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떻게 해야 온갖 곡식이 풍년이 들고 은혜가 세상을 기름지게 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해, 달, 별이 정상으로 운행하고 추위와 더위가 일정하며 하늘 신령의 가호를 받아 덕택이 만물에게도 미칠 수 있겠는가? 기원전 108년 위만정권을 무너뜨린 한무제의 물음이다. 이에 전한시대의 사상가 동중서는 우선 구조적인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혁의 실마리는 반드시 하늘에서 구해야만 한다고 했다. 한무제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유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게 된다. 동중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세상에서 옛적에는 잘 다스려졌는데 지금은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옛적 성군들의 자취를 살피고 하늘의 이치로 돌아가서 생각해 본다면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동중서가 말한 옛적 성군들이란 누구였을까? 동중서에게 하늘은 모든 신들의 군주이고 지상의 제왕이 가장 존경하는 신이며, 인간은 하늘을 본받은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동중서(BCE 176~104년)의 하늘 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기본 자료는 <현량대책賢良對策>이다. 한 무제(BCE 156 87년)가 내린 책문의 일부는 이런 것이다.
"(하은주) 세 왕조의 제왕이 천명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을 입증할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 천재지변(재이)은 무슨 이유로 발생하는가. ,,, 백성들이 화합하여 행복해하며 정사가 널리 선양되었으면 좋겠다. 도대체 어떻게 닦고 가다듬어야 감로가 내리고 온갖 곡식이 풍년이 들고 은혜가 온 세상을 기름지게 하여 덕택이 초목까지 미치게 할 수 있는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해, 달, 별이 정상으로 운행하고 추위와 더위가 일정하며 하늘이 내리는 복을 받고 신령의 가호를 받아 덕택이 넘쳐흘러 세상 끝까지 뻗어나가고 만물에게도 미칠 수 있겠는가."
한 무제의 책문은 궁극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큰 도리와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고도로 정밀한 이론 체계를 요구하는 것이다. 무제가 요구한 큰 도리란 단지 현실 정치에서 구체적으로 시행되는 세부 정책과 같은 내용이 아니라, 하늘과 인간 사이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는 체계적인 이론 체계였다.
그렇다면 동중서가 말하는 하늘은 어떤 존재일까?
"이를 비유하자면 거문고 소리가 아주 심하게 뒤틀렸을 때에는 반드시 줄을 풀어서 새롭게 매어야 연주가 제대로 됩니다. 이처럼 정치를 잘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을 때에는 반드시 개혁을 하고 교화를 해야만 통치가 가능합니다. 새롭게 줄을 매어야[경장更張] 할 때 새로 매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악사가 있다고 해도 연주를 잘 할 수 없듯이, 경장해야할 때 경장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위대한 현인이 나타난들 나라를 잘 통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나라가 천하를 차지한 이후부터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늘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잘 다스려지지 못한 것은 개혁해야할 때 개혁하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 이제 정사를 맡아 나라를 잘 다스리기를 열망한지 70여년이나 되었으니 한 발짝 물러나서 개혁하여야만 합니다. 개혁한다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고 잘 다스릴 수 있다면 재해가 날마다 사라지고 복록이 날마다 이를 것입니다. ... 정사를 바르게 하고 백성을 잘 보살핀다면 반드시 하늘로부터 복록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한 무제의 책문에 동중서가 답한 내용의 일부이다. 그 핵심은 사회 변혁(更張)이다. 동중서는 당시가 개혁이 절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하였다.
그는 대책에서 도道라는 것은 잘 다스려진 상태로 인도하는 길로서, 인의예악은 모두 그 길로 가는 도구라고 말한다. 이어 성왕이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손들이 수백 년 동안 장구하게 안녕을 누리고 있는 것은 예악으로 백성을 교화시킨 업적 때문이라며, 형벌이 아닌 예약을 통한 교화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 예의 중심, 치도治道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하늘이다.
"신이 삼가 『춘추』에 실린 글을 뒤적여 왕도 정치의 시초가 무엇인지를 찾아보았더니 다름 아닌 '정正'에 있었습니다. 정은 왕 다음의 자리에 있었고 왕은 봄[春] 다음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춘이란 하늘이 행하는 행위이고 정은 제왕이 행하는 행위입니다. 그 뜻은 위로는 하늘이 하는 바를 본 받아 아래로 자신의 행위를 바로잡음으로써 왕도의 시초를 바르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제왕이 무엇을 하고자 할 때는 마땅히 하늘에서 그 실마리를 구해야 합니다... 제왕은 하늘의 뜻[天意]을 받들고 이어 정사를 펴야 합니다. 따라서 덕과 교화의 힘을 빌려 다스릴 뿐 형벌의 힘을 빌려 다스리지 않습니다. .. 정치를 행하면서 형벌의 힘에 의지하는 것은 하늘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므로 선왕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동중서는 '도道가 하늘에 근거하여 나왔으며, 이런 도의 근원인 하늘이 변하지 않으면, 도 역시 변하지 않는다. 또한 군주는 정치를 함에 있어서 반드시 하늘이 하는 바를 본받고,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하늘의 뜻을 받드는 교외에서의 하늘 제사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되었다.
