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의 통치 체제나 국가 형태를 명확히 이해를 해야, 단군조선 멸망 이후 왜 우리 민족이 열국시대로 접어들어 여러 나라로 분열되었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다. 이승휴의 제왕운기를 보면, 고조선이 70여 개의 거수국을 거느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단군조선이 수십 개의 제후국들을 거느렸고, 이 각각의 제후국들은 상당 부분 스스로 지방 자치를 이루어가면서 중앙의 대단군을 중심으로 하나로 융합되는 그러한 통치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따라서 단군조선이 망한 후 여러 제후국들은 제각각 독립을 하였고 서로 경쟁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단군 조선을 계승한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뿌리는 다 하나의 단군으로 이어진다는 한 뿌리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자) 이번에 쓰신 온국민을 위한 역사 교과서를 보면 고조선 부분만 45쪽에 해당되는 분량을 적으셨어요. 고조선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다룬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덕일) 어떤 분이 오셔갖고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이 책을 자신의 고등학생 딸에게 보여줬더니, 아니 고조선 편이 이렇게 있었어요라고 하셨는데요. 이것도 사실 많이 축약을 한 거죠. 우리가 역사 문헌이 남아있는 시대를 역사시대라고 하고, 문헌이 남지 않은 시대로 선사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고조선은 우리 민족의 원 뿌리고 그리고 이 개천절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우리 역사가 시작된 건국기원절로 했는데요. 그것은 중요한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단군이 나라를 연 때를 세상이 열렸다 그래서 개천이란 의미로 상당히 좋습니다. 이걸 구체적인 역사로 들어와서 우리 국가가 시작된 날이다라고 해서 건국 기원절이고, 그다음에는 여러 이 나라들이 세워졌지만 건국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왕조가 개창됐다라는 그러니까 우리 민족의 뿌리는 같다는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건데요.
놀라운 사실 하나는 중국에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조선의 권근이 사신으로 갔을 때 시를 주는 게 있어요. 거기에 뭐라고 돼 있냐면 단군께서 건국하신 후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 많은 나라가 개창됐는데, 명나라 주원장이 어떻게 해서 우리 건국 시조가 단군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죠. 아시다시피 주원장은 공부가 깊은 사람도 아니고 빈농 출신이잖아요. 그러니까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까지도 우리 개국시조가 단군이란 걸 알고 있다는 건데, 지금 모든 역사 교과서는 단군을 다 지웠잖아요. 단군을 지우기 시작한 건 일본인들이 여길 점령하고 나서 지우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우리는 명시조 주원장까지도 우리 역사의 시작을 단군으로 봤으면, 족보로 쓸 때 가장 중요하는 게 이 시조잖아요. 마찬가지로 나라의 역사를 쓸 때는 처음 건국한 나라의 첫 임금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그래서 상상력으로 쓴 건 아니고 모든 사료를 가지고 문헌사료와 고고학 유적 규모를 가지고 되도록이면 지면이 허락하는 한 단군조선에 대해서 자세히 쓰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사회자) 가장 주목돼야 되는 부분 중에 하나가 단군조선의 건국 시기인데, 지금 기존의 학계에서는 청동기 시대가 돼야만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앞세워 가지고, 우리나라 청동기 시기는 끌어올려야 BC 15세기니까 고조선의 건국인 BC 24세기 25세기는 인정할 수 없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고조선의 건국 시기와 관련해서 문헌과 유물의 기록을 통해서 많은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이덕일) 예를 들어서 이집트 고왕국 같은 경우 석기시대인데, 이집트에 답사 갔다가 그리스로 가면 에이 그래요. 왜냐하면, 고왕국 시대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그 건축물들을 세우고 하지 않습니까? 뭐 잉카, 마야 이쪽도 마찬가지고 다 석기시대에 한 거잖아요. 그걸 국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느냐? 청동기를 강조하는 것은 식민사학에서 단군 조선을 부인하기 위해 개발한 논리인데요, 단군 조선 부인에 아주 사활을 걸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 의도인데요.
