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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관련 정보

『도전』 출간 과정

by 광명인 2024. 5. 8.

『도전』은 인류문명사의 최종 완성 작품(2)(원문보기 클릭)

9년 천지개벽공사를 집행하여 신천지 후천 5만년 조화선경세계를 여시는 증산 상제님의 말씀을 담은 성전!

증산도 도전(道典)이 성편되기까지 수십년에 걸쳐 말씀의 현장을 일일이 답사하여 기존의 기록을 철저히 검증하고, 상제님과 태모님을 모신 주요 성도들의 가족과 후손들을 인터뷰하여 증언을 채록했습니다. 이들 수수백명의 증언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가을개벽을 눈앞에 두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도전』은 증산 상제님의 대도를 신앙한 일천만 명의 구도의 숨결과 희생의 도과로, 마침내 지난 1992년 초판이, 2003년에 개정신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초기 기록이 나온 과정]

초기 기록이 나올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은 누가 뭐라 해도 김형렬 성도 김자현 성도입니다. 그리고 김형렬 성도의 아내가 된 후천 여성시대 지구촌 인류의 어머니의 원형 김호연 성도가 있습니다. 호연은 어린이 문화의 어머니가 되는데, 남자 어린이로는 복남이가 있어요. 김형렬 성도와 김자현 성도, 상제님의 막내아들 도수 김갑칠 성도 이분들이 안동 김씨로서 초기에 상제님이 쓰신 한시漢詩 등을 기록했다가 순천 사람 장기동과 장기동의 재종再從인 장기준에게 전했어요.

그다음에 초기에 상제님 말씀을 수기手記로 쓴 양반이 김형렬 성도의 아들 김찬문과, 김자현 성도의 아들 김태진입니다. 그 기록이 『동곡비서銅谷秘書』인데 1920년 전후에 기록되었어요.

그걸 보고 충격을 받은 이상호라는 사람은 자기 아우 이성영과 함께 보천교 방주였습니다. 당시 보천교가 6백만, 7백만이라 할 때,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신문의 하나로 최남선이 운영하던 시대일보를 인수했어요. 그런데 자금난에 빠져 있던 시대일보의 일부 기자들이 보천교에게는 넘길 수 없다고 여론을 부추기며 시대일보를 환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정읍 대흥리에 본부를 둔 보천교의 차경석 교주가 시대일보 인수를 포기하고 철수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호 형제가 주필로 있으면서 경영해 보려는 욕심이 있어서 인수 포기를 거부하다가 ‘교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고 재제를 당했습니다. 이상호 형제는 이른바 보천교 혁신운동을 하다가 출교를 당하고, 만주로 가 버렸습니다. 그때 서울 보천교 진정원眞正院에 있던 공금을 챙겨서 튀었는데, 한해를 보내고 상제님의 수석제자 김형렬 성도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금산사 아래에 있는 용화동 근처 구릿골을 찾아가서 김형렬 성도의 미륵불교에 들어갔습니다.

이상호가 거기서 총무를 맡아 보면서, 김찬문, 김태진이 쓴 수십 페이지짜리 『동곡비서』를 보고 거기에다 자기 나름대로 전해들은 말씀을 더하여 경전 양식으로 처음 낸 것이 『증산천사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입니다. 그게 도기 56년, 서력으로 1926년에 나왔어요. 그리고 3년 뒤에 말씀을 더 정리하고 증보해서 『대순전경大巡典經』을 냈습니다. 이상호 형제가 미륵불교에서 탈퇴하고 그 윗동네 용화동에 가서 동화교東華敎라는 교단을 만들고, 그 다음해인 기사년 음력 3월 16일에 『대순전경』 초간본을 낸 것입니다. ‘기사삼월기망己巳三月旣望’은 옛날에 채침蔡沈이 『서전書傳』의 서문을 쓴 날입니다.

