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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단군세기

단군세기 서문: 檀君世紀 序

by 광명인 2023. 10. 26.

<단군세기>는 고려 말의 대학자인 행촌 이암선생께서 서기 1363년에 편찬한 사서로써 BC2333년부터 BC239년까지 2,096년간 47분의 단군께서 나라를 다스렸던 치세를 기록한 편년체의 역사서이다. 지금은 다들 단군을 신화로 알고 있지만, 단군은 실제한 역사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단군이란 어휘가 104건 나오는데, “우리 동방의 시조(始祖)”라는 서술이 제일 많고, “도읍을 정했다” “국왕이라 칭했다” “해외에서 나라를 세웠다” “개국 연도가 언제다” “법을 시행했다” 등 실록에는 단군이 모두 실존 인물로 나온다. 특히 세조실록단군의 신위를 “시조 단군(始祖 檀君)”으로 바꿨다는 기사가 나온다. 그리고 승정원일기 중 영조와 신하의 문답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영조가 “단군 때의 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라고 묻자, 신하 김종수가 “아들 부루를 하나라에 보냈던 문적이 있다”고 답하고, 영조가 “그건 기록에 실렸지. 됐네”라고 수긍한다(上曰, 檀君時, 有可證事蹟乎? 鍾秀曰, 七年, 有遣子扶婁朝夏文蹟矣. 上曰, 此則載錄, 無妨矣). 
(정성남 환단역사문화연구소 부회장 기고문 참조)

고려 말 행촌 이암(1297~1364)은 고려의 혼란기에 역사적 역할이 지대했던 인물이다. 자는 고운(古雲), 호는 행촌(杏村)이다. 초명은 군해(君侅), 자는 익지(翼之)였으나, 뒤에 이름을 암(嵒)으로 바꾸고 자도 고운(古雲)으로 고쳤다고 한다. 『고려사 (高麗史)』 세가(世家)에는 춘천의 청평산(淸平山)에 은거하기 시작하던 57세까지 군해(君侅)로 기록되다가 62세 되던 공민왕 7년에 개성으로 돌아와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의 벼슬을 받으면서 '암(嵒)'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개명한 시기는 청평산에 은거하던 무렵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말선초 고성이씨 출신의 명인 중에서 후세 선비사회의 추앙을 가장 많이 받은 이가 행촌 이암이다. 원(元)의 성리학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체계를 세운 명유 백이정(白頤正)의 고모할머니로 하여 회양부사(淮陽府使) 이우(李瑀)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암은 경상도 고성군(固城郡) 송곡촌(松谷村) 앞 바닷가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충렬왕 때 김방경(金方慶)의 중군(中軍) 지병마사(知兵馬使)로 일본 정벌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운 박지량(朴亮) 장군의 딸이다. 부인은 충렬왕 때 세 번이나 재상을 지내면서 일본 정벌에 전함을 만들어 공을 세우고, 충렬왕에게 「편민십팔사(便民十八事)」를 올려 명성을 떨쳤던 홍자번(洪子藩)의 증손녀이다.

이암의 가계를 형성하고 있는 부계 · 모계 · 처계의 혈연적 인맥은 문무의 정예를 모은 집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가정환경이 이암의 인품과 사상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암은 17세 되던 1313년 충숙왕 즉위년 8월에 문과에 합격했다. 비서성 교감(秘書省校勘)을 시작으로 비서랑(秘書郞) · 단양부 주부(丹陽府主簿)·도관 정랑(都官正郞)을 거쳐 감찰 집의(監察執義)· 동지추밀원사 (同知樞密院事)밀직부사(密直副使)· 찬성사(贊成事)를 두루 역임하고 청평산(淸平山)에서 5년간의 은거 생활을 마친 후 1358년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이르렀다.
(상생문화연구소 안병호 교수 단군세기 강의내용 참조)


