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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보

환단고기 출간에 자금을 댄 홍범도 장군

by 광명인 2023. 9. 2.

[역사왜곡의 문제는 고대사에만 한정되지 않고, 근현대사에서도 정치적 목적에 따라 더욱 치열하게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E.H.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에 의해서 기술되는 것이므로 우리는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먼저 역사가를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요. 그러나 역사가 또한 역사와 그 시대의 산물이기에 결국 '역사란 사실 그 자체라기 보다는 그 시대의 주류세력에 의해 널리 승인된 일련의 판단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최근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문제로 역사논쟁이 강하게 불붙는 것 같습니다. 모든 정치적 행위는 반드시 의도와 목적을 가지는데요. 그럼, 최근 윤석열정부역사 지우기와 자유주의 이념을 강조하는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요?] 

대한민국 육군의 아버지는 1909년 이토를 사살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1910년 강제병탄 후에 의병과 대한제국군 출신들이 다시 모여 결성한 천마산대 최시흥, 신흥강습소를 설립한 이회영,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 서로군정서 총주석 이상룡, 의열단장 김원봉, 의열단 김상옥, 나석주, 박재혁, 대한독립군 홍범도, 북로군정서 김좌진, 통의부 오동진, 광복군 창립에 결정적 기여를 한 한인애국단 윤봉길, 이봉창, 국내 진공작전을 맡은 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광복군을 창설한 김구 주석이다. [출처 클릭: 홍범도 흉상 이전 백지화해야]

'홍범도 지우기'‥국방부 관련 영상 삭제 (2023.09.02/뉴스투데이/MBC) 
https://www.youtube.com/watch?v=oK9RQizO1J8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하기로 한 데 이어 국방부 산하 홍범도 장군 관련 동영상을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5명의 흉상이 육군사관 학교에 세워진 지난 2018년 국방부가 공식 SNS에 올린영상입니다.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은 시대 상황을 잘 몰라서 생긴 오해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국방부 산하 국방홍보원이 만든 이 영상은 그런데 최근 돌연 비공개 처리됐습니다. 정부의 철거 방침에 반대해 온 홍범도평전 작가를 다룬 국방부 기사도 지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흉상을 들어내기로 한 육군사관학교는 교과 과정 개편에도 착수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선택 과목으로 지정한 한국전쟁사북한학, 군사전략 세 과목을 공통 필수 과목으로 바꾸기로 했는데 연일 이념을 내세우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문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홍범도 대신 맥아더? 왜 굳이 육사에?…'흉상 이전' 논란 격화 "이건 역사 쿠데타" / SBS / 모아보는 뉴스 
https://www.youtube.com/watch?v=6MyWpexro_w

한 총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우리헌법 기본정신의 충실해야 한다며, 홍장군은 소련 공산당 가입 전력이 있어 고민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적과 전쟁을 해야 하는 그러한 임무를 교육받는 장소에 적절하냐 하는 것은 논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육군사관학교는 홍장군 흉상만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고 인천상륙작전을 이끈 맥아더 장군의 흉상배치를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홍범도 장군 사업회 등 독립운동과 단체들은 흉상 이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독립 전쟁 영웅의 명예를 더럽히고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것은 평소 독립운동가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는 국민들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단체들은 1922년 홍장군이 소련의 입국하면서 자필로 자신의 직업은 의병이고 목적은 고려 독립이라고 적은 출입국 카드를 제시하며 흉상 이전은 역사 쿠데타라고 주장했습니다. 

