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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수행법/마음공부

시천주주 주문의 뜻과 최수운 선생의 도통

by 광명인 2024. 4. 6.

동학을 창시한 최수운 선생은 용담유사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無極之運) 닥친 줄을 너희 어찌 알까 보냐.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 보냐. 한울님이 내 몸 내서 아국운수 보전하네. (본주문) 열석 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 무극대도 닦아 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수운 선생은 "주문 21자는 영을 받기 위한 글이다." 그는 주문을 어떤 학문적 토론의 대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수운과 화이트헤드'를 집필한 김상일 교수는 수운선생이 지은 '21자 주문'속에는 동서양의 많은 사상적 내용들이 축약되어 담겨 있다고 하며, 그의 저서를 통해 동학주문 21자의 심오한 내용을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과 비교하며 방대하게 풀어냈다.

수운 선생의 도통은 기존의 성자들이나 수행자들의 도통과 비교하면 상당히 특이하다. 그의 도통은 일종의 성령감화와 같은 감화통처럼 보인다. 감화통은 일종의 접신과도 같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유불선 삼도에 달통한 그를 어떠한 귀신도 결코 쉽게 속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는 그의 경신년 도통 및 이후 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그는 상제님으로 부터 도통을 받고도 상제님의 조화를 지속적으로 시험하고 그의 마음에 차지 않으면 따를 것을 거부했다. "거의 한 해 동안 수련(修)을 하고 연마를 하니, 스스로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없게 되었다." 거의 1년 동안 스스로 실험하고 충분히 납득을 한 이후, 그리고 신이한 이적을 체험한 이후에 조카 맹륜에게 도를 전하며 대중 포교가 시작된 것이다. 동학은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으나, 동학의 실질적인 내용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동학의 주문과 최수운의 도통개벽을 극복하는 비밀이 들어있다

[시천주주 주문, 강령주문과 본주문의 의의]

강령주문: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
본주문: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두 주문에 대한 수운 자신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묻는 말이 주문呪文의 뜻은 무엇입니까?", 
대답하시는 말씀이 "지극히 한
울(날)님을 위하는 글이니라. 그러므로 주문이라 말하는 것이니, 지금 글에도 있고 옛날 글에도 있는 것이니라.”

묻는 말이 "강령주문은 어떤 뜻으로 그렇게 지으신 것입니까?",
대답하시는 말씀이
         '지(至)'라는 것은 더 갈 수 없는 기운의 끝을 말하는 것이요,
         '기(氣)'라는 것은 빈 영의 기운이 우주 안에 꽉 차서 무슨 일이든지 간섭하지 않는 것이 없고 무슨 일이든지 명령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형상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이 있다고 하기 어렵고, 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나 보기 어려운 것이니, 이것이 또한 혼원한 한 덩어리의 기운이요,
          '금지(今)'라는 것은 이제 우리 도에 들어와서 한울(날)님의 기운이 접하는 것을 아는 것이요,
          '원위(願爲)'는 것은 청하고 비는 뜻이요,
          '대강(大降)'이라는 것은 한울(날)님의 기운이 화하여 크게 내려 달라고 원하는 것이요,

          '시(侍)'라는 것은 몸 안에는 신령이 있고 몸 밖에는 기운이 조화작용이 있어서,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각각 알아서 옮기지 않고 한 데 같이 있는 것이요,
           '주(主)'라는 것은 한울(날)님을 높이 존칭하여 부모 섬기는 것과 같이 효도로 섬겨야 하는 분을 말하는 것이요,
           '조화(造化)'라는 것은 사람이나 누가 그렇게 되도록 
하는 자가 없으나 자연히 가운데 화하여 되어지는 것이요, 
           '정(定)'이라는 것은, 한울(날)님의 덕과 합하고, 내 마음을 한울(날)님으로 정하는 것
요, 
           '영세(永世)'라는 것은, 사람의 한평생을 말하는 것이요, 
           '불망(不忘)'이라는 것은 잊지 않고 늘 생각한다는 뜻이요, 
           '만사(萬事)' 모든 일을 말하는 것이요, 
           '지(知)'라는 것은 한울(날)님의 도를 알고 한울(날)님의 가르침과 지혜를 받는다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밝은 한울(날)님의 덕을 밝혀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잊지 않으면, 지기와 지극히 화해서 지극한 성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라.

