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에서 언급된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의 "일(一)"은 창조의 근원으로 불가의 마음, 기독교의 신, 도가의 도 또는 역학의 태극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유튜브는 이 창조의 근원을 순수 현재 의식으로 설명을 하는데, 천부경의 일(一)과 연결해 현대적 언어로 이해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천부경은 한민족 신교문화의 철학적, 우주론적 토대를 이루는 경전으로 현대 과학 문명의 핵심인 양자역학과도 연결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들은 각자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을 가졌지만, 모두 동일한 순수 현재 의식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과학적으로 양자 얽힘과 진동을 통해 설명되며, 우주와 모든 존재는 하나의 의식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순수 현재 의식은 태초의 창조력이자, 모든 존재의 본질인데, 이를 인식하고 활용하는 것이 끌어당김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깊은 명상을 통해 우리는 이 순수 현재 의식을 체득하고, 신성한 존재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멍 때릴 때를 생각해 봅시다. 멍을 때리면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감정도 없습니다.
오직 생생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의식만 존재합니다.
순수 현재 의식이 있고, 그 바깥에 생각과 감정이 있고, 가장 바깥에 외부 세계가 존재합니다.
만약 외부 세계와 생각 감정이 없어진다면, 순수 현재 의식은 아무 것도 없음을 고요히 인식합니다. 무無를 인식하는 거예요. 하지만 만약 현재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절대적 무無, 절대 공허만 존재할 뿐입니다.
모든 생각과 감정에는 구별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선과 악, 긍정성과 부정성 등등, 하지만 순수 현재 의식에는 이러한 특성 없습니다.
그저 생생하게 진행되고 있는 인식 상태,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기능만 존재할 뿐입니다.
나와 내 옆 사람은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나와 내 옆 사람은 모든 생각 감정을 가능하게 하는 똑같은 무특성의 현재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와 내 옆 사람, 동물들, 과거의 존재, 미래의 존재, 외계의 존재, 모두 다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전부 다 똑같은 순수 현재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시야를 확장해 볼까요?
모든 존재는 순수 현재의식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모두는 하나입니다.
이 현상은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있어요. 태초에 하나의 점으로 뭉쳐있었던 의식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지만 빅뱅 이전에 한 점으로 뭉쳐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양자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우주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진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각자만의 고유 진동수를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은 진동하는 끈으로써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 하나의 전체 의식은 고유한 부분들을 통해서 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모든 고유 진동수들은 단 하나의 의식이 발현되는 다양한 통로입니다.
이 그림만 기억한다면, 온갖 미스터리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방사하고 작용한 것은 나에게 돌아온다. 다른 방법과 다른 존재를 통해서 어떻게든 돌아온다.
왜냐 모든 존재는 단 하나의 나가 발현된 다양한 통로이기 때문에 내가 나에게 준 것은 나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작용 반작용, 카르마에는 시차만 있을 뿐 오차는 없다.
한 공간에 위치한 존재 안의 현재 의식이 인식한 것을 다른 공간상의 현재 의식이 인식하는 현상, 인간은 이것을 동시성이라고 불러왔다. 고유한 나라는 것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의 나뿐이다.
신은 내 안에 있고, 나는 신 안에 있다.
신성 의식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동시적으로 인식한다.
신성 의식은 모든 존재 안에 있고 모든 존재를 통해서 발현되고 있다.
모든 존재가 도道의 위에 있다. 도道의 작용을 받지 않는 것은 없다.
도道는 촘촘한 그물망처럼 온 존재를 이어주며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무위로써 다스린다.
이 밖에도 단 하나의 거대한 현재 의식을 가리키는 다양한 이름표들이 있습니다.
디바인 매트릭스, 영, 참나, 하나님, 절대자 등등 각각의 다른 이름표들이 가리키는 것은 단순한 하나였습니다.
이 모든 생각과 감정, 이 모든 외부 세계, 이 모든 존재들과 우주가 존재하려면 태초의 의식이 존재했어야만 합니다.
최초의 의식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현존하고 있는 모든 현재 의식들의 존재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시작이 없는데 어떻게 이어질 수 있겠습니까?
즉 절대적 공허, 절대 무의 상태에서 최초의 현재 의식이 나타났기 때문에 지금의 현재 의식들이 존립할 수 있는 겁니다.
최초의 현재 의식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그게 어떤 존재인지는 저도 몰라요.
그걸 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최초 의식이 존재했다는 것만은 우리의 이성과 직관으로 알 수 있습니다.
최초의 의식은 인식함으로써 모든 것을 창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하는 기능을 가진 순수 현재 의식은 그 자체로 태초의 창조력입니다.
이 인식창조 과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끌어당김일 뿐이에요.
끌어당김의 방법에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집중과 몰입, 앎, 전제.
집중과 몰입은 '인식'의 초점을 대상에 고정시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에 집중하고 몰입하면 그것이 창조되어 끌어당겨집니다.
그저 아는 상태는 가능성이 확정됨을 그저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앎으로써 인식한 그것이 창조되어 끌어당겨집니다.
특정 상태를 전제하는 것은 이미 완성된 존재 상태를 인식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누리게 될 것을 전제로 느끼고 행동하면 그 상태가 창조됩니다.
이제 왜 인식하는 기능만 가진 순수 현재 의식이 태초의 창조력인 것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인식하는 것이 모든 창조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끌어당김은 이러한 창조력을 영리하게 이용하는 거예요.
그런데 태초의 창조력을 그저 이용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태초의 존재 그 자체로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명상을 하면, 생각과 감정이 멈추게 됩니다. 오직 생생하게 진행되고 있는 순수 현재 의식만을 느끼게 돼요.
그렇다면 나의 안에 순수 현재 의식,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안에도 순수 현재 의식이 있다면, 최초의 의식 안에도 순수 현재 의식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존재는 우리와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겠지만, 우리와 같은 순수 현재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의 현재 의식을 느끼는 행위는 최초의 존재 안에 있는 현재 의식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즉 신과 하나의 상태를 느끼는 방법은 내 안에 순수 현재 의식을 느끼는 거예요.
더 간략하게 말해볼까요? 명상은 내 안에 순수 현재 의식을 느끼는 것이고.
내 안에 순수 현재 의식을 느끼는 것은 내 옆 사람 동물 과거 존재, 미래 존재, 외계의 존재, 그리고 태초의 존재 속의 생생한 현재 의식을 느끼는 것이므로 깊은 명상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온 존재 속의 현재 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깊은 명상을 경험한 선각자들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신이고, 신이 곧 나다. 내 안에 우주가 있고, 우주가 곧 나다. 나는 온 우주에 퍼져있다.
이 모든 것들을 체득한 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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