[현장 답사로 초기 기록을 바로잡음]

우리가 『도전』의 성립과 출간 과정을 자세히 보면, 특히 초기 기록에 누가 읽어도 진리에 맞게 해석할 수 없는 내용이 있습니다. 앞으로 가을개벽 소식과 더불어서 실제로 남북이 통일되는 상제님의 공사가 『도전』 여러 곳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6편에 새울 도수와 숙구지 도수가 있습니다. 초기 기록 『대순전경大巡典經』을 보면 ‘새울’을 ‘새올’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새올’ 뒤에 괄호를 해서 새롭다는 새 신新 자에 울타리 리籬 자, ‘신리新籬’라 써 놓았어요. 그런데 현장 답사를 해 보니까 새올이 아니었습니다. 그 마을에서 대대로 살던 중년 남자가 농사짓다가 논두렁에서 뛰어나와서 “뭘 알고 싶으세요?”라고 해서 “여기를 어떻게 해서 새올이라 합니까?” 하니까 “그게 아니고요 원래 이름이 새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새’는 영원불멸의 새, 봉황을 상징하는데 그곳이 봉황이 둥지를 틀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올이 아니라 새울이라는 거예요.

거기에 살면서 금광을 운영한 대부호, 천석꾼 최창조 성도가 상제님 도문에 들어왔습니다. 그 윗마을 백암리에 사는 김경학 성도가 상제님께 “저 아랫마을에 있는 제 친구 창조가 상제님을 모시고 싶어 합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아, 그놈 돈 많으니까 천지에 고폐금을 많이 바치라고 해라.” 그래서 “얼마나 바치게 할까요?” 하니까 상제님이 “일신천금一身千金이니 천금을 바치라고 해라.”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전해들은 최창조 성도는 “그거야 내가 하지! 당장 입도하겠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백 냥씩을 열 명 지게꾼에게 지우고 왔습니다. 그렇게 오는 모습을 보신 상제님이 무릎을 치시면서 “천금도통千金道通 최창조로다.” 하고 그 자리에서 삼신 도수를 붙였습니다.

그리하여 5만 년 후천 세상에 삼신하나님이 탄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창조가 두 어깨 훨훨 치고 금산사로 이사 가면 내 일은 다 된다.”(道典 10:87:1)라고 하신 상제님 말씀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우리가 10년, 20년이 아니라, 지금까지 40년이 넘게 상제님 일가의 후손과, 상제님의 성도들, 김형렬, 김자현, 김갑칠, 김보경 등 여러 김씨 성도의 후손, 그리고 가을 천지개벽의 도수를 맡은 차경석, 박공우, 문공신, 김경학, 최창조 등 기라성 같은 성도들의 집과 후손을 꾸준히 찾아다니면서 증언 말씀을 듣습니다.

현장 답사를 해 보면 초기 기록에 잘못된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소, 연대, 성도 집안에서 일어났던 일화 같은 것이 사실과 다른 게 있고 빠진 것도 많습니다.

[『도전』이 나온 과정]

그러면 상제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도전』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오게 되었는가? 타종교를 보면 수수십 년을 넘어서, 백 년, 몇 백 년을 넘으면서 기록이 이루어졌습니다. 구약 같은 경우는 2천 수백 년 전에 구약문서가 쓰이기 시작했어요. [따라서 구약문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사건 발생후 수백년 후에 쓰여진 것이죠] 그런데 증산도의 경우는 상제님이 계시던 당대에 기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상제님과 태모님에 관한 기록이 각 네 편이 있습니다. 상제님 편은 『대순전경大巡典經』(1929), 『용화전경龍華典經』(1972), 『동곡비서銅谷秘書』(1990),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1992)이고, 태모님 편은 『선정원경仙政圓經』(1960), 『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1963), 『고후불전高后佛傳』(1960년대), 『고씨사모신정기高氏師母神政記』(1968)입니다.

상제님은 호연이를 직접 길러서 언제 누구에게 꼭 증언해 줘라고 하셨고, 또 김형렬, 김자현 성도에게 직접 불러주신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 내용을 답사를 통해서 수집한 내용이 수백 페이지에 달합니다. 답사 때 나하고 같이 열댓 명씩 가서 증언을 들었습니다. 카메라 두 대로 찍고, 옆에서 타자를 치고, 직접 받아쓰고 했어요. 어떤 내용은 상제님이 직접 불러주시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전』 초간본이 정리되어 나온 것은 도기 112년 임신년서력으로 1992년이고, 그 11년 뒤에 현재의 『도전』이 나왔습니다. 지금 이 『도전』도 두꺼워서 다 못 읽을 정도인데, 삼간본 작업은 빠진 내용이 5백 페이지도 더 들어가야 되는 방대한 작업이에요.

