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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정보/인문학

가장 오랜 전쟁-[이재윤 칼럼]-펌

by 광명인 2023. 10. 28.

[결론은 역사 전쟁이다.
나는 누구이며 우리의 시조始祖는 누구인가?
단군의 자손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바뀔수도 있는가?
뿌리와 단절된 생명체는 결국 소멸한다는게 만고의 진리다.
비록 시간은 걸리지만, 진실은 결국 밝혀지고 억눌린 원한은 마침내 터져나오게 되어있다. 
뿌린대로 거두고,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주기의 끝은 반드시 새로운 시작으로 연결이 된다. 
결론은 새로운 질서를 열기위한 인류 최후의 역사 대전쟁인 것이다.
기독교도 이미 그 운을 다했다. 
그럼 무엇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인가?
중국의 중화사상, 비트코인, 인공지능?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면, 
그 새로운 세상을 열어낼 새로운 정신과 철학, 이념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김지하 시인은 대전환기에 나타날 새로운 성배민족한민족이며, 그 사상은 후천개벽사상이라고 전했다.
전세계적으로 거세게 불어온 한류의 바람은 과연 우연일까 아니면 홍익인간의 세상을 열기 위한 신의 안배일까?]


누가 역사의 바른편에 서 있는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할 때 마침 3천여 년 전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사를 읽는 중이었다. 12지파 중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의 농부 아들로 태어난 사울, 그가 족장 시대를 끝낸 후 이스라엘 초대 왕에 오르고, 목동(牧童) 다윗과 블레셋 장수 골리앗의 싸움, 역사(力士) 삼손과 블레셋 출신 연인 들릴라가 등장하는 즈음의 이야기다. '이스라엘 vs 블레셋 전(戰)'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수천 년 동안 끝내지 못한 가장 오랜 전쟁이다. '최후의 싸움' 아마겟돈 전의 무대 '므깃도의 언덕' 역시 지척에 있으니 이 전쟁은 진정 인류사의 처음과 끝을 장식할 터인가. 신은 곧 사랑일진대, 신의 인간을 향한 사랑의 역사가 전쟁으로 채워진 건 이성 너머의 섭리며 애사(哀史)다. 인류 역사는 사랑과 전쟁의 서사(敍事·Narrative)라 할 만하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

'블레셋(Philistine)', 이 명칭에서 유래된 지명이 '팔레스타인'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의 서남쪽 지역을 일컫는다. 당시 블레셋 족속이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은 아니다. 블레셋 족속은 갑돌(Caphtor·지중해 섬)에서 이주한 가나안 초기 원주민이었을 뿐이다. 후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팔레스타인'이란 이름만은 남긴 셈이다. 블레셋의 5대 성읍 중 하나가 '가사'. 바로 하마스의 본거지이자 중동의 화약고 '가자 지구'다.

왜 한국인의 믿음의 조상이 아브라함일까?

블레셋·팔레스타인·가나안·이스라엘·이슬람의 불행한 뒤틀림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브라함은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동일 시조이다. '같은 뿌리 다른 혈통'에서 비극이 잉태했다. 아브라함은 우르(이라크 남부)에서 태어나 하란(튀르키예 남부)을 거쳐 75세에 가나안 땅으로 갔다. 그가 거주한 '그랄' 땅은 '가자'의 남쪽 블레셋 마을이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유산이며, 이슬람교는 또 다른 아들 이스마엘의 맥을 잇는다. 손자 야곱 때 애굽으로 이주, 400여 년간 노예로 지냈다. 모세의 출애굽 사건과 40년의 광야 생활,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조상 아브라함의 옛땅에 다시 정착했다. 그곳에 살던 일곱 이민족과의 오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 이주와 정복을 반복하며 수천 년 동안 피를 적신 팔레스타인 땅의 진짜 주인이 누구냐를 따지는 건 그래서 부질없다. 오랜 역사적 원(原)과 켜켜이 쌓인 종족의 원(怨), 그곳을 향한 종교적 원(願)이 서려 지금까지 내려온다. 팔레스타인 또 하나의 분쟁지 예루살렘은 1천 년은 유대교, 400년은 기독교, 1천300년은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 시대에는 그리스인과 유대인, 중세에는 무슬림과 기독교인, 근대에는 영국과 오스만 제국, 지금은 아랍인과 유대인들이 싸운다.

수천년간의 전쟁으로 원한이 켜켜이 쌓여 피로 얽룩진 땅 예루살렘이 성스러운 땅?

2주째 넘어가는 이 전쟁의 극적 장면은 이것이다. 항공사들이 이스라엘 노선 운항을 사실상 중단했지만, 유대인을 가득 태운 전세기가 미국에서 이스라엘을 향했다. 자는 아이들에게 작별의 키스를 한 뒤 참전을 위해 떠난 유대인들의 자발적 귀국 행렬. 애국심만으로 설명이 안 된다. 한 치의 두려움 없이 이스티샤드(istishad·자기희생적 죽음)를 감행하는 이슬람 전사도 마찬가지다. 결코 한 시대의 분쟁이 아니다. 수천 년의 '원'이 엉긴 가장 오랜, 가장 치열한, 기어이 '최후의 싸움'을 보고야 끝내게 될 불가사의다. [참고로, 증산도 도전에는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린다"고 한다.]

그래! 이건
인간의 전쟁이 아니다.

이스라엘군과 이슬람 전사들


출처: 영남일보 이재윤 칼럼

 

[이재윤 칼럼] 가장 오랜 전쟁

누가 역사의 바른편에 서 있는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할 때 마침 3천여 년 전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사를 읽는 중이었다. 12지파 중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의 농부 아들로..

www.yeongnam.com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의 분쟁과 하마스(feat. 이슬람원리주의, 아랍 민족주의)
https://www.youtube.com/watch?v=brA16Of6pz8

모든 현상은 인과론적 시각으로 봐야한다. 하마스가 괴물이 된 이유가 뭘까?

"팔레스타인은 없다" 망언 장관 전면 배치한 이스라엘…분노 먹고 괴물된 하마스 / SBS 
https://www.youtube.com/watch?v=DoC1rNc_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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