홍장군의 소련 입국시 자필로 적은 출입국 카드, 직업은 의병, 목적은 고려 독립


[현장영상] "홍범도 흉상 이전, 학계 협의 있냐" 묻자 국방부가 내놓은 답 / JTBC News 
https://www.youtube.com/watch?v=-jXTY4nLwqY 

오늘(29일) 국방부는 서울 용산구 국방부·합동참모본부 청사 앞에 설치돼 있는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검토하더라도 외부 전문가 자문 등은 필요치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기자 질문: 국방부에서 어제 저녁에 추가로 배포하신 입장문 같은 경우에도 자유시참변에 홍범도 장군이 개입했다거나 마치 우리 독립군을 소탕한 주범처럼 읽혀지도록 되어 있던데,,,  "러시아 공산당 극동 공화국 군대가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자유시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음" 이렇게 명시적으로 써놨던데,, 공식 사료에는 자유시참변에 가담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다는 게 공식적인 학계의 입장이잖아요. 공식 입장으로 자료도 없는데 국방부 '의혹'이라고 단정적으로 낼 만한 내용인지 그 판단 근거가 좀 궁금합니다.

국방부 답변: 자유시참변 연관성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학계에서 의견이 있는 걸로 알고 있고, 또 여러 가지 문서에 따르면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기 위해서든지 그렇게 해서 작성한 이력서에 관련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 질문: 지금 말씀하신 것은 소련의 냈던 그 문서에 이런 말이 있다는 건가요?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자신이 가담했다라는 내용을 소련에 말을 했다는 자료를 확보했다 이 말씀이신 거죠?

국방부 답변: 네 그런 문서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 질문: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직접 참가 했다라고 말씀을 하신 거예요?  

국방부 답변: 연관성 등 의혹에 대한 역사적 자료 이런 것들이 있다라고 말씀한 겁니다. 

기자 질문: 아까 김민관 기자가 분명히 재차 질문한게 자유시 참변에 직접 가담을 했느냐라고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그게 맞다라는 거는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참변에서 우리 독립군을 살해하는데 가담했다는 내용이 되거든요. 

국방부 답변: 아,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게 말씀드렸다면 제가 잘못 드린 거 같고, 자유시 참변 연관성 등 여러가지 의혹에 대하여, 

기자 질문: 그런데 그렇게 읽히게 적어놨어요. 이 공문서 누가 만든 거죠? 

국방부 답변: 국방부 관련 논의부서와 논의해서 만든 겁니다. 정책실 관련 부서 등에서 받은 입장문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기자 질문: 거기에 우리 근현대사, 독립운동사 전공한 분이 있었어요? 자 보세요. 독립운동의 업적은 업적대로 평가하되라고 써놓고, 독립운동 업적은 한 줄도 안 썼어요. 이게 있고요. 다음에 홍범도 장군이 활약했던 20년대는 레닌의 공산당이고,  그거 북한군을 사주해 가지고 6.25 남침을 한 공산당은 그건 스탈린의 공산당이에요. 레닌의 공산당과 스탈린의 공산당은 아주 다릅니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차이보다 더 커요. 근데 그거를 같은 공산당이라고 보면 어떡하느냐? 이거 되게 논쟁적인 부분인데, 이걸 단정해 가지고 레닌의 공산당과 스탈린의 공산당을 같은 걸로 봐 버리면은 문제 있죠. 이걸 국방부에서 공문서로 이렇게 내 가지고 기자한테 줘 버린다는 거는 문제 있죠. 역사 논쟁에 끼어드는 건 좋은데, 역사논쟁 이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치열하게 하는 거고, 정확하게 하는 거거든요. 그리고 빨치산(partizan, 비정규군)에 가입된 상태에서 그 봉오동하고 청산리에 참가했으니 이건 문제가 있다? 1920년대 19년대 빨치산하고 김일성하고 스탈린하고 아무 관계없습니다. 김일성 그때 몇 살이었어요? 김일성이 1912년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금 1919년부터 22년까지 빨치산 자격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고 이게 문제가 된다? 왜 문제가 됩니까?