[열한 편으로 구성된 『도전』]

이 『도전』은 전체가 열한 편으로 돼 있습니다. 이 『도전』을 읽는 것은 정말로 충격적이고 흥미진진한 열한 편의 우주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앞으로 가을 천지개벽으로 새 우주가 열리는 이야기 열한 편을 듣는 것과 같아요. 지금 『도전』은 다양한 판으로 나왔습니다. 대형 『도전』, 어린이 『도전』도 있고, 한영본, 각편 미니 『도전』, 이야기 『도전』 등 여러 판형이 있어요.

이 우주의 새 역사 운명이 걸려 있는 진리 원전은 직접 좋은 판형을 사서 정성껏 싸서, 제대로 읽고,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도 주는 ‘정성 투자’를 해야 됩니다. 우리는 가을 천지 영원한 진리생명이 완성되는 지상 조화낙원, 지상 천국문명에 모든 조상을 모시고 들어가느냐, 아니면 소멸돼서 가을 낙엽으로 없어져 버리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진리 공부처럼 재미있는 게 어디 있어요? 가장 알속 있고, 정말로 실속 있는 일입니다. 『도전』 말씀을 보고 ‘아, 이런 말씀이구나. 이번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병으로 치는구나’ 하고 깨닫고 진리를 알아야 건강을 유지하고 자기중심도 잡을 수가 있어요.


[증보 개정된 내용, 원본보기 클릭]
[첫째, 주요 성도들의 입문 과정과 주요 도수 내용]

1) 입문 과정 채록

먼저 초기 기록에 전혀 실리지 않았던, 상제님의 주요 성도들이 상제님을 처음 뵐 때의 상황, 곧 입문 과정이 구체적으로 채록되었다.

태을주 전수의 중요한 사명을 받은 안내성 성도의 입문 과정이, 어린 시절부터 부친 안내성에게서 실감나게 말씀을 들으며 자란 그 아들(정남)에 의하여 최초로 명쾌하게 밝혀졌다. 안내성 성도는 그의 제자들과 도문의 많은 이들이 믿고 있듯이 제3변 추수도운을 마무리짓는 인사의 지도자를 상징한다.

그리고 또 다른 추수 도수의 주인공, 즉 진주(眞主) 도수의 문공신 성도가 상제님을 만나는 극적인 과정과 최창조, 신원일, 김광찬 성도의 입문 과정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최창조 성도는 김경학 성도의 인도로 천금의 성금을 내고 도문에 들어와, 천금도통 도수와 삼신(三神) 도수 등 여러 주요 도수를 천명으로 받은 지극 정성의 구도자였다.

2) 주요 도수 사명

이와 동시에 천지공사에 수종 든 성도들의 가을개벽의 도수 사명이 거의 다 드러나, 후천 오만년 조화선경 건설의 천지공사 틀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김형렬 성도의 선불(仙佛) 도수(5:186), 애기부처 도수와 신선 도수, 안내성 성도의 태을주 율려 도수와 무당 도수, 상제님의 도의 아내 도수, 막둥이 도수, 9년 천지역사 도수, 최창조 성도의 삼신 도수, 화둔(火遁) 공사, 또 은두장미(隱頭藏尾) 도수라 하여 그동안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전혀 알 수 없었던, 문공신 성도가 천명으로 받은 가장 중요한 도수인 오선위기 진주 도수와 상제님 어천 후에 행하라 명하신 남은 7년 공사의 실체가 모두 드러나, 그가 행한 파방 도수, 살막이 도수, 안면도 북 도수, 도술약국 도수 등이 새로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또 상제님의 일등 비서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좀체로 그 면모를 알 수 없었던 김갑칠 성도의 품성과 실체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그에게 붙이신 추수일꾼 도수, 우사장 공사, 막내아들 갑자꼬리 도수 내용이 증언되었다. 그리고 김자현 성도의 의원 도수, 박공우 성도의 태전 콩밭 추수 공사, 상제님과 태모님을 위시해서 김형렬, 차경석, 박공우, 안내성 등 주요 성도들이 모두 자리를 함께 한 서울 대한문 대공사와 태전 공사가 새롭게 증언되었다.

