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단고기/단군세기

단군세기: 34, 35, 36세 오루문, 사벌, 매륵 단군

by 광명인 2023. 8. 31.

34세 단군오루문 재위 23년 

오루문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오(환기 6403, 신시개천 3103, 단기 1539, BCE 795)년이다. 이 해에 오곡이 풍성하게 잘 익어 만백성이 기뻐하며 '도리가兜理歌'를 지어 부르니 그 가사는 이러하다. 

하늘에 아침 해 솟아 밝은 빛 비추고 
나라에 성인이 계셔 후덕한 가르침 널리 미치도다. 
큰 나라 우리 배달 성조聖朝여! 
많고 많은 사람들 가혹한 정치 당하지 않아 
즐겁고 화평하게 노래하니 늘 태평성대로세!
 
재위 10년 을묘(단기 1548, BCE 786)년, 두 개의 해가 함께 뜨고 누런 안개가 사방을 덮었다. 
재위 23년 무진(환기 6425, 신시개천 3125, 단기 1561, BCE 773) 년에 오루문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사벌께서 즉위하셨다. 

35세 단군 사벌 재위 68년 

사벌단군의 재위 원년은 기사(환기 6426, 신시개천 3126, 단기 1562, BCE 772)년이다. 
재위 6년 갑술(단기 1567, BCE 767)년, 이 해에 누리가 날뛰고 홍수가 있었다. 
재위 14년 임오(단기 1575, BCE 759)년에 범이 궁전에 들어왔다. 
재위 24년 임진(단기 1585, BCE 749)년에 홍수가 나서 산이 무너지고 골짜기가 메워졌다. 
재위 50년 무오(단기 1611, BCE 723)년에 임금께서 장수 언파불합彦波弗哈을 보내어 바다 위의 웅습熊襲(구마소)을 평정하셨다. 
재위 66년 갑술(단기 1627, BCE 707)년에 임금께서 조을祖乙을 보내어 곧장 연燕나라 수도로 진격하게 하시니, 제齊나라 군대와 더불어 임치臨淄(제나라 수도) 남쪽 들판에서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고 고하였다. 
재위 68년 병자(환기 6493, 신시개천 3193, 단기 1629, BCE 705)년에 사벌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매륵께서 즉위하셨다. 

36세 단군 매륵 재위 58년 

매륵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축(환기 6494, 신시개천 3194, 단기 1630, BCE 704)년이다. 
재위 28년 갑진(단기 1657, BCE 677)년에 지진과 해일이 일어났다. 
재위 32년 무선(단기 1661, BCE 673)년에 서쪽 마을 민가에서 다리가 여닮 개 달린 송아지가 태어났다. 
재위 35년 신해(단기 1664, BCE 670)년에 용마龍馬가 천하天河에서 나왔는데 에 별 무늬가 있었다.  
재위 38년 갑인(단기 1667, BCE 667)년 협야후陜野候 배반명裵搫命을 보내어 해상의 적을 토벌하게 하셨다. 12월에 삼도三島(일본을 구성하는 세 섬, 곧 큐슈, 혼슈, 시코쿠)를 모두 평정하였다. 
재위 52년 무진(단기 1681, BCE 653)년에 임금께서 병력을 보내 수유국須臾國 군대와 더불어 연燕나라를 정벌하자 연나라 사람이 제齊나라에 위급을 고했다. 제나라 사람들이 대거 고죽孤竹으로 쳐들어오다가 아군의 복병을 만나 전세가 불리하자, 화친을 구걸하고 물러갔다. 
재위 58년 갑술(환기 6551, 신시개천 3251, 단기 1687, BCE 647)년에 매륵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마물께서 즉위하셨다. 

기원전 667년에 일본의 삼도를 평정한 협야후 배반명과 일본서기에 나오는 진무천황은 동일인물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일본에 전해진 단군의 역사

도리가兜理歌: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3세 유리왕 때 지은 도솔가兜率歌를 우리가락의 시초라 하였다. 그러나 민족 음악은 배달국 신시 시대에 시작되었으며, 당시의 명칭은 '공수貢壽'였다. 그리고 단군조선, 고구려 때에는 온 백성이 한마음이 되어 부른 '어아가'가 있었다. '도리가'도 이러한 노래의 하나로, 백성이 둥글게 모여 함께 노래 불러 '삼신상제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나라에는 복이 길창하고 민심을 진실로 즐겁게 한 것’이다(태백일사의 소도경전본훈).

웅습熊襲: 일본의 큐슈지방에 있는 지명으로 구마소라한다. 본래 큐슈 지방에 곰이 서식하지 않는데도 구마모토 · 구마시로 · 구마가와 등 웅熊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이 보인다. 이것은 배달국 환웅 시대 웅족熊族의 토댐 신앙을 그대로 계승한 '단군조선의 부여계'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고대 문명을 건설한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반증하는 것이다. 현재 북큐슈 후쿠오카현 '히코산'에는 환웅천황의 화상이 남아있다(김향수, 일본은 한국이더라 61쪽). 

협야후陜野候 배반명裵搫命: 태백일사의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 하에는 "갑인(BCE 667)년에 협야후에게 명하여 전선 500척을 거느리고 해도를 거쳐 왜인의 반란을 평정하였다”라고 밝혔다. BCE 667년은 일본서기에 진무神武왕이 등장하는 해이고, 협야후 배반명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진무왕즉 사노노미코토狹野候이다. 3세 가륵단군 재위 10년(BCE 2173)에 두지주의 예읍이 반란을 일으키자 임금께서 여수기를 보내 추장 소시모리의 목을 베게하셨다. 이 소시모리의 후손에 협야노라는 인물이 있다고 하였다.
 
수유국須臾國: 기자는 상商나라 왕족으로서 자子라는 작위를 가진 인물이 기箕라는 나라에 봉함을 받은 기국의 통치자란 뜻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자는 상나라 말기의 인물로 이름은 '서여胥除 또는 수유須臾’이다. 은나라가 망하자 이 기자의 일족은 번조선의 서쪽인북경과 하북성 난하 일대로 망명해와 자리를 잡고 단군조선의 작은 제후국으로 존재했다. 따라서 수유는 기자의 후예가 세운 나라 이름이라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