국방부 답변: 저희가 입장을 드린 거에 여러가지 의견을 가지실 수는 있는데, 저희는 저희 입장을 정리해서 드린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기자 질문: 이거 공문서라니까요. 국민을 향해 만들어낸 공문서예요. 이렇게 어설프게 역사적 식견도 없이,,

국방부 답변: 여러 의견이 있으실 수 있겠지만 저희 입장을 설명드린 거니까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국방부 청사앞 홍범도 장군 흉상

홍범도 장군 발굴영상 / / KBS 2020.10.24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okQXLClEU6s 

전설적인 의병장이자 독립군 대장이었던 홍범도 장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수 있는 매우 귀한 영상이다. 당시 서구열강의 식민지 정책에 실망한 많은 애국투사들이 소비에트 지도자 레닌의 식민지, 반식민지 독립지원정책에 기대를 걸고 참석한 대회다.  홍범도 장군은 이때 레닌을 만나 조선독립의 방략을 논의하고 권총외투 등을 선물 받았다.

[홍범도의 친필 편지]

홍범도(1868~1943) 장군은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함경도 삼수 · 갑산에서 오랫동안 사냥꾼 생활을 하며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때 금강산 신계사의 상좌이던 지담 스님(이순신 장군의 후손)으로부터 이순신 장군의 진법과 용병술을 전수 받기도 하였다. 문무를 겸비한 지략가로서 뛰어난 용병술과 지도력으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하여 '날아다니는 백두산 호랑이’, 비장군飛將軍’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용맹을 떨쳤다. 독립군으로서 가장 많이, 가장 치열하게 싸웠고 가장 많이 이겼으며, 가장 많이 죽였고 가장 오래 투쟁하였다. 그리고 일본군이 가장 두려워한 사람이었다. 

이 편지는 그동안 우리나라 학계가 홍범도 장군을 무식한 사냥꾼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사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검증이 부족했음을 잘 드러내는 증거이다(EBS,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 4부, 2005).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환단고기 범례]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환단고기는 모두 해학 이기 선생의 감수를 거쳤으며, 또 내가 정성을 들여 부지런히 편집하고 옮겨 적었다. 그리고 홍범도 · 오동진 두 벗이 자금을 대어 목판에 새겨서 인쇄하였다. 이로써 우리 자신의 주체성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크게 축하할 만한 일이요, 또한 민족 문화의 이념을 표출하게 되었으니 크게 경축할 만한 일이며, 또 한편으로 세계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으니 더욱 경축할 만한 일이다. 신시개천神市開天 5808년, 광무光武 15년 신해(1911)년 5월 광개절에 태백 진리[神敎]의 정신을 계승한 선천宣川 사람 계연수 인경仁卿이 묘향산 단굴암에서 쓰노라.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계연수 1864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는데, 어릴때부터 무엇이든한 번 보면 곧바로 외울 만큼 기억력이 뛰어났다. 동방한민족의 옛 역사와 민족정신에 관심이 지대했던 그는 27세(1890) 때까지 약초를 캐어서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여러 양반가와 사찰에서 비장하던 서책과 금석문, 암각문 등 각종 사료를 수집하였다. 한민족의 역사를 밝히고자 한 계연수가 뜻을 이룰 수 있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해학 이기와의 만남이었다. 1897(34세)에 이기의 문하에 들어간 계연수는 스승의 가르침 아래, 그로부터 두 해 동안에 이암의 태백진훈 단군세기 그리고 참전계경, 태백일사, 천부경요해 등을 간행하였다.  
1909년 대영절(3월 16일)에 이기, 나철 등이 단학회를 창립하고 그해 5월 5일에 강화도 참성단에서 천제를 올려 삼신상제님께 이를 고할 때, 계연수도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였다. 두 달 후에 이기가 자진하자, 계연수가 그 뒤를 이어 단학회 2대 회장을 맡았다. 
2년 후인 1911년(48세), 계연수는 스승이 생전에 세세히 감수해 준 환단고기에 범례凡例를 지어 붙인 후 드디어 세상에 내놓았다. 범례에 나와 있듯이, 묘향산 단굴암에서 책을 옮겨 편집한 후, 자신의 벗이자 독립운동 동지인 홍범도(1868~1943)와 오동진(1889~1944) 두 사람의 자금 지원으로 만주 관전현에서 환단고기 30부를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