출처: 이영로 해의, 동경대전, 용담유사, 포덕 141년



[수련(修煉)과 대각(大覺)]


기미년(己未年, 1859년)에 이르러 거처할 곳을 정하지 못하여 마음만 답답해 하다가 장차 집안 식구들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이해 10월 용담(龍潭)으로 돌아오게 되니, 용담은 바로 산림공이 거처하며 글을 가르치던 서재(書齋)이다. 이곳으로 온 이후로 의관(衣冠)을 벗어 던지고, 문 밖으로 나가지 아니할 것을 깊이 맹세하였다. 물러나 쉬면서 어지러운 세태(世態)를 비웃으며, 한가롭고 그윽한 생활을 꺼리지 않고 세월을 바라보니, 즐거움이 오직 정자(亭子)와 연못에 있을 뿐이다.

경신년(庚申年, 1860년) 4월 5일은 곧 장조카 맹륜(孟倫)의 생일이다. 의관을 보내어 오시기를 청하니, 선생께서 그 청을 이기지 못해 억지로 참석하였다. 참석하던 중, 얼마 있지 않아서 몸이 떨리고 추운 기운이 있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이내 일어나 돌아오게 되었다. 정신이 혼미하고 미친 것 같기도 하고,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여, 엎어지고 넘어지고, 마룻바닥을 치며 몸이 저절로 뛰어오르고 기(氣)가 뛰놀아 병의 증상을 알 수 없으며, 말로 형용하기도 어려울 즈음에, 공중으로부터 완연한 소리가 있어 자주 귀 근처로 들려오는데, 그 단서를 알 수가 없었다. 공중을 향해 묻기를,      
       "공중에서 들리는 소리는 누구입니까?"
하니, 상제(上帝)께서 말씀하기를,
       "나는 바로 상제이다. 너는 상제를 모르느냐? 너는 곧 백지(白紙)를 펴고 나의 부도(符圖)를 받아라."
곧 백지를 펴니, 종이 위에 완연하게 비추어 실려 있었다. 
선생께서 아들을 불러 이를 보이니, 아들이 말하기를
        “저는 그 모양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하니, 상제 말씀하기를,
        "우매한 인생이다. 너는 붓으로 이를 써서 깨끗한 그릇에 담아 태워서 냉수로 마시도록 하라."
선생께서 즉시 한 장을 그려서 이를 태워 마시니, 처음 시도할 때에는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었다. 이가 바로 그 특징이었다. 
        "너는 나의 아들이다.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해라." 
선생께서 공경스럽게 가르침을 받아 아버지라고 불렀다. 상제 말씀하기를,
         "너의 정성이 가히 아름답구나. 부(符)는 곧 삼신산(三神山) 불사(不死)이다. 네가 이것을 어찌 알겠느냐?"
선생께서 비로소 수백장을 그려 연이어 탄복(吞服)하니, 일고 여덟 달이 지난 후에 몸이 부드러워지며 윤택해졌고, 용모가 아주 좋은 모양으로 바뀌게 되었다.
시(詩)한 구를 짓기를,
         "황하(河)의 물이 맑아지고 봉황이 우는 것을 누가 능히 알겠는가, 운(運)이 어느 곳에서부터 오는지 나는 알지 못하겠노라." 라고 하였다.
상제께서 또 가르쳐 말씀하기를,
         "너는 백의(白衣)의 재상(相)을 제수(除授) 받겠는가?"
선생께서 대답하기를,
         "상제의 아들로서 어찌 백의의 재상이 되겠습니까?"
상제 말씀하기를,
         "그렇지 않으면, 나의 조화(造化)를 받아라. 이제 나의 조화를 보도록 하라."
선생께서 가르침을 받아 이를 시험해 보니 모두 세상에 있는 조화였다. 선생께서 응(應)하지 않으니, 또다시 말씀하기를 
         “이 조화를 행한 이후에 저 조화를 행하도록 하라."
선생께서 즉시 이를 행하여 보니, 이 조화 저 조화 모두 역시 세상에 있는 조화였다. 만약 이 조화로써 사람들을 가르치게 되면 반드시 사람들을 잘못 이끄는 것이 되기 때문에 영원히 거행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상제께서 다른 조화를 보이며 말씀하기를,
         “이 조화는 진실로 행해야 할 조화이다."
선생께서 힘들여 이 조화를 행해 보니, 이것 역시 먼저의 조화와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그후 비록 명교(敎)가 있어도 이를 거행하지 않기로 맹세하고, 열하루 동안을 음식을 먹지 아니했다. 음식을 끊은 이후 상제께서 단 한마디의 가르침도 내리지 않다가, 거의 한 달 가까이 이르러 하교(敎)하여 말씀하기를,
         "아름답구나, 너의 절개여. 너에게 사용할 수 있는 무궁(無窮)의 조화를 내려서 포덕천하(布德天下)하게 하리라."
선생께서 비로소 음식을 들게 되고, 이후로부터 마음을 닦고 기운을 바르게 했다. 거의 한 해 동안 수련(修)을 하고 연마를 하니, 스스로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없게 되었다. 이어서 용담가 (龍潭歌)를 짓고, 또 처사가(處士歌)를 짓고 교훈가(敎訓歌)안심가(安心歌)를 한가지로 짓게 되었다. 또한 주문(呪文) 두 건(件)을 지으니, 한 건의 주문은 선생이 읽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아들과 조카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또 강령(降靈) 주문을 짓고, 나아가 검결(劍訣)을 짓고, 고자주문(告字呪文) 지으니, 그 내용이 <백의동(白衣童) 청의동(靑衣童)>하는 것이 된다. 주문을 지어서 비록 이곳에 있으나, 하늘의 현기(玄機)는 함부로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늘에 감추고 땅에 숨기는 것이라고 했다.

