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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정보/인문학

엔 캐리 트레이드의 역사적 배경

by 광명인 2025. 4. 1.

[통찰력이란 사물이나 상황의 본질을 꿰뚫는 힘이며,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을 알아차리는 능력입니다. 이러한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단순한 표면적 현상에 관한 지식에만 머무르지 말고, 현상의 구조와 역사적 흐름속에 담긴 인과관계를 꿰뚫어보려는 시도, 그리고 변화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이러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으며, 금융시장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금융에 대한 통찰을 얻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실제로 탁월한 금융 투자가들 대부분은 시장의 흐름과 심리를 역사 속에서 꿰뚫어 본 인물들이기도 하죠. 아래는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에 관한 역사적 흐름을 잘 정리한 어느 유튜브의 내용입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일본의 장기적인 초저금리와 글로벌 금융시장의 고금리 간의 차이를 활용해, 일본의 은행보험사는 물론 전 세계 자산 운용사와 수많은 개인 투자가들이 활용해온 대표적인 자본 투자 전략입니다. 도이체방크의 분석에 따르면, 엔 캐리 트레이드의 규모는 무려 20조 달러, 한화로 약 2경 7천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구조는 일본의 금리 인상, 환율 변동, 대규모 재난 등의 변수에 따라 언제든지 급격한 청산 사태로 이어질 수 있는 내재적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는 현대 금융자본주의에 내재한 시한폭탄과 같은 구조적 취약성을 상징합니다. 

2011년에 G7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막은 것처럼, 과거에는 일본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청산 리스크가 나타날 때마다 주요국 간 공조를 통해 엔화 강세를 일정 부분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전 세계는 동시다발적인 경기 침체와 만성적 부채 부담에 시달리고 있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은 국제 공조의 기반마저 흔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단순한 투자 전략의 붕괴를 넘어, 글로벌 금융 질서 전반에 심각한 지각변동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리스크가 같다면, 수익이 높은 곳으로 몰려다니는 속성이 있다." 
캐리 트레이드는 저금리 통화로 자금을 차입하여 고금리 통화로 투자하는 전략으로, 금리 차이에서 수익을 추구합니다. 이 전략은 환율 변동에 민감하여, 예상치 못한 환율 변동시 투자자에게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캐리 트레이드는 잠재적인 수익 위험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죠.

  약 한 달 전 2024년 8월 5일에 증시가 갑자기 폭락을 했었죠. 이날 공포 심리를 나타내는 '빅스(Vix) 지수'60을 넘어갔었습니다. 경기 침체 우려에 엔고 현상이 맞물려 공포감이 조성되었던 거죠. 도대체 엔 캐리 트레이드가 뭐길래 다들 이토록 우려하는 걸까요? 오늘 이야기할 엔 캐리 트레이드를 이해하면 돈의 흐름에 대한 이해의 폭이 꽤나 확장되실 겁니다. 더 나아가 전략적인 사고를 통해 자산을 지키거나 불릴 수도 있겠죠.

  일본에서는 그나마 이자가 높고 안전한 우체국 예금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그런데 우스갯소리로 전철을 타고 가야 하는 우체국에는 예금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전철을 타고 왔다 갔다 하는 비용이 결국 예금 이자보다 많이 나오기 때문에 나온 말이죠. 일본의 금리를 보면 30년 가까이 금리가 1%도 되지 않았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는 가뜩이나 낮은 금리를 더 낮추기만 했죠. 그러다 2016년 2월부터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내립니다.

