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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보

영국박물관 한국사의 심각한 왜곡

by 광명인 2024. 11. 26.

[연간 550만 명이 다녀가는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비추어진 대한민국의 역사는 아직도 일제가 조작한 식민사학의 망령으로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 대한민국 역사 연표에서 고조선은 사라지고, 정사인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초기 기록도 부정된다. 이는  4~7세기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점령해 다스렸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 위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받아들인 결과다. 따라서 이들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역사서기 4세기부터 시작되니 약 1만년의 역사가 고작 1700년의 역사로 축소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이씨조선중국의 속국이었고 스스로를 유교 정통성의 최후의 보루로 여겼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세계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자료로서 국민 모두가 인정할 만한지, 그리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을 더 알고자 하는 전 세계 한류 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모든 국민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역사는 무형의 자산이다. 역사는 세상을 설득할 수 있는 문화적 힘이며, 미래를 개척하는 원동력이다. 역사는 일종의 해석학으로 과거의 특정 사건에 대해서 비록 우리의 긍정적, 부정적 주관이 개입할 여지는 있지만, 궁극적으론 현재의 나를 구성한 존재의 바탕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의 근간이 삭제되고 줄기가 왜곡되면, 모든 것이 틀어지고 공동체의 의식은 깊은 어둠의 혼돈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연간 55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영국의 대영박물관
대영박물관에 소개된 이씨조선에 관한 내용, 출처: 남도일보

THE CHOSON DYNASTY (조선 왕조)

Korea's six dragons flew in the sky. Their every deed was blessed by Heaven, 
Their deeds tallied with those of sage kings.
From Songs of Flying Dragons, (1445-7), celebrating the  founding of the Choson dynasty, translated by Peter H. Lee

해동 육룡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고성이 동부하시니.
조선의 여섯 용(임금)이 나시어, 하신 일마다 하늘이 내리신 복이시니.
(이는) 옛날 성왕이 하신 일들과 다르지 않으니.
용비어천가》(1445-1447), 조선 왕조의 건국을 기리며, Peter H. Lee 번역

The Choson dynasty is usually divided into two halves by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 and 1597. The early Choson, when there was much trade with China and Japan, is regarded as a Golden Age, largely due to the enlightened rule of King Sejong (r. 1418-50). Invasions by the Manchus followed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and there was then another cultural flowering in the eighteenth century under Kings Yongjo (r. 1724-6) and Chongjo (r. 1776-1800). 

In the latter half of the nineteenth century, an isolationist policy was accompanied by economic decline. Korea was a vassal kingdom of China and Confucianism prevailed. By the late Choson, Korea regarded itself as the last bastion of Confucian orthodoxy. Great importance was attached to patrilineal descent, with rituals to the ancestors performed by the eldest son. Women were subject to their male relatives.  During the eighteenth century, the Sirhak or 'Practical Learning' thinkers attempted to address.

조선 왕조는 일반적으로 1592년과 1597년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기준으로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뉜다. 조선 전기는 중국과 일본과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던 황금기로 여겨지며, 이는 주로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의 계몽적 통치 덕분이다. 17세기 초에는 만주족의 침입이 있었고, 18세기에는 영조(재위 1724~1776)와 정조(재위 1776~1800)의 통치 아래 또 다른 문화적 전성기가 찾아왔다.

19세기 후반, 조선은 쇄국 정책을 고수하며 경제적 침체를 겪었다. 조선은 중국의 속국으로서 유교가 지배적인 사회 체계였고, 후기에 이르러 조선은 스스로를 유교 정통성의 최후의 보루로 여겼다. 가부장적 계보가 매우 중시되었으며, 조상 제사는 장남이 주관했다. 여성들은 남성 친족의 권위에 복종해야 했다.
18세기에는 실학(實學) 사상가들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영국박물관 한국사 연표는 문제 투성이

영국박물관 한국관 한국사연표 (반크 제공)

제목부터가 문제
이 한국사 연표의 제목은 The Korean peninsula 라고 되어있다. peninsula는 ''반도"라는 뜻으로 고구려와 발해의 중원역사를 함께 표기하기에 제목이 '반도'여서는 안 된다. 이는 The Korean History 또는 한국사 연표라는 말을 영어로 수정해야 한다.
 