[단군세기 서문은 행촌 이암선생역사관, 우주관, 신관, 인간관과 수행론이 잘 드러나 있는 한마디로 그의 철학과 사상의 정수가 담긴 글입니다. 이암선생께서는 사학의 역할이란 국가를 이끌어가는 인재들의 사기를 진작하는 것이고, 바람직한 역사란 만세에 걸쳐 인간 행위와 시대상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글이라 정의하는데요. 따라서 역사학의 정법은 중도적 입장에서 역사적 인물들의 인물됨을 평하고 각 시대의 시대상을 진단하는 것이라 설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역사학을 보면 과학적 방법론을 들먹이나, 민족의 정신과 철학을 배제한 역사학이란 과연 그 효용성이 무엇인지 의문입니다. 행촌 이암선생은 국가 공동체의 혼이 담긴 역사학이 무너지고, 사학이 불명해진다면, 그 국가는 국민들의 삶의 기준이 무너지고 정론이 분열되어 망하는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역사를 왜 알아야 하나? 이에 대해 단군세기 서문은 매우 깊은 화두를 던져 주는데요. 나의 본질과 뿌리를 밝히고, 신과 나, 국가와 나의 관계를 이해해 나의 진아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단군세기 서문은 매우 소중한 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군세기 서문]


나라를 위하는 길에는 선비의 기개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사학을 밝히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음은 무엇 때문인가?
사학이 분명하지 않으면 선비의 기개를 진작시킬 수 없고,
선비의 기개가 진작되지 못하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정치의 법도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대개 역사학의 정법이 폄하할 것은 폄하하고 기릴 것은 칭찬해서
인물을 저울질하여 평가하고 시대상을 논하여 진단하는 것이니 만세의 표준이 아닌 것이 없다. 

우리 백성의 삶은 참으로 유구하다. 새 세상을 열고 질서와 법도를 세운 내용 또한 분명히 밝혀져 있어서,
나라는 역사와 함께 존재하고 사람은 정치와 함께 거론되니
나라와 역사와 사람과 정치[國史人政] 이 네 가지는 모두 우리 자신이 우선시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바로다.


아아! 정치는 그릇과 같고 사람은 도道와 같으니, 그릇이 도를 떠나서 어찌 존재할 수 있으며,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형체가 그 혼을 잃고서 어찌 보존될 수 있겠는가.
도와 그릇을 함께 닦는 자도 나요, 형체와 혼을 함께 키워 나가는 자도 나[我]이다.
그러므로 천하만사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아는[知我] 데 있다.
그런즉 나를 알려고 할진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겠는가? 


대저 삼신일체(삼신과 하나됨)의 도는 ‘무한히 크게 하나 되는 정신[大圓一]에 있으니,
조화신造化神이 내려 나의 성품[性]이 되고,
교화신敎化神이 내려 나의 목숨[命]이 되며,
치화신治化神이 내려 나의 정기[精]가 된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가 된다.

대저 성性이란 인간의 신神이 생겨나고 자리를 잡는 근거와 바탕이다.
신神이 성性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성性이 곧 신神인 것은 아니다.
기氣가 환히 빛나 어둡지 않은 것이 곧 참된 성품[性]이다.

그러므로 신神은 기氣를 떠날 수 없고, 기氣 또한 신神을 떠날 수 없으니, 
내 몸 속의 신神 그 밝은 기氣와 결합된 후에야 내 몸 속의 본래 성품과 본래 목숨을 볼 수 있다.


성품[性]은 저마다 타고난 목숨[命]과 분리될 수 없고, 목숨[命]도 성품[性]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몸에 깃든 성품[性]본래의 참된 목숨[命]과 결합된 뒤라야,
내 몸속에서 신화하기 이전의 본래 성품[性]과 내 몸에서 기화하기 이전의 본래 목숨[命]의 조화 경계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性]에 담긴 신령스러운 지각은 하늘의 신[天神]과 그 근원을 같이 하고, 
인간의 본래 목숨[命]이 생명으로 발현됨은 자연의 산천[山川]과 그 기氣를 같이 하고, 
인간의 정기[情]가 자손에게 이어져 영원히 지속함은 창생[蒼生]과 천지의 이상세계를 이루어 가는 과업을 함께 함이다.


이에 하나[一氣]속에는 셋[三神]이 깃들어 있고, 셋은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원리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무궁한 일신의 조화에 머무는) 한마음(一心)으로 안정되어 변치않는 것 진아(참을 실현한 나)라 하고,
신통력으로 온갖 변화를 짓는 것을 일신(一神, 하나님)이라 하니,
진아眞我는 우주의 일신一神이 거처하는 궁전이다.

 참됨의 근원[眞原]을 알고 그 법에 의지해 닦고 행하면,
상서로운 기운이 저절로 이르고 신(三神)의 광명이 항상 비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늘과 하나 되고자 할 때,
진실로 삼신의 계율을 굳게 지킬 것을 맹세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능히 이 '하나됨의 경지'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품과 목숨과 정기가 혼연일체의 경계에 계신 분은 '삼신과 한 몸이신 상제님'이시다. 
상제님은 천지 만물과 혼연히 한 몸이 되시며,
마음과 기운과 몸으로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으시나 영원히 존재하신다.

