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통 수행법/동의보감

동의보감 서문(東醫寶鑑序)

by 광명인 2023. 9. 26.

[허준의 동의보감은 크게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경편’은 동의보감이 기초하고 있는 우주관인체관을 바탕으로 우리 몸의 안쪽에 있는 것들에 대해 다루는데, 우리 몸을 이루는 기본 물질인 정(精).기 (氣).신(神)오장육부는 물론이고, 피와 땀과 침, 소변과 대변에 심지어는 말과 목소리, 꿈 등이 이에 속한다. ‘내경편’뿐 아니라 동의보감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천지의 자녀인간이 ‘소우주’로서의 삶의 리듬[道]을 되찾으라는 것. 그리하여 계절에 맞게 잠자고 일어나고, 음식을 과하게 먹지 않고, 특정한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며,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자연스러운 운의 흐름을 타며 사는 것이 최고의 양생이라는 것이다. 동의보감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정기신精氣神에 관한 내용은 대게 황제내경과 도가의 서적에서 인용되는데, 황제내경과 도가의 정기신원리는 어디에서 출현했을까? 그 원류는 천부경이며, 삼일신고의 인물장, 삼신수행법에서 제시되는 성명정性命精, 심기신心氣身, 감식촉感息觸에서 유래한 것이다.]

[동의보감 원문 링크]
[황제내경 원문 링크]

의사들은 항상 헌원(軒轅)과 기백(岐伯)을 말합니다. 헌원과 기백은 위로는 하늘의 법도를 통달하고 아래로는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달았으니 글로써 기술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물음에 답하고 어려운 것을 기록하여 후세에 법을 드리웠으니 의가(醫家)에 책이 나온 지 오래되었습니다.
위로는 창공(倉公, 淳于意)ㆍ진월인(秦越人, 扁鵲)으로부터 아래로는 유완소, 장종정, 주진형, 이고에 이르기까지 많은 의가들이 연이어 일어나 논설이 분분하였고 남겨진 실마리를 표절하여 다투어 문호를 세웠으나, 책이 많아질수록 의술은 더욱 어두워져 《영추(靈樞)》의 본지와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상의 용렬한 의사들은 이치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경전의 뜻을 어겨 제 멋대로 하고, 어떤 사람은 관습에 빠져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판단을 명확하게 내리지 못하고 요점을 잃어 사람을 살리려고 하다가 죽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4,700여 년 전 인물인 황제헌원에 의해 쓰여졌다는 황제내경
인류 성씨의 기원인 신농씨와 중국 한족의 시조 황제헌원의 계보도
조선시대 의관 허준이 중국과 조선의 의서를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의학서

,,,

신이 생각건대, 정기(精氣)가 한 번 흩어지고 육기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노쇠하고 병약해지는 것이 번갈아 백성의 재앙이 되니 그들을 위해 의술이나 약으로 요절하는 것을 구제하는 것은 실로 제왕이 어진 정치를 베푸는데 있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의술은 책이 아니면 그 내용을 기록할 수 없고, 책은 잘 선택하지 않으면 정밀하지 못하며, 넓게 채집하지 않으면 이치가 명확하지 않고, 널리 전파되지 않으면 은혜가 펴지지 않습니다. 이 책은 고금의 의술을 포괄하고 여러 의사들의 말을 절충하여 근원을 연구하고 큰 강령을 제시하니 상세하지만 번잡하지 않고 간단하지만 포함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내경과 외형으로부터 시작하여 잡병의 여러 방면으로 나누고, 맥결(脈訣), 증론(症論), 약성(藥性), 치법(治法), 섭양요의(攝養要義), 침석(鍼石)의 여러 방법에 이르기까지 갖추지 않은 바가 없으며, 정연하여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병자의 증후가 천백 가지로 다양하더라도 보하고 사하고 늦추고 빨리 하는 치료법을 넓게 응용하여서 빠짐없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멀리 옛 서적을 살피거나 가까이 여러 조문을 찾을 필요 없이 분류에 따라 처방을 찾으면 중첩해서 발견되니 어떤 증에 대해 약을 쓰더라도 모두 알맞게 맞습니다. 참으로 의가(醫家)의 보감(寶鑑)이요, 세상을 구제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만력 39년 신해년(1611) 초여름에 숭록대부 행이조판서 겸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경연춘추관성균관사 세자좌빈객 이정구가 하교를 받들어 삼가 서문을 짓습니다.


황제 헌원(BCE 2692~BCE 2593): 성은 공손公孫, 호는 유웅有熊이다. 희수姬水에서 오래 살면서 성을 희姬로 고쳤다. 후대에 황제黃帝로 추존되었고, 중국 한족의 실질적인 시조로 받들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