뜻하지 않은 어느 날에 상제께서 말씀하기를,
       "너는 내일 꼭 친산(親山)에 성묘(省墓)를 가도록 해라."
하니, 선생께서 다음날을 기다려 갈 준비를 했다. 가려는 날에 마침 큰비가 내려, 모든 것이 막혀 나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상제께서 독촉하여 말씀하기를,
       “어찌하여 늦는가? 즉시 성묘를 가라."
하니, 선생께서 비를 무릅쓰고 가는데, 우구(雨俱) 우의(雨衣)도 없는데 젖은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조카의 집에 이르러 인마(人馬)를 빌리는데, 조카가 말하기를,
       “이와 같은 큰비에 갑자기 왜 성묘를 하시려 합니까?"
선생께서 억지로 인마를 준비하여 길을 떠나, 50리를 왕복하였으나 태양이 머리 위에 둘러 있었고, 하인까지도 조금도 젖지 않은 채 돌아왔다.
조카가 말하기를,
       "종일 큰비가 내렸는데 어찌 젖지 않고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까? 참으로 기이하고 이상한 일입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하기를,
       "이것은 한울님의 조화이다."
이에 조카가 더욱 괴이하게 여기게 되었다. 10월에 이르러 조카 맹륜이 와서 도(道)에 들기를 청하였다. 선생께서 이를 전하여 주었다. 

상제께서 또 일컬어 말씀하기를,
        "너의 전후(前後)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내가 반드시 간섭하게 될 것이다. 또한 네가 이 정자(亭子)에 들어앉아 이름과 호(號)를 고치고 산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며, 소위 입춘시(立春詩)<도의 기운이 오래도록 있으니 사악함이 들어오지 못하고, 세상의 뭇사람들과 한가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道氣長存邪不入 世間衆人不同歸)>를 써서 벽상(壁上)에 걸어 두고 세상을 조롱하니, 실로 우스운 일이다. 네가 이왕에 사람들을 가르치고 포덕(布德)을 하니, 나를 위하여 지극히 섬기면 너 역시 장생(長生)하게 되어 천하에 빛을 비추게 될 것이다. 비록 이와 같으나 너의 나라 운수가 참혹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오직 위태로우며 도(道)의 마음이 미미 하여 삼강(三綱)이 모두 없어지고 오륜(五倫)이 점차 해이해져서 곳곳의 수목(守牧)의 관리는 백성을 학대하여 잘못 다스리고, 백성 역시 분수를 잃어 모두 어하지탄(漁河之歎)뿐이라. 작란(作亂)이 무수하고, 이렇게 되기를 연 3년에 이르니, 이런 까닭에 임금은 임금의 노릇을 못하고, 신하는 신하의 노릇을 못하고, 어버이는 어버이의 노릇을 못하고, 자식은 자식의 노릇을 못해 도덕을 따르지 않으니, 너의 나라가 어찌 상해(傷害)의 운수가 아니겠느냐? 너는 삼가해서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을 가르치도록 하라." 하는 말씀을 내렸다.

출처: 윤석산, 도원기서 (문덕사, 1991)


1933년에 간행한 '천도교창건사'
에는 대구형장에서 최수운 선생이 마지막으로 보인 신이한 이적을 소개했는데 다음과 같다. "1864년 익월(3월) 10일에 대신사(大神師, 수운) 대구장대에서 참형을 받을 새, 처음 형졸이 수차 목을 베이되 조금도 검흔(劍痕)이 없는지라 감사 이하 모든 관속들이 창황실색하여 어찌할 줄을 모를 즈음에 대신사 형졸에게 청수(淸水) 일기를 가져 오라 하시고 청수를 향하여 한참동안 무엇을 묵도하시더니 태연히 형리를 향하여 이제는 안심하고 베어라 하신 후 조용히 형에 나가시니 때는 대신사 탄생 41년 3월 10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