그리고 느낌과 호흡과 촉감이 혼연일체의 경지에 계신 분이 인류의 시조인 환인주조님이다.
환인주조님은 세계만방에 한결같이 덕화를 베풀고 즐거움을 함께 누리시며,
하늘 땅 인간 삼계와 더불어, 함이 없이 저절로 조화를 이루신다.

이러하므로 가르침을 세우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아를 확립해야 하고, 
자신의 형체를 바꾸려는 자는 반드시 무형의 정신을 뜯어고쳐야 하나니, 
이것이 바로 '나를 알아 자립을 구하는 유일한 방도'인 것이다.


아, 슬퍼구나! 부여에 부여의 도가 없어진 후에 한나라 사람이 부여에 쳐들어 왔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없어진 후에 몽골이 고려에 쳐들어왔다. 
만약 그 당시에 미리 제정되어, 부여에 부여의 도가 있었다면 한나라 사람은 한나라로 쫓겨가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있었다면 몽골인은 몽골로 쫓겨 갔을 것이다.


아, 통탄스럽도다!
과거에 오잠 吳潛과 류청신柳淸臣같은 간신배가 떠들어 댄 사악한 말이 은밀히 백귀와 더불어 야행하여
고구려의 역신인 남생과 발기의 역심과 상응하여 합세하였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도와 그릇이 함께 없어지고 형체와 혼이 다 사라지는 때에
어찌하여 자신만 편안코자 한단 말인가!

금일에 외인(몽골인)이 정사를 간섭함이 갈수록 심하여 왕위에서 물러나고 다시 오름을 저희들 멋대로 조종하되,
우리 대신들이 한갓 속수무책인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라에 역사가 없고, 형체가 혼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로다.

대신 한 사람의 능력으로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온 나라 사람이 나라 구하기를 스스로 기약하고 나라를 구하는데 무엇이 유익한 것인지 찾아낸 연후에 
비로소 구국을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나라를 구한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앞에서 말한 바, '나라에 역사가 있고, 형체에 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시에 나라를 연 이후로 국통이 있어,
나라는 이 국통으로 인하여 세워지고, 백성은 이 국통으로 인해 흥하였나니,
역사를 배움이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오?

이 글을 써서 기쁜 마음으로 <단군세기>의 서문으로 삼는다.
공민왕12년(서기1363)계묘 10월 3일에, 홍행촌수가 강화도의 해운당에서 쓰노라.

[檀君世紀 序]

爲國之道가 莫先於士氣하고 莫急於史學은 何也오.
위국지도     막선어사기        막급어사학    하야
史學이 不明則士氣가 不振하고 士氣가 不振則國本이 搖矣오 政法이 歧矣니라.
사학     불명즉사기    부진        사기    부진즉국본     요의    정법    기의
史學之法이 可貶者貶하고 可褒者褒하야 衡量人物하고 論診時像하니 莫非標準萬世者也라.
개사학지법     가폄자폄        가포자포       형량인물        논진시상        막비표준만세자야 
斯民之生이 厥惟久矣오  創世條序가 亦加訂證하야 
사민지생     궐유구의     창세조서     역가정증        
國與史가 竝存하고 人與政이 俱擧하니 皆自我所先所重者也라
국여사    병존        인여정     구거       개자아소선소중자야


嗚呼라 政猶器하고 人猶道하니 器可離道而存乎며 
오호     정유기        인유도        기가리도이존호 
國猶形하고 史猶魂하니 形可失魂而保乎아.  
국유형        사유혼        형가실혼이보호
竝修道器者도 我也며 俱衍形魂者도 亦也니 
병수도기자     아야    구연형혼자    역아야
故로 天下萬事가 先在知我也니라. 然則其欲知我인댄 自何而始乎아.

