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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순환 이론의 진화

by 광명인 2025. 3. 29.

자연은 끊임없이 순환한다. 해는 뜨고 지며, 계절은 바뀌고, 밀물썰물이 오간다. 동양의 고대 철학은 이 같은 자연의 순환을 "도道" 또는 "음양陰陽"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음과 양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상호 전환하면서 세상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 깊으면 새벽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듯, 이 극에 달하면 이 시작된다. 이러한 음양의 원리는 단지 자연의 순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 사회, 경제 또한 이 우주적 리듬과 변화의 질서 안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만물의 존재원리] 
즉 무릇 천하의 만물[一切物]이 개벽開闢을 따라서 생존[存]하고, 
진화進化를 따라서 존재[在]하며, 
순환循環을 따라서 있게[有]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출처: 환단고기 삼신오제본기]

경제 또한 예외는 아니다. 성장 침체, 호황 불황이 교차하는 경기의 흐름은 마치 음양의 순환과도 같다. 수백 년 동안 경제학자들과 사상가들, 그리고 투자가들은 이 반복적인 흐름의 법칙을 이해하고자 했다. 경기순환 이론은 그렇게 탄생했고, 시대를 거치며 점점 더 정교해지고 복합적인 형태로 진화해 왔다.

가장 먼저 경기의 주기적 움직임을 명시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19세기 프랑스의 경제학자 클레망 주글라 (Joseph Clement Juglar)였다. 그는 경제가 대략 7~10년을 주기로 확장과 수축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경험적 통계로 밝혀냈다. 이른바 '중기파동 이론'은 이후 번즈와 미첼 (Burns & Mitchell)의 연구를 통해 더욱 정밀해졌고, 확장-정점-수축-저점이라는 고전적인 경기 순환 구조가 정립되었다.

기술혁신에 따른 콘드라티에프 파동

그러나 중기파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큰 흐름이 있었다. 1920년대, 러시아의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에프 (Nikolai Kondratiev)는 약 50~60년 단위로 반복되는 장기적인 경제 파동을 제시했다. 그는 이 파동이 기술 혁신과 생산방식의 변화에 따라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후 슘페터 (Joseph Schumpeter)는 이를 계승하여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정립하며, 자본주의 내부의 혁신과 몰락, 그리고 재창조순환을 강조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기존의 낡은 시스템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시스템으로 진화해나가는 존재였던 것이다.

1950년대에는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가 인구구조와 도시화, 인프라 투자 등 사회 구조적 요인에 따른 중장기 파동을 설명하며 경기순환 이론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인구의 변화는 소비 패턴과 투자 수요를 바꾸고, 그것이 다시 경제 전반의 흐름을 뒤흔드는 것이다.

엘리어트의 파동이론과 소로스의 반사이론을 합쳐 놓은 그래프

이후, 경제 이론은 구조적 분석을 넘어서 심리와 인지의 세계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1930년대, 랄프 넬슨 엘리어트(Ralph Nelson Elliott)는 시장의 가격 움직임이 5개의 상승파동과 3개의 하락파동으로 구성된다는 엘리어트 파동 이론 (Elliott Wave Principle)을 제시한다. 그는 시장의 움직임이 단순한 숫자나 데이터가 아니라, 인간 심리의 패턴과 감정의 흐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이 파동은 프랙탈 구조를 띠며 반복되고 확장된다.

엘리어트가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 패턴을 도식화했다면면, 조지 소로스 (George Soros)는 시장 심리가 현실 그 자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그는 '반사이론(Reflexivity)'을 통해 시장은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대와 인지가 그 현실 자체를 만들어내고 왜곡시키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투자자의 기대 → 행동 → 가격 변화 → 기대 강화라는 피드백 루프는 시장이 스스로를 움직이는 내적 논리를 설명해준다. 시장은 늘 오차와 착각, 그리고 과잉과 붕괴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레이 달리오의 장단기 사이클

최근에는 브리지워터의 창립자 레이 달리오 (Ray Dalio)가 이러한 구조적 이론과 심리 이론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신용 창출디레버리징(Deleveraging)의 반복으로 보며, 단기 약 8년, 장기 약 100년에 이르는 장단기 부채 사이클을 함께 설명한다. 이 관점은 기술, 인구, 정책, 심리 등 복합 요인을 모두 고려하며 경기순환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려는 현대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결국, 경기순환의 근본에는 음양의 원리가 깔려 있다. 성장과 쇠퇴탐욕과 공포혁신과 붕괴는 모두 한쪽이 극에 달하면 반대편이 시작되는 '극적반(極卽反)'의 우주적 순환 원리를 따른다. 기술혁신과 인구구조의 변화, 그리고 부채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자본주의가 가진 구조적 한계는 장기 파동의 큰 물결을 만들고, 시장에서의 투자자들의 심리는 단기 파동의 물결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모든 파동은 우리 삶의 리듬, 더 크게는 자연과 우주의 리듬 속에서 물결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복합적 파동의 정점 어딘가에 서 있다. 역사와 철학, 경제와 심리를 아우르는 지혜를 통해, 우리는 이 리듬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더라도, 그 주기를 ‘이해’하고 ‘준비’할 수는 있다. 시장도, 인생도, 결국은 순환과 파동이다. 중요한 것은, 그 파동과 주기의 속성을 이해하고 그 파동 속에서 균형을 잡고 항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