고조선이 없다.
영국박물관 한국관 한국사 연표에는 고조선이 없다. 물론 한.중.일 역사를 비교한 도표에도 고조선이 없다. 고조선은 엄연히 한국 역사에 있어서 존재해 왔던 국가이다. 고조선은 일제 강점기 이후 2000년도 중반까지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 역사학계는 고조선에 대해서 너무나 무관심하고 직무유기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그러다가 2007년 국사교과서에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하여 역사 속 실존국가로서 기술이 시작되어지고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09년이 되어서야 고조선실을 신설하며 한국사 연대표에서 고조선을 분명히 기록함으로해서 역사적 국가로서 공식 인정하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 64년이 지나서야 국민여론에 밀려서 고조선실을 만든 것이다. 
 
그 이후 8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영국박물관의 한국사 연표에는 고조선이 없다. 우리 박물관의 공식적인 표기와도 맞지 않기에 역사적인 사실과 내용에 근거하여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영국박물관 한국관 한국사연표 확대한 사진 (반크 제공)

< 더 심각한 traditionaly의 의미 >
Goguryeo traditionally 37 BC ~ AD 668

Baekje    traditionally 18 BC ~ AD 660
Silla      traditionally 57 BC ~ AD 676
Gaya     traditionally AD 42 ~ AD 562
 
한국사 연표에서 삼국의 연대를 표기하는데 모두 ‘traditionaly’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반크의 청년 리더 정유정씨가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은 정말 날카롭고 예리했다. 

traditionaly는 보통 “전통적으로” 라고 쓰이는데 “전하는바에 따르면”“전설에 의하면”이라는 뜻이 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라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단어다. 여기서는 문맥상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의미로 쓰여졌다. “문헌상으로 저렇게 적혀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고구려를 예로 들면 고구려가 BC 37년에 건국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그건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왜 영국박물관 측은 traditionaly라는 토를 달았을까?  이는 영국박물관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우리 학계가 삼국의 초기 시대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때문이다.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임나일본부설을 위한 토대가 되는 이론이기도하다.
 
임나일본부설을 위한 토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임나일본부설의 망령이 아직도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의 야마토왜[大和倭]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하여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하였다는 설이다. 일본서기를 기반으로 한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당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고대국가가 있어선 안 된다. 그래서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창안해낸 것이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다.  <삼국사기> 불신론은 쓰다 소키치(1873~1961)를 시작으로 오타 아키라, 이마니시 류를 거치면서 정설로 굳어졌고, 미시나 쇼에이 등을 거쳐 스에마쓰 야스카즈에 이르러 한일학계간 암묵적인 합의로 굳어져 오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4세기 후반.. 5세기에 걸쳐 ‘우리나라(당시 왜)가 가야를 근거로 신라에 당도했다’라는 명백한 사건이 나타나지 않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상대에 보이는 외국관계나 영토에 관한 기사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쓰다 소우키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고사기 및 일본서기 연구 1919)
 
한반도 남부에는 고대 왜가 설치했다는 임나일본부가 존재해야 하는데 <삼국사기>에는 그런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제 관변학자 쓰다 소우키치는 일본서기에는 나와 있는 임나일본부 기록이 삼국사기에는 없으므로 삼국사기 상대(초기) 기록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라는 일제가 심어놓은 이 낭설이 한국 주류사학계에 그대로 관철되어 지금도 국사교과서에서 삼국시대의 초기의 왕들은 가르치지 않고 있다. 다만 고구려는 제6대 태조왕(53~146)부터 , 백제는 제8대 고이왕(234~286)부터, 신라는 한술 더 떠서 제17대 내물왕(356~402)부터를 인정하고 있다.
 
AD1-300 원삼국 시대의 망령이 아직도..
 AD 300년까지는 원삼국이라고 한다. 원삼국은 <원시삼국>이라는 말이다. AD1-300 이 시기를 원삼국시대라고 원시적인 삼국시대로 규정하는 것은 서기 4~6세기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따라 삼국의 초기역사를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이 ‘원삼국시대(Proto-Three Kingdoms Period)’ 라는 용어는 고 김원룡 박사가 1973년 한국고고학개설에서 처음 사용한 이래 고고학계에서 일반화됐다. 김원룡은 전 서울대 교수인데 임나일본부설을 체계화한 시에마쓰(末松保和)라고 불리는 도쿄 극우파 국사학과 교수를 공항까지 마중가서 서울대로 모시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그런 김원룡이 창안한 이론이 원삼국론인 것이다. 

