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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단군세기

단군세기: 24, 25세 단군 연나, 솔나 재위 11년, 88년

by 광명인 2023. 8. 10.

24세 단군 연나 재위 11년 
연나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자(환기 6037, 신시개천 2737, 단기 1173, BCE 1161)년이다. 임금께서 숙부 고불가에게 명하여 섭정을 맡기셨다. 
재위 2년 신축(단기 1174, BCE 1160)년에 여러 왕[칸汗]이 조칙을 받들어 소도蘇塗를 증설하여 하늘에 제사 지내고, 국가에 대사가 있거나 재앙이 있으면 곧 기도하여 백성의 뜻을 하나로 모았다. 
재위 11년 경술(환기 6047, 신시개천 2747, 단기 1183, BCE 1151)년에 연나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솔나께서 즉위하셨다. 

25세 단군 솔나 재위 88년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세워짐)
솔나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해(환기 6048, 신시개천 2748, 단기 1184, BCE 1150)년이다. 
재위 37년 정해(단기 1220, BCE 1114)년에 *기자箕子가 *서화西華에 살면서 인사를 사절하였다. 
재위 47년 정유(단기 1230, BCE 1104)에 임금께서 상소도上蘇塗에서 고례古禮를 강론하시다가, 아첨하는 신하[영신佞臣]와 올곧은 신하[직신直臣]의 차이를 물으셨다. 삼랑三郞 홍운성이 나아가 아뢰었다. 

"올바른 이치를 굳게 지켜 굽히지 않는 자는 직신直臣이요, 권위를 두려워하여 자기 뜻을 굽혀 복종하는 자는 영신佞臣입니다. 임금은 근원이요 신하는 지류이니 근원이 이미 탁하거늘 지류가 맑기를 바란다면 이는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군왕이 성군이라야 신하가 올곧은 신하가 되는 것이옵니다." 임금께서 “그대 말이 옳도다.” 하셨다. 

재위 59년 기유(단기 1242, BCE 1092)년에 밭곡식이 잘 여물어 한 줄기에 다섯 이삭이 패었다. 
재위 88년 무인(환기 6135, 신시개천 2835, 단기 1271, BCE 1063)년에 솔나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추로께서 즉위하셨다. 

산동성 조현읍에 위치한 기자묘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서화西華: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 허주許州에 "서화는 옛 기箕의 땅이다. 개봉부 서쪽 90리에 있다. 처음에 기자箕子가 송나라 기箕땅에 살았기 때문에 기자라 칭한 것이다. 지금 읍 가운데 기자대가 있다."라 고 하였다. 서화는 지금의 하남성 개봉 남쪽 약 100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그곳에 기자독서대가 있다. 기자묘는 산동성 조현에 있다. 

서화의 기자독서대와 조현의 기자묘

기자箕子: 기자는 은나라 왕실의 근친인 ‘다자多子’출신의 제후로서 성은 子, 이름은 서여胥餘이다. 기箕는 나라 이름이고 자子는 작위爵位 명칭이다. 정인보는 기자의 ‘기’는 우리 고어의 ‘검’ 으로 천왕天王을 뜻한다고 했다. 다름아닌 단군이라는 뜻이다. 은나라 말기에 기자가 봉해졌던 기국箕國은 은나라 왕실의 직할지인 '하남성 상구현商丘縣’으로 추측되고 있다(윤내현 한국고대사신론 ). 그러나 기국의 위치와 기족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는 기록은 문헌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
결론적으로 기자조선설은 일찍이 최남선도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 고대사를 중국사에 흡수 통화시키기 위해 중화주의 천하 사상이 조작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사마천이 조작한 이 기자조선설은, 후대에 당唐나라와 일제 때에 사대 식민주의 사학이 공통으로 날조한 '낙랑군 평양설(한사군의 한반도 북부 위치설)', 일제가 한국 침략과 식민지지배를 역사적으로 정당화 · 합리화시키기 위해 날조한 ‘임나일본부설(고대 일본의 한반도 남부 가야 지방 지배설)'과 함께 한·중·일 동양 역사상 3대 역사 조작극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조작극은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역사를 날조한 본보기인 것이다.
기자는 상나라가 망한 후 고향인 하남성 서화西華로 돌아가 살다가 산동성 조현曹縣에 묻혔다. 따라서 문헌과 고고학 유물을 수용한다면 상나라 기내畿內인 하남성 중남부 지역에 살던 기자국의 후손 일부가 주나라를 피해 북경과 요서지역으로 이동, 정착하여 고조선의 제후국이 되어 왕 노릇을 하였다고 추정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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