아울러 김천수의 증언에 의해, 고수부님께서 서울과 태전의 모든 주요 공사에 참여하신 후천개벽 역사의 진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3) 김호연 성도의 증언 검토

초판 작업 때 김호연(1862~1992) 성도의 증언을 성구화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삭제, 압축함으로써 공사의 정경을 제한하는 내용은 증언을 검토하여 복원하였고, 말투도 최대한 현장 언어로 살렸다. 또한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초판에 싣지 않은 공사 증언 내용을 거의 다 성구화하였다.

4) 안필성에 대한 증언

안필성에게 붙이신 새로운 도수 내용이 그 가족들에 의해 상세하게 증언되어 성구화되었다.

“안필성은 상제님이 천상에서 데리고 온 유일한 인간 세상의 친구다.” 하는 증언 그대로, 상제님은 안필성을 누구보다도 가깝게 대하셨고, 어느 성도 못지 않게 자주 만나시어 그에게 주요 도수를 맡기셨다. 초기 기록에서는 오직 상제님의 성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동학전란 때 상제님을 만나는 내용만 일부 실었었다. 그리하여 그에게 붙이신 초립동이 도수 등 제3변 마무리 도운에 대한 천지공사 도수 내용들이 일방적으로 무시되었다.

만일 성도들이 천명으로 받은 이러한 주요 도수들이 증언되지 않은 채 역사에 묻혀 버렸다면, 인간과 신명 그 누구도 상제님 천지공사의 매듭이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으리라.

[둘째, 상제님 9년 천지공사 내용이 연대별로 균형 있게 채록됨]

이것은 상제님이 도운 공사 보실 때 미리 계획해 놓으신 것으로, 당시 공사에 참여한 성도들의 가족과 성도의 제자들을 통해, 지난 10여 년의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증언됨으로써 마침내 그 열매를 맺었다.

1) 상제님 말씀의 증언자들

상제님의 말씀을 전한 주요 증언자들을 보면, 먼저 김형렬 성도 집안에서는 그의 아내인 김호연 성도가 상제님의 전 생애를 증언하였고, 또 상제님을 직접 모신 형렬의 큰며느리 이정숙이 그 아들 김현식(1918∼2010)에게 전함으로써 증언되었다.

김자현 성도에 관한 증언은 그 아들(김태진, 김태준)과 손자 김택식(1914∼2010)을 통해 전해졌으며, 안내성 성도와 관련된 증언은 그의 무릎에 앉아 신도들과 함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그 아들 안정남(1929∼ )에 의해 전해졌다. 그리고 백복남 성도에 대한 내용이 평생을 안내성 성도의 교단에서 신앙한 윤창주의 아들 윤기택(1927∼2006)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또 문공신 성도에 대한 증언은 그 아들 문복환(1919∼2006)을 통해 밝혀졌고, 상제님 친구 도수를 맡은 안필성에 대해서는 손자 안일완(1940∼ )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박공우 성도에 관한 내용은 3대 제자 가운데 이동술, 전이진의 아들 이판규(1930∼2004), 전수재(1917∼2004)와 이양휴(1914∼2002)에 의해 전해졌다. 또한 일찍이 등창으로 죽음 직전에 가족들이 길거리에 내놓았는데 기적적으로 박공우 성도에게서 고침을 받고 평생 박공우 성도를 아버지처럼 모시고 다녔다는 김일화(1886∼1958)는 박공우 성도에게서 들은 상제님의 공사 행적을 자신의 아들 김천수(1927∼ )에게 15년 동안(18세∼33세) 증언해 주었다.

그 가운데 가장 특기할 만한 일은 각 성도들이 전한 주요 공사 내용을 집대성하여 잘 알고 있던 구릿골 출신의 이종선(1884∼1964)의 증언이 그의 제자인 전주의 나승렬(1923∼ )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이종선은 김형렬, 김갑칠, 김자현, 김준상, 박공우, 김광찬, 김송환, 김경학, 최창조 성도 등 상제님 천지공사에 수종 든 12성도들과 교분을 맺으면서 성도들에게서 숱한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그가 들은 주요 개벽공사 이야기를 자식처럼 아끼던 도제 나승렬에게 전하였다.