  도대체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재테크를 해야 할까요? 2007년 어느 날 갑자기 한 사건이 화제가 됩니다. 50대의 전업주부가 4억 엔 즉 우리나라 돈으로 당시 약 50억 원을 벌고 세금을 내지 않아 벌금을 크게 맞은 사건이 뉴스에 나온 거죠. 이 부인은 일본의 싼 이자로 돈을 빌려다가 다른 나라의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한 겁니다. 게다가 엔화 가치는 계속 떨어지다 보니 환율 이익까지 보게 되는 거죠. 이걸 바로 엔 캐리 트레이드라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의 전업주부들은 앞다투어 엔 캐리 트레이드를 하기 시작하는데요. 이를 가리켜 영국에서 와타나베 부인 조심하세요. 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와타나베 부인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죠.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김 여사처럼 흔한 성씨를 붙인 겁니다. 이렇게 '금리'에 따라서 돈을 이동하며 이익을 먹으려고 하는 집단은 '와타나베 부인'뿐만이 아닙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저금리로 돌아서자 미국의 '스미스 부인'이 나왔고 유럽이 초저금리가 되면서 '소피아 부인'이 나왔죠. 이처럼 자국의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면 해외 투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인 동향입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 돈의 속성, 한 가지는 "돈은 리스크가 같다면, 수익이 높은 곳으로 몰려다니는 속성이 있다." 꼭 기억해 두세요. 당연한 듯 보이지만 돈의 흐름과 속성을 잘 이해하는 것이 통찰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엔고일 때와 엔저일 때 어떤 일들이 생기는지 살펴볼 건데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 스토리는 꽤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나와도 전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느끼실 거예요. 1869년 11월 17일 수에즈 운하가 개통이 됩니다. 19세기에 증기선이 발명되고 유럽과 인도양의 거리를 단축하는 운하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었죠. 이때 운하의 건설 비용은 이집트 정부와 프랑스 민간 투자자들이 반반씩 부담했습니다. 그래서 지분도 20만 7천 주는 프랑스가 17만 7천 주는 이집트가 소유했죠. 수에즈 운하로 인해서 유럽에서 인도양으로 나가는 거리는 최대 9900km나 단축되었습니다. 몇 달을 빨리 오갈 수 있는 거리죠.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이집트 정부가 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수에즈 운하 외에도 엄청난 비용을 인프라 건설에 사용했다는 건데요. 1년 수입이 800만 파운드인 나라인데 국가 부채가 9천만 파운드까지 증가했습니다. 수에즈 은하 초기에는 물동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공사 비용을 조달하려고 발행했던 채권을 수에즈 은하 수입으로 상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때가 되어 '채권 만기'가 돌아오자 이집트는 수에즈 은하의 지분을 매물로 내놓게 됩니다. 그 수에즈 은하의 이집트 지분 전부를 영국이 싹 매수하죠. 그렇게 수에즈 은하는 프랑스와 영국의 소유가 됩니다. 

 시간이 흘러 1952년 7월 이집트에서 군부 쿠테타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쿠데타의 주역인 나세르가 대통령에 취임하며 정권을 장악하죠. 나세르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의 외교를 강화해 나가는데요. 그리고 1956년 7월 수에즈 은하를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하죠. 수에즈 은하 대주주인 영국과 프랑스는 어이가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이스라엘을 앞세워 이집트를 공격합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로 나가는 육상 통로를 갖고 싶어 했거든요. 그렇게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공격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를 점령합니다. 근데 이걸 본 미국과 소련은 화가 나는 거예요. 지는 해인 영국과 프랑스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집트를 공격했기 때문이죠. 

 미국은 정부가 보유한 영국 국채를 전량 매각하겠다고 위협했고 소련은 핵 공격을 할 수 있다며 나섰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하는 수 없이 수에즈 운하에서 철수하게 되죠. 반면, 이스라엘은 홍해로 가는 육로를 확보하며 목표를 달성합니다. 이 사건을 2차 중동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이집트의 나세르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선 패배했지만, 영국과 프랑스로부터는 수에즈 운하를 지켜냈습니다. 그렇게 나세르는 이집트에서 영웅 대접을 받으며 지지율이 크게 올라갔어요. 