영국박물관에 있는 한국사 연표에 보면  Proto-Three Kingdom Period (AD 1 – 300)과 이어지는 Three Kingdom Period(AD 300~668) 쪽은 실선으로 그어져 있다. 그리고  traditionally 라고 적혀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 부분은 AD 300년이전에는 점선으로 그어져 있다. 점선은 그럴듯하지만 정설은 아니라는 표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우리 한국의 역사는 AD300년부터를 시작으로해서 실제 한국의 역사는 1700년 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연표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엄연히 기원전 1세기에 건국했음에도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세 왕조 모두 실질적 건국시기를 4세기 이후로 보고 있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 위해 4세기 이전 삼국의 존재를 말살하려 한 식민사학과 일맥상통한다. 원삼국 표기도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조선 개설과 함께 사라진지 오래다. 당연히 traditionally라는 용어는 삭제되어야 하며 삼국시대 초기에 그려진 점섬도 실선으로 그려져야 한다.
 
과연 청동기는 10세기를 넘지 못했을까
영국박물관 한국관의 한.중.일 연표에도 청동기 시대서기전 10세기로 기록되어 있고 한국사 연표에도 서기전 10세기로 되어있다. 현재 국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사교과서는 청동기 연대를 서기전 15세기로 잡고 있다. 일단 이 부분도 연대를 올려잡아야 한다. 다만, 이러한 청동기 연대는 고조선 건국을 부정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왔다는데 문제점이 있다. 유독 고조선에만 청동기 시대가 되어야 국가가 건국될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서 고조선 건국을 신화시하고 부정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국가가 청동기 시대에만 가능했다는 것은  사실일 수가 없다. 고대 이집트의 국가가 청동기 없이도 국가를 이루었고 인더스 문명도 마야, 잉카문명도 마찬가지다
 
청동기 연대로 고조선의 건국 시기를 신화시하고 고조선 등장시기를 최대한 늦추려 했던 일제가 하던 짓이다. 그런데 이제는 청동기 발굴로 인하여 연대가 한없이 올라가 이 또한 소용없게 되었다.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물과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을 비롯한 과학적인 분석 결과 서기전 25세기 이전으로 밝혀졌다. 
 
한반도에서도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의 고인돌 유적과 전남 영암군 장천리 주거지 유적 등도 있고 만주 요서지역에서 발굴한 청동기 유물도 서기전 2410년으로 나왔다. 고조선 문화로 여겨지는 요서의 하가점하층 문화의 상한연대는 기원전 24세기경으로 추정되며, 하한연대는 기원전 15세기 전후 시기로 추정된다.  이렇듯 과학적 결과로 얻은 연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래에 그들이 생각했던 연대보다 너무 올라간다는 이유 때문에 그 연대를 사용하기를 꺼리고 있다. 잇따라 출토된 고고학적 성과에도 확증된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지금 학계의 현실이다.

게다가 10세기 설은 기자조선설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고조선이 자생적으로 건국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어떤 세력(기자)에 의해 건국되었고 문명이 발전했다는 식의 주장이 깔려 있다. 외래영향설을 주장하기 위한 연대 설정이라는 것이다.
 
초기철기(Early Iron Age) BC 1세기에 담긴 의미
철시기대도 마찬가지다. BC 1세기에 초기 철기시대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이런 설정은 철저히 한사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정해 놓은 것이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한사군의 선진 철기문물을 받아들여 고대국가의 기틀이 형성되었다는 주장을 펴기 위함이다식민지로 문명이 발전했다는 논리는 일제가 식민지를 영원히 경영하기 위한 식민사관의 핵심이다. 게다가 본격적인 철기도 아니고 초기철기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철제무기나 철제농경기 등이 아니라 무른 철이라 낙후한 철기를 처음 써보는 단계라는 의미이다.
 
고조선은 이미 서기전 13세기 무렵부터 철기를 사용했고, 중국은 고조선으로부터 철기를 도입해 서기전 8세기경부터 사용했다는 고고학 자료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유독 우리 국사교과서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려고 서로 다투었다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청동기도 철기도 모두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드러난 유물유적을 보더라도 절대 사실이 아니다.
 
영국박물관 한국관 한국사 연표는 이렇게 총체적 난국이다.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고쳐야 하는가? 우리는 과거의 바르지 못한 역사의 흔적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그저 방관자가 되어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 잘못된 흔적들을 지워야 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의 지적은 시기 적절했고 본지의 영국박물관 내 잘못된 역사 연표를 올바로 수정하기 위한 기획연재 또한 지속될 것이다. 이에 대한 정부 관계부처 그리고 영국박물관 관계자들의 적절하고 빠른 대처를 기대해본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출처: 한韓문화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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