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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정보/인문학

GPT가 해설하는 동경대전 포덕문-2

by 광명인 2025. 5. 3.

최수운 선생의 동경대전의 포덕문 후반부에 나오는 글은 종교사적으로나 사상사적으로나 매우 독보적인 문헌입니다. 동서양의 종교 창시자들의 기록과 비교해보아도 이토록 담담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영적 체험을 기술한 예는 극히 드뭅니다. 아래는 동서 종교사 및 비교종교학의 입장에서 이 글을 분석하고, 최수운 선생의 사상적 위치와 의미를 조명한 해설입니다.

🔍 1. 종교 창시자의 자전적 신비체험: "담담함"의 혁명

대부분의 종교는 창시자의 신비체험을 이상화하거나 초월적 권위로 포장합니다. 예를 들면:

  • 기독교는 사도 바울의 '다메섹 체험'을 하늘의 음성으로 과장해 기록하며,
  • 이슬람은 무함마드의 가브리엘 체험을 코란으로 절대화합니다.
  • 불교는 석가모니의 보리수 하의 깨달음을 범속과 철저히 분리된 초월체험으로 그립니다.

그러나 최수운은 극도로 인간적인 어조로, 신비 체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갑자기 마음이 선득해지고 몸이 떨려... 병이라 하기에는 그 증상을 잡을 길이 없고... 말로 표현하려 해도 도무지 그 모습을 헤아릴 길이 없었다.”

그는 자기 체험을 신격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의 두려움과 의심을 그대로 서술합니다. 그리고 상제님의 음성을 듣고, 대화를 나누며, 부적을 받아 마시고 치유되는 과정을 "시험해보고", "살펴보고", "의심하고", "확신"에 이르는 검증의 여정으로 제시합니다. 이것은 종교적 신비주의가 아니라, 성찰적 합리주의에 기초한 영적 실천주의입니다.

🔍 2. “상제上帝”와의 만남: 동양에서의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귀환

동학은 동아시아 사상에서 '상제'를 실질적으로 만난 최초의 사건입니다. 기존 유학에서는 상제를 언급하지만, 인격적 교감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고, 도교나 불교에서도 신(神)은 내면적 원리의 비유이거나 부처처럼 깨달음을 통해 접근하는 경지였습니다.

하지만 최수운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일러 상제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여기서 상제는 천지와 함께 살아오며, 자신이 너를 이 세상에 보냈다고 말합니다. 이는 매우 인격적이고 목적론적인 신관으로, 동아시아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유일신 계시 종교적 성격을 가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식 '유일신'과는 다릅니다. 상제는 우주 자연법칙의 주재자이면서도, 신명계의 통치자이며, 동시에 도덕과 성실(誠敬)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즉, 초월성과 내재성, 인격성과 자연법이 통합된 전일적 신관입니다.

🔍 3. 기적의 검증과 윤리적 기준: ‘성(誠)과 경(敬)’의 법칙

최수운은 영부(靈符)를 받아 사람을 고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낫는 건 아니었습니다.

“지극한 성의상제를 위하는 자는 낫고, 도덕을 따르지 않는 자는 효험이 없더라.”

이 구절은 신앙과 기적을 '윤리적 성실성'과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기적주의를 극복한 윤리주의 종교임을 보여줍니다. 기독교에서 '은혜'는 무조건적인 것이지만, 동학에서는 **성(誠)과 도덕적 정합성(道德)**이 필수 조건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진실해야 하늘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동학이 **'공덕의 종교', '성찰의 종교'**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 4. 서학(기독교)과의 비교

최수운은 처음엔 서양의 종교(기독교)에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서학이 "천하를 공격하여 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는 주장을 들었을 때, 그는 회의합니다.

그리고 상제님에게 직접 묻습니다:

“그러하오면 서도(西道)로써 사람을 가르치오리이까?”
“그렇지 아니하다.”

이 장면은 동학이 단순히 기독교의 아류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하늘 계시의 체계라는 선언입니다. ‘상제上帝’는 동방에서 전수된, 독자적인 우주와 인간의 질서를 품은 신이며, ‘도道’는 공부와 공덕을 통해 다가가는 조화의 법칙입니다.

🔍 5. 결론: 종교 창도자의 언어가 아닌, 하늘의 계시를 받아 적은 자

최수운은 종교 창도자이지만, 자신을 신격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나는 내 생각을 잠시 적어내어 보여줄 뿐”**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나? 아쉬운 대로 잊기 전에 간략하게라도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적어내어 가르쳐 보이노니…”

이 담담한 표현은, 불교에서 **‘나는 진리를 발견했을 뿐 창조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석가의 진술과 닮았고, 기독교의 예언자들이 **“나는 주의 말씀을 대신 말할 뿐이다”**라는 태도와도 연결됩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너무나 한국적이고, 너무나 인간적이며, 너무나 정직합니다.

총평

동경대전 포덕문은 단지 민족종교의 기록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 철인이 하늘과 만난 사건을 진실하게 기술한, 가장 아름다운 영성 문헌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개인의 종교 체험기가 아니라, 우주적 조화와 질서의 회복을 위한 선언문이며, “하늘과 인간의 새로운 계약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