나승렬은 김형렬 성도의 친족으로 일찍이 18세 때 상제님의 도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부친의 허락을 받고 학업을 중단한 채 도를 구하였다. 그리고 그가 평생 들어 온 공사 내용을 실감나게 증언해 주었다. 그리하여 초판에 누락된 주요한 도수 내용이 새롭게 보완되었다. 나승렬은 초판 이후 근 10여 년에 걸쳐 답사한 인물들 가운데 우주원리에 대한 학식이 가장 깊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겸허하고 온화한 품성을 지닌 증언자였다.

2) 왜 주요 공사 내용이 누락되었을까

초판을 보면 김형렬, 김자현, 김갑칠, 박공우, 문공신, 최창조, 안내성, 안필성에게 붙이신 주요 공사 내용이 많이 누락되었다. 도성덕립과 연관된 주요 도수들이 초기 기록에서부터 거의 실리지 않았다.

그것은 초기 기록자와 성도들 사이의 인간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30년, 제3변 도운의 세월 속에서 초기 시대의 원로 신앙인과 증언자들을 꾸준히 만나면서 나의 책임감을 통감했다.

김자현 성도의 손자 김택식에 의하면 “조부님은 이상호에게 증언을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김자현 성도는 김형렬 성도, 김갑칠 성도에게도 당시 보천교에서 출교된 뒤 태운장의 미륵불교 신도로 들어온 이상호에 대해 “한 판 차려 보려는 다른 뜻을 품고 있으니 전해 주지 마시오.” 하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한다.

이상호에 대한 이런 비판적인 의식은 당시 주요 성도들에게 널리 파급되어 있었다.

백운동의 안내성 성도는 몇 차례 찾아와 증언을 구하는 이상호에게 단 한 마디도 응대해 주지 않고멀리 구성산만 바라보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고, 소년 시절에 곁에서 이를 지켜본 아들 안정남이 증언한다. 또 안필성은 이상호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도인이 일찍 봉사가 되었다.’고 그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그래서 주요 성도들 못지 않게 상제님과 삶을 함께 하고 상제님에게서 큰 도수를 부여받았음에도, 그 내용을 깊이 있게 증언해 주지 않았다.

그 밖에 초기 기록의 또 다른 본질적 한계 때문에, 결국 주요 공사 내용은 상제님의 제3변 도성덕립 도수가 열리는 마무리 추수도운의 시간대에서 새롭게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셋째, 제3변 도운에 대한 공사 내용 채록]

상제님의 천지대업은 “내 일은 삼변성도(三變成道)니라.”(道典 5:356:4) 하신 상제님 말씀대로, 제1변과 제2변의 개척사를 거쳐 제3변 추수도운을 맞이하여 도성덕립이 된다.

그런데 초기 기록자들이 자기들 중심의 종통 의식으로, 추수도운을 상제님 도운의 전개 과정인 파종-이종-추수 과정에서 파종, 이종 도수의 시간대로 한정시켰다.

그리하여 상제님의 후천 오만년 천지사업을 매듭짓는 실질적인 총 결론 도수라 할 수 있는 제3변 도운에 대한 마무리 공사 내용의 핵심이 누락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 변색되고 삭제되었다.

지금 생존해 있는 수십 명의 증언자들이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제3변 도운의 추수지 공사, 도운 통일의 천지 역사에 대해 명백하게 초기 기록자들도 부분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기록자들은 고의적으로, 또는 당시의 시대적 환경 때문에 그 내용을 제대로 싣지 않았다(태전 공사 등).

그로 인한 폐해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로 선포하신 도통 맥의 전수 과정이 완전히 조작, 왜곡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결국 건곤감리(乾坤坎離)의 천지 이법으로 전수하신 도맥의 전체 틀을 파괴함으로써 하늘에는 천사만마(千邪萬魔)가, 지상에는 온갖 난법자들이 날뛸 수 있는 여지와 근거를 제공하였다. 그리하여 지난 100년의 세월 동안 그 누구도 증산 상제님의 도권이 어떻게 전수되어 왔는가를 진리의 눈으로 일목요연하게 확연히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