 그리고 1967년 6월 5일 새벽 나세르는 이스라엘이 확보한 홍해로 가는 육로를 봉쇄하며 이스라엘과 협상을 시도합니다. 이스라엘 선박들이 수에즈 운하를 지날 때 이스라엘 국기만 내리면 통과를 허용하겠다. 나세르는 이 정도는 이스라엘이 협상에 응할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날 아침 8시경 전투기로 이집트 공군기지를 폭격해 버립니다. 3시간 동안 폭격하자 이집트가 보유한 항공기는 4분의 3이 파괴되었어요. 게다가 공군과 레이더 기지 등도 다 파괴되었죠. 그렇게 이스라엘 공군이 하늘을 먼저 장악한 후 전차를 앞세워 수에즈 운하까지 진격했고 이집트는 결국 일주일도 안 되어서 항복을 합니다. 이렇게 3차 중동전쟁은 끝이 나죠. 

 그리고 1973년 10월 6일 이스라엘의 휴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휴가를 떠났을 때 이집트는 기습 공격을 해요. 이스라엘은 전투기의 10%가 넘게 파괴되고 전차는 800대가 파괴되는 상황에 이릅니다. 이때 미국 대통령이 닉슨이었는데요. 대통령 재선을 위해 야당의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다 들켜서 궁지에 몰린 상태였습니다. 닉슨은 국민의 시선을 중동전쟁으로 돌리기 위해서 이스라엘 군수품 지원 작전을 시작했죠. 그렇게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으로 파괴된 물량보다 훨씬 많은 물량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 반격에 성공하죠. 반격에 성공한 이스라엘은 곧바로 이집트로 진격하려고 하는데요. 이때 소련이 딱 막아섭니다. 이집트 영토 들어가면 이집트의 핵무기 준다. 하면서요 결국 이스라엘이 종전을 수용하며 4차 중동 전쟁은 끝이 납니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발생해요. 유가가 상승하기 시작한 겁니다. 중동 산유국들이 이스라엘에 협력하는 국가의 석유 수출을 금지한 거예요. 그리고 곧 석유 가격을 대폭 인상하기 시작합니다. 유가는 순식간에 4배 이상 올랐고 본격적인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죠. 미국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는데요. 그렇게 미국의 기준금리는 21.5%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자 내느라 소비가 줄어들며 경기는 박살이 나게 되죠. 이때 미국의 중소기업 40%가 망하게 되고 실업률은 10%를 넘어갑니다. 제조업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쓰러졌어요. 그런데 미국의 기준금리가 올라가자 비싼 이자를 노리고 미국으로 돈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달러 수요가 많아지며 강 달러가 되었고 이때 가장 혜택을 많이 본 곳은 일본이었죠. 달러 대비 엔저가 된 일본은 수출을 싸게 할 수 있어서 대박이 납니다. 미국 무역 적자의 40%를 일본이 내는 상황이 되었죠. 1985년 9월 22일 미국의 플라자 호텔에서 일본을 타깃으로 한 G5 회의가 열립니다. 미국은 일본에게 엔화 가치를 높이라고 압박을 해요. 수출의 대부분을 미국에 하던 일본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플라자 합의로 달러당 250엔이었던 일본 환율은 120엔으로 반 토막이 납니다. 환율이 반토막 났다는 것은 일본 수출품의 가격이 2배로 올랐다는 거잖아요. 따라서 일본의 수출은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플라자 합의 바로 다음 해인 1986년 일본은 결국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일본이 이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을까요? 아니겠죠. 수출로는 답이 안 나오자 일본은 내수를 살리려고 해요.