고    천하만사     선재지아야         연즉기욕지아        자하이시호

三神一體之道는 在大圓一之義하니 
부삼신일체지도     재대원일지의        

造化之神은 降爲我하고 敎化之神은 降爲我하고 治化之神은 降爲我하나니
조화지신    강위아성        교화지신     강위아명        치화지신    강위아정
故로 惟人이 爲最貴最尊於萬物者也라.
고    유인    위최귀최존어만물자야

夫性者는 神之根也라 神本於性이나 而性未是神也오
부성자    신지근야     신본어성        이성미시신야

氣之炯炯不昧者가 乃眞性也라.
기지형형불매자    내진성야

是以로 神不離氣하고 氣不離神하나니
시이    신불리기        기불리신

吾身之神이 與氣로 合而後에 吾身之性與命을 可見矣오.
오신지신     여기    합이후     오신지성여명     가견의


性不離命하고 命不離性하나니 吾身之性이 與命으로 合而後라야, 
성불리명        명불리성           오신지성    여명        합이후
吾身의 未始神之性과 未始氣之命을 可見矣.
오신     미시신지성    미시기지명     가견의
故로 其性之靈覺也는 與天神으로 同其源하고,
고    기성지영각야     여천신        동기원
命之現生也는 與山川으로 同其氣하고,
기명지현생야     여산천        동기기
情之永續也는 與蒼生으로 同其業也니라.
기정지영속야     여창생        동기업야

乃執一而含三하고 會三而歸一者가 是也니라.
내집일이함삼        회삼이귀일자     시야 
故로 定心不變을 謂之眞我神通萬變을 謂之一神이니
고     정심불변    위지진아     신통만변     위지일신

眞我는 一神攸居之宮也라.
진아     일신유거지궁야

知此眞源하고 依法修行하면 吉祥自臻하고 光明恒照하나니
지차진원        의법수행        길상자진        광명항조

此乃天人相與之際에 緣執三神戒盟 而始能歸于一者也니라.
차내천인상여지제     연집삼신계맹  이시능귀우일자야


故로 性命情之無機는 三神一體之上帝也시니,
고    성명정지무기     삼신일체지상제야
與宇宙萬物로 混然同體하시며 與心氣身으로 無跡而長存하시며,
여우주만물     혼연동체          여심기신        무적이장존 
感息觸之無機는 桓因主祖也시니
감식촉지무기     환인주조야
與世界萬邦으로 一施而同樂하시며 與天地人으로 無爲而自化也시니라.
여세계만방        일시이동락           여천지인        무위이자화야
是故로 其欲立敎者는 須先立自我하고
시고     기욕립교자    수선립자아
革形者는 須先革無形이니 此乃知我求獨之一道也니라.
혁형자    수선혁무형         차내지아구독지일도야

嗚呼痛矣라. 夫餘에 無夫餘之道然後에 漢人이 入夫餘也며,
오호통의      부여    무부여지도연후     한인    입부여야
高麗에 無高麗之道然後에 蒙古가 入高麗也어니와
고려    무고려지도연후     몽고     입고려야
若其時之制先하야 而夫餘에 有夫餘之道則漢人은 歸其漢也며,
약기시지제선        이부여    유부여지도즉한인      귀기한야
高麗에 有高麗之道則蒙古는 歸其蒙古也니라.
고려    유고려지도즉몽고     귀기몽고야


嗚呼痛矣라. 向年에 潛淸輩之邪論이 陰與百鬼夜行하야
오호통의      향년    잠청배지사론     음여백귀야행 
以男生發岐之逆心으로 相應而合勢하니
이남생발기지역심        상응이합세
爲國者抑何自安於道器兩喪하며 形魂全滅之時乎아.
위국자억하자안어도기양상         형혼전멸지시호
今에 外人干涉之政이 去益滋甚하야 讓位重祚를 任渠弄擅호대 
금    외인간섭지정     거익자심        양위중조    임거농천 
如我大臣者가 徒束手而無策은 何也오, 國無史而形失魂之故也니라.
여아대신자     도속수이무책     하야     국무사이형실혼지고야
一大臣之能이 姑無可求之爲言이나 而乃擧國之人이 皆救國自期오
일대신지능     고무가구지위언        이내거국지인     개구국자기
而求其所以爲有益於救國然後에 方可得以言救國也니라.
이구기소이위유익어구국연후      방가득이언구국야

然則救國이 何在哉아. 向所謂國有史而形有魂也니라.
연즉구국    하재재      향소위국유사이형유혼야
神市開天이 自有其統하야 國因統而立하고 民因統而興하나니
신시개천     자유기통       국인통이립        민인통이흥
史學이 豈不重歟아 書此하야 樂爲檀君世紀序하노라.
사학     기부중여    서차       낙위단군세기서
上之十二年癸卯十月三日에 紅杏村叟는 書于江都之海雲堂하노라.
상지십이년계묘시월삼일     홍행촌수     서우강도지해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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