살예수', '아직도 교회에 다니십니까', '신앙과 이성 사이' 그리고 이책의 원본인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등이 있다.

목차
전집을 내며
개정판을 내며

1부 영성으로의 초대

1장 왜 사느냐 묻거든
인간은 자기분열의 존재
생각하는 주체로 살기
의미의 위기가 고개를 들 때
우리는 모두 연극배우
진정한 자기를 찾으려는 욕구 그리고 두려움
죽음, 삶의 모든 의미를 앗아가다
이유도 없고 구할 것도 없는 삶
성공전도사들이 전하는 환상
불안과 방황은 어디서 오는가?
의미와 무의미, 거대한 싸움

2장 기복신앙을 넘어
무엇이 복이고 무엇이 행복인가?
행복의 원천, 하느님
기적을 바라는 신앙
징표 없이 믿는 신앙
무상한 것들의 신비
참된 신앙이란?

3장 신의 암호 해독하기
확신과 맹신 사이
신을 믿는다, 믿지 않는다는 말
무신론과 유일신신앙은 동전의 양면
문자주의 신앙의 문제점
없이 계시는 분
신은 상징이자 암호
신 너머의 신
신의 암호, 어떻게 해독하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의 암호

4장 마음의 평화, 세상의 정의
어떻게 평화를 이룰 것인가
현실도피도, 현실집착도 답이 아니다
봉사와 섬김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영성
나부터 평화로워질 것인가, 세상을 먼저 이롭게 할 것인가
의식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나?
더 선한 것, 덜 악한 것을 찾는 부단한 노력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사랑과 자비
자기 비움 없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은 위험하다
마음의 치유와 사회의 치유가 함께 가는 길
촛불집회와 시민종교
미국 정치와 복음주의 신앙
복음주의 신앙을 넘어

2부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1장 종교는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
종교 정신이 빠진 종교교육
제도로서의 종교, 정신으로서의 종교
그리스도의 정신에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
그리스도의 향기로, 부처님의 자비로

2장 상생을 위한 종교 간 대화
과학적 세계관과 역사적 상대주의의 도전
종교다원화는 순수성 회복의 기회
권력과 진리의 독점권 상실
진리는 절대적이지만 인간의 인식은 유한하다
종교의 독점욕과 지배욕
민주사회의 가치와 대화하는 종교

3장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
종교와 진리 주장
문자적 언어의 한계
존 힉의 종교다원주의론
언어를 초월하는 신비체험은 모두 같다?
모든 종교는 동일한 궁극적 실재를 지향한다는 가설
길은 달라도 같은 정상에서 만나리라는 희망
종교는 길이자 방편, 상징이자 수단
실천적 종교다원주의
사랑이 곧 진리
종교는 신이 아니다
겸손한 신앙인의 자세

3부 종교의 존재 이유

1장 종교에서 영성으로
따로 노는 종교와 영성
영혼의 부름
영성과 고독
가식과 위선의 옷을 벗다
종교와 영성은 동반자
우리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
사회적 자아가 무장해제 되는 순간

2장 영성의 대가들을 만나다
켄 윌버가 말하는 의식의 세 단계
생물학적 인간관을 넘어
이성과 자의식의 비극
지눌의 불성
불성과 에크하르트의 지성
텅 비어 있는 순수의식의 빛
라마나 마하리쉬, 참자아 찾기
백암 박은식의 양지
초인격적 영성의 세계는 하나일까?

3장 종교, 상징, 영성
산타는 존재하는가?
종교와 인간소외
종교에 의한 인간소외를 막으려면
어느 수피의 메카 순례 이야기
상징에 매달려 초월적 실재를 놓치다
상징을 절대화하는 두 가지 이유
하느님을 만나는 길
상징에서 해방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