 기준금리 인하부동산 규제 완화를 합니다. 일본 은행은 기준금리 6%에서 2.5%로 낮췄고 일본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풀며 LTV(Loan to Value : 담보인정비율) 한도를 없앴죠. 그러자 LTV를 120%까지 대출해주는 은행이 등장했고, 자기 돈 하나 없이도 부동산 구입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저금리부동산 규제 완화 두 가지가 동시에 적용되니 부동산에 돈이 쏠리며 가격은 미친 듯이 올라갔어요. 1년 만에 3배, 많게는 10배, 15배가 오르며 부동산 졸부들이 넘쳐나게 됩니다. 저금리은행 대출 경쟁일본의 주가 역시 폭등하게 만들었죠. 일본 정부는 거품 경제에 문제가 있다며 대책을 발표합니다. 기준금리를 2.5%에서 다시 6%로 올리고 LTV70%로 제한한 거죠.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시는 것처럼 부동산 시장은 한방에 주저앉았고, 경기 침체에 노령화까지 그렇게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일본은 부동산 버블 이후 지금까지 쭉 저금리를 유지해 오고 있어요. 정부는 엔화 가치를 낮춰서 수출을 늘리고 경기 부양을 하려고 한 겁니다. 근데 참 운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본 내 저금리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가 없자 일본의 금융기관들은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주는 해외 투자로 눈을 돌렸습니다. 일본의 보험사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보험사는 보험 가입자들에게서 받은 보험료를 조금이라도 더 불리기 위해서 해외 투자에 나섰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 고베 대지진이 일어나죠. 상당히 많은 보험금을 지급해 줘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 거죠. 보험사들은 꽤 많은 자금이 해외에 투자되어 있으니, 돈을 회수해서 다시 일본으로 가져오게 됩니다. 그렇게 엔화는 초강세를 보이게 되죠. 플라자 합의 당시 달러당 250엔이었던 엔화는 달러당 80엔까지 올라갑니다.

 이른바 슈퍼 엔고의 시대 일본은 부동산 버블 붕괴와 고배 대지진으로 인해서 내수시장이 침체되어 버리는데요. 내수가 어려우면 수출로 성장해야 하는데 엔화가 강세니 일본의 수출은 전례 없는 고전을 할 수밖에 없었죠. 일본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1995년 4월 G7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내수 침체수출 둔화를 막기 위해 엔화를 약세로 전환시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죠. 이때 일본의 요청은 받아들여집니다. 1985년 엔고를 유도했던 플라자 합의와는 반대로 역플라자 합의라고 불리는 사건이죠. 근데 엔저로 고생했던 미국과 독일 등 국가들이 왜 합의를 해준 걸까요? 그건 일본의 엔고 때문에 비싸게 수입해야 했던 나라들이 물가가 계속 올라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국제 인플레이션(inflation)을 잡기 위해서 합의를 한 거죠. 지금까지 한참 동안 일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요.

 플라자 합의 이후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땠는지도 잠깐 보겠습니다. 엔화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로 꾸준히 강세를 이어왔어요. 그러다 보니 엔화 강세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죠. 아시아 국가 대부분은 외환보유고에 달러화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엔화가 꾸준히 강해지는 걸 보니 엔화가 더 강해질 거라는 생각에 약해지는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려고 했죠. 가뜩이나 엔화가 강해지고, 있는데,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면 엔화는 더욱더 강해지겠죠. 그래서 일본 제품은 다른 국가의 수출품보다 비쌌고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습니다. 이에 크게 수혜를 본 나라가 우리나라죠. 엔화 강세로 인해 한국의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겁니다. 하지만 역플라자 합의 이후로 엔화가 약세로 바뀌면서 우리나라 수출에 강한 태클로 작용했고, 이는 외환위기의 단초가 되었죠.

