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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단군세기

단군세기: 26, 27, 28, 29세 추로, 두밀, 해모, 마휴 단군

by 광명인 2023. 8. 10.

26세 단군 추로 재위 65년

추로단군의 재위 원년은 기묘(환기 6136, 신시개천 2836, 단기 1272, BCE 062)년이다. 가을 7월에 백악산 계곡에 흰 사슴 200마리가 떼를 지어 와서 놀았다. 
재위 65년 계미(환기 6200, 신시 천 2900, 단기 1336, BCE 998)년에 추로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두밀께서 즉위하셨다. 

27세 단군 두밀 재위 26년 

두밀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신(환기 6201, 신시개천 2901, 단기 1337, BCE 997)년이다. *천해天海의 물이 넘치고 *사아란산斯阿蘭山이 무너졌다. 이 해에 수밀이국 · 양운국 · 구다천국이 모두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재위 8년 신묘(단기 1344, BCE 990)년에 심한 가뭄이 든 뒤에 큰비가 내려 백성들이 곡식을 거둬들이지 못하였다. 임금께서 곡물 창고를 열어 두루 나누어 주게 하셨다. 
재위 26년 기유(환기 6226, 신시개천 2926, 단기 1362, BCE 972)년에 두밀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해모가 즉위하셨다. 

28세 단군 해모 재위 28년 

해모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술(환기 6227, 신시개천 2927, 단기 1363, BCE 971)년이다. 임금께서 병이 나자 흰옷 입은 동자[白衣童子]로 하여금 하늘에 기도하게 하니 곧 나으셨다. 
재위 11년 경신(단기 1373, BCE 961)년 여름 4월에 회오리바람이 크게 일어나고 폭우가 쏟아져 땅 위에 물고기가 어지럽게 떨어졌다. 
재위 18년 정묘(단기 1380, BCE 954)년에 빙해氷海지역 여러 왕[칸汗]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재위 28년 정축(환기 6254, 신시개천 2954, 단기 1390, BCE 944)년에 해모단군께서 붕어하셨다. 마휴摩休가 즉위하셨다.

29세 단군 마휴 재위 34년 

마휴단군의 재위 원년은 무인(환기 6255, 신시개천 2955, 단기 1391, BCE 943)년이다. 주周나라 사람이 공물을 바쳤다. 
재위 8년 을유(단기 1398, BCE 936)년 여름에 지진이 있었다. 
재위 9년 병술(단기 1399, BCE 935)년에 남해 조수潮水가 석자 후퇴했다. [南海潮水退三尺]
재위 34년 신해(환기 6288, 신시개천 2988, 단기 1424, BCE 910)년에 마휴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내휴奈休가 즉위하셨다.

조수간만의 차이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천해天海: 북해라고도 하며 지금의 바이칼 호이다. 

사아란산: 바이칼호 옆에 있는 샨안 산맥을 가리킨다. 

환국의 세 나라: 환국 이후 3,000년이 흘렀지만 12환국의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중에 세 나라가 조공을 보내 온 것이다. 

빙해지역: 바이칼을 비롯한 시베리아 지역을 말한다. 

남해조수퇴삼척南海潮水退三尺: 이 기록은 천체 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지구가 받은 조석력달과 태양의 중력에 의하여 지구 중심이 받는 힘고 지구 표면이 받는 힘의 차이에 기인한다. 과학적으로 검증해본 결과 BCE 935년에는 강한 조수현상은 없었으나 4년후인 BCE931년 11월 22일에 가장 강한 조석력이 지구에 미쳤고 BCE975년과 BCE913년에도 강한 조석력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박창범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이 해를 주위로 200년간 해와 달의 위치로부터 지구에 미쳐지는 조석력을 계산한 결과, 4년 후인 BC931년 11월 22일 최대 조석력이 지구에 미쳐졌다. 우연히 이 정도의 일치를 보일 확률은 18/200 = 0.04이다. 이로부터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최소한 (13세 흘단단군때의 오성취루를 포함해) 이 두 기록만은 실제 역사를 기록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최근 단군세기에서 3천 년 전에 “남해 조수 퇴삼척(南海潮水 退三尺, 남해 조수가 삼척 물러갔다)”이라고 기록한 것에 의문을 가졌어요. 굉장한 이변이었을 텐데 조수가 겨우 90cm 물러간 걸 측정도 어려운데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이 말이죠. 척으로 발음되는 모든 한자를 찾아보니 2,500년 전쯤 끊겨버린 상당히 먼 거리를 뜻하는 척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기록을 바탕으로 썼는데 당시 자전도 발달하지 않았고 계연수 등이 워낙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하려다 보니 옮기면서 당시 척(尺)자로 바꿨으리란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죠. 무조건 위서로 몰아붙이고 배척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김진명 소설가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