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가 제시한 ‘호모 데우스(Homo Deus)’의 미래상은 우리 시대가 마주한 가장 첨예하고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AI)과 생명공학 기술을 통해 스스로를 개량하여 사실상 신과 같은 존재가 되리라는 그의 예측은, 과거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가능성을 현실의 문턱으로 이끌어왔다. 기아, 질병, 전쟁과 같은 인류 역사의 오랜 숙적들을 기술 발전으로 상당 부분 극복한 인류는 이제 불멸, 행복, 그리고 신성(神性)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다음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라리는 현재 인류가 핵전쟁, 기후 변화, 그리고 기술 혁신에 따른 파괴라는 세 가지 중대한 문제에 직면했으며, 그중에서도 기술 혁신, 특히 AI의 발전이 가장 결정적인 변수라고 진단한다. 인간을 모든 면에서 능가할 가능성을 지닌 초지능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스스로 결정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외계(alien) 지능’으로까지 묘사된다. 이러한 기술의 급격한 진보는 [자유의지가 과학적으로 허구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와 맞물려, 현대 사회를 지탱해 온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근간을 흔들고 인류에게 근본적인 정체성, 즉 ‘이야기’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그는 경고한다. AI가 대부분의 인간 노동을 대체하여 사회적으로 ‘무관한’ 존재가 양산된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인가?
하라리는 이러한 위기에 맞서기 위한 방편으로 전 지구적 협력, 평생 학습 능력과 감정 지능의 함양, 변화의 역동을 이해하는 역사 학습, 그리고 지배적 서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등을 제안한다. 나아가 인간 의식 계발의 한 방법론으로 명상을 제시하며, 이는 ‘자아’가 허구적 이야기임을 인지하고 고통의 비실재성을 깨닫는 동양적 지혜와도 연결된다.
하지만 이러한 하라리의 기술 중심적 미래관과 [명상을 통한 ‘이야기 없음’의 추구]에 대해, 기성 종교들은 각자의 고유한 관점에서 인간의 본질과 미래상을 제시하며 다른 목소리를 낸다. 가톨릭 신학은 인간을 공동체적 존재로 규정하며, 참된 자유는 타인을 사랑하고 섬기는 능력에서 발현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인간에게 영적인 본질이 있음을 역설하며, 성경은 인간의 상상력이 아닌 하나님의 현현에 바탕한 기록물이라고 주장한다. 불교 역시 생로병사의 고통은 주관적 체험이므로 생명 과학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며, 중도적 삶의 태도와 여실지견(如實知見)의 지혜를 통해 고통을 넘어설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기성 종교의 이러한 주장들은 급변하는 AI 시대의 파고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는 다소 한계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의 영성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AI와 같은 초지능에 맞서거나 이를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구체적인 능력 계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때로는 기독교에서 인간을 ‘신의 피조물’ 또는 ‘나약한 존재’로 규정하는 이미지가 인간 내면에 잠재된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듯 느껴질 수도 있다. 불교의 해탈 역시 다소 추상적인 정신적 경지로 여겨져, 인간이 실제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고 건강을 회복하며, 나아가 우주 의식과 영적으로 소통하고 기술 장비 없이도 우주적 영감을 얻는 등의 구체적인 조화(造化) 능력, 즉 도통(道通)의 경지를 설명하여 실질적인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증산도(甑山道)에서 제시하는 ‘신성(神性) 회복’이라는 관점은 하라리의 기술 중심적 인간 개량론이나 기성 종교의 전통적 접근 방식과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 관점은 인간이 외부 기술(AI, 생명공학)로 자신을 개량해야만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본래 우주 생명의 근원을 온전히 품은 완전한 존재임을 강력하게 상기시킨다. 인류 진화의 본질적인 과제는 기술적 보완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잠재된 신성의 스위치를 다시 켜는 것, 즉 ‘신성 회복’에 있다는 것이다. 역사 속 모든 위대한 성인들이 한결같이 가르친 것은 바로 이러한 내면의 각성을 통한 신성 회복의 길이었다.
1 하루는 상제님께서 김형렬(金亨烈)을 불러 “너의 천백번 소청이 도통하는 것이었으니 오늘은 너에게 도통을 내려 주리라.” 하시니
2 그 즉시 형렬의 눈앞에 삼계가 환히 트이며 삼생(三生)이 밝게 비치고
3 일원세계(一元世界)가 눈앞에 있고 사해중생(四海衆生)이 마음에 나타나며, 모든 이치가 뚜렷이 드러나고 만상(萬象)이 펼쳐지며
4 서양에도 마음대로 가고 하늘 끝으로 새처럼 날아오르기도 하며, 풍운조화(風雲造化)가 마음대로 되고 둔갑장신(遁甲藏身)이 하고자 하는 대로 이루어지며
5 천지가 내 마음과 일체가 되고 삼교(三敎)를 두루 쓰며,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바가 없게 되니라.
(증산도 道典 7:6)
특히, 증산 상제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의 모든 고통을 직접 겪으시고 깊은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천지인(天地人) 삼계의 문을 열고 우주와 하나 되는 대도통(大道通)을 이루셨다. 이 기록은 『도전(道典)』에 구체적으로 증언되어 있으며, 당시 상제님을 따르던 수많은 종도들과 증언자들에 의해 뒷받침된다. 만약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상제님의 도통 사건은 단순한 개인적 깨달음을 넘어 인류 전체의 의식 전환을 위한 위대한 이정표이며, 우리 모두가 그 길을 따라 스스로 신성과 하나 되어 우주적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 보이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AI 시대에 우리가 맞이할 진정한 ‘만사지(萬事知) 문명’은 단순히 방대한 지식을 축적하고 빠르게 처리하는 정보화 사회를 넘어선다. 그것은 신성과 깊이 연결된 인간이 AI를 창조적 도구로 활용하여 새로운 차원의 문명을 건설하는 시대다. 인간은 더 이상 정보의 단순 소비자가 아닌, 우주 의식과 직결된 주체로서 모든 문명 시스템을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존재로 그 위상이 격상된다. AI는 의심할 여지 없이 강력한 도구이지만,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사용하는 주체는 인간이며, 그 주체성은 다름 아닌 내면의 신성 회복을 통해서만 온전히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는 과학기술문명과 영성문명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진정한 의미의 대통합 문명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발 하라리가 기술 발전의 미래를 날카롭게 예측하고 그에 따른 위기 상황을 경고한 것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기성 종교들 역시 인간 본질과 영성의 가치에 대한 중요한 성찰을 제공한다. 그러나 기술 만능주의적 개량론이나 다소 추상적인 영성론을 넘어서, 인간이 내면에 잠재된 신성을 회복하여 스스로 우주적 존재로 거듭나고 AI를 도구로써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는 증산도의 ‘신성 회복’의 관점은, AI 시대를 맞이하는 인류에게 새로운 차원의 희망과 구체적인 실천의 길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기술에 대한 맹신이나 막연한 공포 대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고요히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다. 이것이야말로 잊었던 신성을 일깨우는 첫걸음이자, 다가오는 미래 대전환기를 준비하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강력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다가오는 미래 문명의 진정한 주인은 기술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내면의 신성과 깊이 연결된 인간이 될 것이며, 그 위대한 진화의 주체는 바로 지금, ‘나 자신’의 깨어있는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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