 다시 돌아와서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장기간 저금리를 유지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일본의 가계와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펀드들도 저금리을 빌려서 이머징 국가에 투자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씩 엔 캐리 트레이드가 줄어들거나 청산되는 일이 일어났어요. 엔화를 빌려서 외국에 투자하려면 달러로 바꾸게 되죠. 을 팔고 달러를 사니, 달러 강세 엔화 약세가 됩니다. 그렇게 엔 캐리 자금이 늘어나는 가운데 1994년 1월 중국은 수출을 늘리기 위해 환율을 건드립니다. 1달러에 5.8위안이었던 환율을 8.6위안으로 확 바꿔버리죠 이 말은 중국 제품 가격이 40%나 저렴해졌다는 거예요. 그렇게 중국은 가격 경쟁력에서 압도를 하며 수출이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반면, 중국과 가격 경쟁을 하던 동남아 국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며 달러가 마르기 시작합니다. 와중에 미국은 금리를 올렸고 달러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들어갔죠. 가뜩이나 달러가 부족한데 환율을 고정시켰던 국가들은 달러를 환율 방어에 소모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남아에 달러가 마르고 있다는 걸 알아챈 헤지펀드들이 환율 공격을 시작하죠. 그렇게 아시아에는 외환위기가 왔고 한국은 IMF 관리 체제로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러시아도 더 이상 안 되겠다며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죠.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에 깜짝 놀란 글로벌 펀드들엔 캐리 트레이드를 청산하고 안전자산으로 복귀하기 시작합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를 청산하고 엔화로 돌아오니 엔화는 강세가 되겠죠. 엔화는 3일 만에 13%가 올랐고 2달 만에 147엔에서 112엔까지 오릅니다. 그러면 이자가 싸다고 엔화 대출을 받았던 사람들은 갚아야 할 원금 자체가 늘어나 버리게 되는 거죠. 이 여파로 월가의 희망이라 불렸던 세계 최대 해제 펀드인 롱텀 캐피털(LTCM)이 파산합니다.

 1997년에만 이런 상황이 생긴 게 아니에요.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이 일어났죠.
이때도 개발도상국들은 자금 경색이 일어났고 엔화 가치는 2배 이상 올라갔습니다. 이처럼 시장이 불안해지면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은 청산되어 복귀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어요. 지금은 어떨까요? 도이체방크(Deutsche Bank AG)가 분석했을 때 엔캐리 트레이드 규모는 20조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2경 7천조 원이나 되는 셈이죠. 우리나라에도 2024년 7월 말 기준 일본인이 한국 증시에 들어와 있는 금액은 16조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일본이 금리를 올리거나 엔화가 강세로 변한다면, 엔 캐리 트레이드는 점점 청산이 되어 갈 겁니다. 우리는 이걸 잘 지켜 봐야겠죠. 그런데 일본 은행은 금리가 급등하는 걸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데요. 왜냐하면, 현재 1,250조엔이나 되는 부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리가 급등하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죠. 부채가 이렇게도 많은 건 아베 시절 경기 부양을 위해서 무제한급으로 국채를 발행해 왔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2022년미국이 금리를 올리는데도 일본은 금리를 따라 올리지 못했던 겁니다. 일본은 국채 매입금리 인상을 조금씩 하며 조심스레 운전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국가 부채가 그렇게 많은데도 일본은 왜 금리를 조금씩이라도 올리려는 걸까요? 엔저가 워낙 심하다 보니 수입 물가가 오르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실질 소득과 구매력은 떨어지게 되죠. 그래서 2024년 7월 31일 신임 재무관으로 취임한 미무라 아츠시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죠. 엔화 약세일본 경제에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해를 끼친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4월 23일트럼프는 더 강하게 얘기했었어요. 엔화 약세는 미국의 대재앙이다. 내가 당선되면 2차 플라자 합의를 추진하겠다 라고 했었죠.

 고금리에서 저금리강 달러에서 약 달러엔저에서 엔고로 전환되는 시점에는 돈의 흐름이 크게 바뀔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금리를 내리고 일본은 금리를 올리는 상황이 왔을 때 돈이 어떻게 움직일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죠. 마침 이번 잭슨홀 미팅 때 연준 의장인 제롬 파월금리 인하를 시사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엔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은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엔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 일본에게는 무엇이 이득이고 무엇이 손해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