그럼 좋다. 청동기 시대에 한번 맞추어 보자. 맞춰보면, 국내에서는 전남 영암에서 2500년 전 청동기 유물이 나오고, 그다음 경기도 양평에서도 뭐 비슷한 시기의 청동기 유물이 나오잖아요. 그리고 사실 단군 조선의 중심지역, 그 단군조선으로 직접 연결할 수 있는 하가점 하층문화를 보면, 학자에 따라서 조금 다르지만 청동기 유물의 시기를 BC 25세기에서 BC 20세기까지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고고학 유적 유물로도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BC 2333년에 건국했다라는 사실을 학문적으로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사회자) 시기도 그렇지만 고조선의 강역 문제에 있어서도 지금 학계에서는 북한의 서북한 지역하고 지금의 요동 지역 일부 그 정도를 고조선의 강역으로 많이 가르치고 있는데, 이 고조선의 강역 문제에 있어서 지금의 국경선 같은 개념은 아니지만, 고조선의 대표적인 표지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의 분포 범위를 통해서 우리가 추정해 볼 수 있잖아요.
이덕일) 기존 강당사학계는 고조선을 평안남도 일대에 있던 아주 작은 소국이라고 이병도 씨만 해도 그렇게 얘기해 왔어요. 그러다가 93년도인가 92년도에 한중 수교가 되고 난 다음에 중국을 마음대로 갈 수 있게 됐잖아요. 거기에서 엄청나게 많은 고조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 거를 목도하니까 조금씩 올라가고 올라가고 해 가지고 지금은 이제 요하 부근까지 올라갔는데, 이상한 건 이 사람들이 써놓은 거 보면, 동북아 역사 지도에도 '고조선 강역'이라고 앉혀놓고, '고조선의 문화 영역'이라고 아주 말장난을 하죠. 이 사람들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어떡하면 우리 역사를 축소하고 지울 것인가? 이것만 연구하는 사람들 같아요. 요하 유적뿐만 아니라 지금 하북성 일대(북경)까지 고조선의 유적 유물이 아주 널려 있죠.
그럼 여기까지 고조선 강역이었구나라고 하면 되는데, 이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안 하고 요하 지역까지도 고조선의 문화 영역 이렇게 써놨는데요. 고조선의 표지 유물이라고 하면은 뭐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게 고인돌이고요. 그다음 비파형 동검이 있고, 뭐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히 고인돌 같은 경우는 만주 지역, 산둥반도에서도 나오고, 그 아래 강소성에서도 나와요. 근데 이 지역이 고조선의 강역이었냐라고 똑 부러지게 얘기하기에는 아직 공부를 더 해야 돼요.
그러니까 어느 시기에는 그쪽까지 다 강역이었을 수 있는데, 저희가 고조선의 강역을 이야기할 때 항상 문제가 되는 거는 (고조선 후기, 즉 BC 4세기 후반에) 연나라 장수 진계와 고조선이 싸워서 사료에 따라 고조선이 천리, 이천리 물러났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천리 이천리 물러난 지역이 고대 요동지역이에요. 고대 요동지역은 지금의 하북성 일대라는 거죠.
지금의 요동은 요녕성 요하를 기준으로 동쪽을 요동이라고 하는데, 고대요동은 하북성 일대인데요. 그거는 사마천이 쓴 사기에 보면은 한광이라는 인물을 요동왕을 임명하는데, 그 요동왕 한광이 간 곳이 요동국의 수도인 무종이라는 곳이에요. 그 무종無終이 어디냐하면 지금의 괴현 그러니까 지금의 천진 북쪽에 있는, 즉 지금의 중국 하북성 당산시 옥전 지역이죠. 그러니까 그 지역이 요동국의 수도니까 과거의 요동은 하북성에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BC 4세기 후반 당시 연나라 장수 진계에게 잠시 밀렸을 때, 고조선 강역이 하북성이라는 것이죠.
북한학계는 그 원래는 고조선 강역에 하북성 난하까지 걸쳐져 있다가 북한 학계의 리지린은 그 진계에게 강역을 뺏기고 난 다음에는 지금의 대능하까지 후퇴했다라고 보고 있는데, 저는 그건 너무 축소한 거라고 보구요. 고대 요동 개념을 정확히 인식을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고, 제가 볼 때는 계속 하북성 일대까지는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진나라, 한나라 통일 제국이 들어서고 난 다음에 고조선 강역은 어디냐? 그렇게 보면 지금의 연산산맥 끝에 갈석산이 있지 않습니까? 고 연산 산맥과 태행산맥 그 안을 화북평원이라고 하는데, 그 화북평원까지 차지하면 통일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럴 때 결국 진나라, 한나라 통일 제국이 들어서고 난 다음에도 그 연산산맥과 그 난하 부근까지, 즉 고대의 요수인 난하 그 일대까지가 여전히 고조선의 강역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입장입니다.