"옛날의 천하도 오늘의 천하와 같고 오늘의 천하 또한 옛날의 천하로 다 같은 천하인데도, 옛적에는 잘 다스려졌고 상하가 화목했으며 습속도 아름다웠고 법령이 없어도 좋은 일이 행해지고 금지하지 않아도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관리들은 거짓되거나 정당하지 않은 짓을 하지 않았고 백성은 도적이 되지 않았으니 감옥은 비었고, 하늘의 은덕이 초목을 적시며 그 덕택이 나라 안에 두루 미쳤으며 봉황이 모여들고 기린이 찾아와 노닐었습니다. 지금을 예전과 비교한다면 하나같이 어찌 이리 서로 다를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잘못된 것이 많기에 이리 무너질 수 있단 말입니까. 옛적의 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하늘의 이치를 어겼기 때문인지, 옛적 성군의 자취를 살피고 하늘의 이치로 돌아가서 생각해 본다면 혹시 그 까닭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동중서가 말하는 도의 근원이자 정치적 행위의 준거인 하늘은 무엇일까? 우리는 『춘추번로』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춘추번로』 82편에는 '천天자가 쓰이지 않는 편이 그리 많지 않다. 『춘추번로』에 '천'자는 950여회나 나오지만 천의 쓰임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동중서가 『춘추번로』를 통해 보여준 하늘의 가장 특징적인 성격은 인격성이다." 그는 하늘을 단순한 푸른 하늘이나 형이상학적인 하늘의 모습을 넘어, 기氣를 통해 만물, 특히 인간과 감응하는 인격신적 존재라고 본다.
"문왕이 하늘의 명을 받아 왕이 되었을 때 하늘의 뜻에 따라 은왕조를 바꾸어 주라는 국호를 내세웠다. ,,, 문文에 근거하는 예를 만들어 하늘을 받들었다. ,,, 무왕이 천명을 받아서 읍에 궁을 짓고,,, 문왕을 이어서 하늘을 받들었다. 주공이 성왕을 보좌하고 하늘의 명을 받아서 낙양에 궁궐과 도읍을 짓고 문왕과 무왕의 제도를 완성하였으며, ,,, 하늘을 받들었다."
"하늘은 말을 하지 않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뜻을 드러내도록 하고, 하늘은 아무런 행위도 않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행하도록 한다. 천명을 받은 군주는 하늘의 뜻을 부여받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천자라 불리는 사람은 당연히 하늘을 아버지로 여기고 효도로써 하늘을 섬겨야 한다."
"하늘에는 기뻐하고 성내는 기운이 있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다. 이는 사람과 서로 딱 들어맞고 동류이니 하늘과 사람은 하나이다."
"봄은 사랑의 표지이고 여름은 즐거움의 표지이고 가을은 엄격함의 표지이고 겨울은 슬픔의 표지이다. 사랑이 중요하지만 엄함도 있어야 하고,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슬픔이 있어야 하는 것은 네 계절의 법칙이다. 기뻐하고 성내는 정情과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의義는 단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게도 있다. ... 하늘에 기뻐하는 기운이 없다면 어떻게 날씨가 따뜻하여 봄에 만물이 태어나 자랄 수 있겠는가. 하늘에 성내는 기운이 없다면 어떻게 날씨가 서늘하여 가을에 만물이 시들어 죽어가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늘에 즐거움의 기운이 없다면 어떻게 양기를 소통시키며 여름이 자라서 커나가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늘에 슬퍼하는 기운이 없다면 어떻게 음기를 자극시켜 겨울에 만물이 움츠려들어 활동을 줄이도록 할 수 있겠는가."
"하늘은 항상 만물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을 뜻으로 삼고 만물을 기르고 보살피는 것으로 자신의 일로 삼는다. 춘하추동 네 계절은 모두 그렇게 하는 쓰임(작용)이다."
이처럼 하늘은 희로애락의 감정과 의지를 가진 존재이다. 하늘은 자신의 뜻과 의지에 따라 만물을 낳고 변화를 이끌며 온 세상을 주재하는 주재자와 다를 바 없다. 인간 세계를 포함하여 천지 만물을 주재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표출하고 자신의 뜻에 따라 세상을 이끌어간다. 하늘은 인격적 존재로 천지 만물과 세상을 주재하는 주재자인 것이다. 인간의 신체 구조는 하늘의 수와 짝을 한다.
이러한 인격적 존재로서의 하늘, 희로애락의 기를 가진 하늘은 인간과 통한다. 인간은 여러 면에서 하늘을 본받은 존재이다. 그가 보기에 이러한 인격신으로서의 하늘은 모든 신의 우두머리이다. 이른바 하늘은 지고신, 최고신이다.
"하늘은 모든 신들의 군주이고 제왕이 가장 존경하는 신이다"라고 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동중서는 인격신적 요소를 갖추고 세계를 주재하는 주체로서 천天 · 하늘의 존재를 부각 시키고 있다.
출처: [책] 동북아의 문화코드 하늘 · 천天 · 상제上帝, 그 빅 히스토리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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