사회자) 이제 고조선의 건국 시기나 강역 문제도 좀 봤지만, 고조선의 국가 형태, 기존 학계의 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을 워낙 적은 분량으로 다루다 보니까 그렇지만, 사실 고조선의 국가 형태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사료들도 많잖아요. 제왕운기라든지 또는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단군고기를 인용해서 등장을 하는데, 국가 형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보충 설명을 해주시죠.
이덕일) 단군조선은 강역이 상당히 광대하지 않습니까? 이거는 고조선뿐만 아니라 대륙 국가들의 공통 특성인 것 같은데, 백제사도 백제를 중국 기록에 보면 좌현왕이 있고 우현왕이 있었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백제도 대륙과 반도와 일본 열도를 다스리려고 하다 보니까 상당 부분의 자치제를 허용하는 것 같아요. 이승휴의 제왕운기를 보면, 고조선이 70여 개의 제후국을 거느렸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건 이승휴가 혼자 생각해서 이렇게 기록한 것이 아니죠.
삼한에는 몇몇 주현(州縣)이 있었으나, 어지러이 강과 산간에 흩어져 있었네. 각각 스스로 나라를 칭하고는 서로 침노하였으니, 숫자를 어찌 70여 개로 족히 칭할 수 있겠는가?
[제왕운기 권하 원문보기]
이승휴가 살았던 그 당시까지 남아 있었던 사료들을 보고 기록한 거니까, 그런 이야기들은 뭐냐 하면, 결국은 단군조선의 왕통이 있고, 왕통에 상당 부분은 중국의 봉건제처럼 혈연적 관계라든지 아니면 공신이라든지, 이런 쪽 사람들이 세우는 그런 여러 수십여 개의 제후국, 윤내현 교수님은 그걸 갖다가 거수국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상당한 일리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식 표현의 제후국이고 우리식 표현의 거수국인 나라들이 수십 개가 있었고, 이 거수국들이 상당한 부분 자치를 이루어가면서 하나로 융합되는 그러한 지배 형태가 단군조선의 지배 형태가 아니었는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회자) 사실은 그런 고조선의 국가 형태를 이해를 해야, 우리가 고조선 멸망 이후에 우리 민족이 여러 나라 시대로 전개되는 역사를 이해할 수 있잖아요.
이덕일) 그렇죠. 다물이란 말 다 아시잖아요. 옛 땅을 회복한다라고 하는 말인데, 그 말이 언제 나오냐면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추모왕 2년조에 나와요. 그럼 작년에 건국한 나라가 송양의 비류국을 꺾고 옛 땅을 회복했다는 거잖아요. 근데 작년에 건국했는데 뭐 옛 땅 회복할 게 뭐가 있어요. 그거는 삼국유사 왕력조에 보면은 그 이 추모왕에 대해서 단군의 아들이라 이렇게 써놨어요. 그러니까 또 비류국왕 송양은 자기는 뭐라고 그러냐면 나는 선인의 후손이다. 이러거든요. 근데 나중에 고구려 삼국사기 동천왕조에 보면 단군 왕검을 선인왕검 이렇게 하잖아요.
2년(B.C. 36) 여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니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봉하여 우두머리로 삼았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多勿)이라 하였으므로, 그렇게 명명한 것이다.
[삼국사기 추모왕 2년조 원문보기]
“비류왕 송양(松讓)이 일러 말하기를, ‘나는 선인(仙人)의 후손으로 누대에 걸쳐 왕 노릇을 하였으나, 지금 너희들이 나라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에게 기대는 것이 가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제왕운기 권하 원문보기]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의 땅이다. 다른 기록에는 “왕이 되어 왕험(王險)에 도읍하였다.”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동천왕 21년조 원문보기]
그러니까 단군 조선의 왕통이 무너지고 난 다음에 각지의 원래 제후국들이 다 이제 독립을 하는 건데요. 고구려 같은 경우도 원래 중국 사료에는 900년이라 이렇게 돼 있잖아요. 근데 나중에 김부식 계통 정리할 때, 이 추모왕부터 정리해서 BC 37년이 되는 것이죠. 원래는 다 단군 조선을 계승한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서 여러 나라들은 다르지만, 뿌리는 다 하나의 단군으로 이어진다는 한 뿌리 사상을 가지고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사의 전체적인 교통 관계 그것이 명확해진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참고자료: 청 태조 누르하치는 신라인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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