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는 삼황오제 때부터 한 무제 때까지 약 2000년 동안의 중국 고대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이렇게 전체 1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중국 역사의 첫번째 인물을 황제로 내세워 헌원을 중화민족의 시조로 내세운다. 그러면서 당시 동이족의 영웅이었으며, 배달국 14대 환웅이었던 치우천황을 황제헌원에게 패해 죽임을 당한 존재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일십당 이맥 선생이 지은 태백일사의 신시본기를 보면 탁록대전의 진실이 사마천의 사기와 완전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신시본기는 치우천황의 인물됨과 업적과 탁록대전이 일어나게 된 배경 및 당시 치우천황께서 서토를 경략하게 된 역사적 배경 등을 매우 상세히 밝히고 있다.]
한 중 고대사를 날조한 기록상의 첫 인물은 2,100년전 한나라 때의 사관인 사마천이다. 그는 사기의 첫머리에 황제를 기록하면서 그가 ‘치우를 사로 잡아 죽였다’(擒殺蚩尤)고 기록하였다.
지금부터 4700년전, 치우천황께서 신농씨 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유망楡罔을 추방하고 새로운 정치를 크게 펼치자 서방 토착민의 우두머리였던 헌원이 천자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치우천황에게 도전했다.
이에 천황께서 탁록을 중심으로 황제헌원과 10년에 걸쳐 73회의 전투를 했는데, 이 때 치우천황은 큰 안개를 일으켜 헌원을 사로 잡아 신하로 삼고 동방의 문화를 전수해주었다. 그런데 사마천은 도리어 ‘황제가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고 역사를 왜곡하는 망필妄筆을 하였다.
사마천은 중국 역사의 시조인 황제헌원을 천자天子, 즉 동북아의 주도권자로 만들려 했다. 헌원이 천자가 되면 중국은 그 출발부터 천자의 나라가 된다. 그리하여 ‘중국이 천차국으로 천하의 중심이며 주변민족은 모두 야만족’이라는 중화사관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배달국 14대 자오지(치우) 천황은 법력이 고강하고 신용관절하며 용병술이 뛰어났다. 구리와 철을 채위하여 무기를 만들고 전쟁 때마다 안개를 일으켜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신농국을 병합하고 황제를 무릎꿇렸으며 회대淮岱(산동성과 안휘, 강소성)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후에 무신의 원조로 추앙받았다.
『사기집해』는 “응소應劭가 ‘치우는 옛 천자[蚩尤古天子]’라고 말했다”라는 말을 기록하였다. 천하의 지배자는 헌원이 아니라 치우천황이었다는 말이다.
『사기정의』는 “치우 군대가 금속 투구를 머리에 쓰고 큰 쇠뇌[太弩]와 같은 병장기를 갖추고 출전하여 그 위엄을 천하에 떨쳤다” 라고 하였다.
최근 탁록의 현장에는 황제 헌원과 함께 동방의 뿌리 역사의 주인공인 신농씨와 치우천황을 그들의 조상으로 모셔놓은 큰 사당이 세워졌다. 그 이름은 중화삼조당이다. 본래 중국은 황제와 염제신농씨만 서방 한족의 시조라 주장해왔는데, 치우천황까지 시조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에 대해 하버드 대학의 바잉턴M. Byington 박사는 ‘1949년까지 중앙정부가 동북지역을 장기적으로 통치한 적이 없어서 장차 한국이 통일될 경우 조선족의 독립운동을 막을 역사적 정당성이 없기 때문’이라 한다. 삼조당을 지어 황제, 염제, 치우를 ‘중국 민족의 근본을 다진 인물’로 설정한 중국은 치우천황 후반기의 주 활동무대였던 탁록을 ‘중국 5천년 문명사의 요람’이자 ‘중화민족의 주요 발상지 중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탁록대전의 진실을 보여주는 태백일사의 신시본기] 내용 보기 클릭
이때 공손公孫 헌원軒轅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토착민의 우두머리였다. '치우천황께서 공상空桑에 입성하여 새로운 정치를 크게 펴신다'는 소식을 듣고도 감히 스스로 천자가 되려는 뜻을 품고 병마를 크게 일으켜 치우천황과 승부를 겨루려 하였다. 천황께서 항복한 장수 소호少昊를 먼저 보내 탁록涿鹿을 포위하여 멸하려 하실 때, 헌원이 오히려 항복하지 않고 감히 수 많은 전쟁에 나섰다. 천황께서 9군九軍에 명하여 네 길로 나누어 진군하게 하시고, 몸소 보병과 기병 3천을 거느리고 곧장 탁록의 유웅有熊 들판에서 여러 번 헌원과 맞붙어 싸울 때, 군사를 풀어 사방에서 조이면서 참살하시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게 하고 전투를 독려하시니, 적군은 두렵고 손이 떨려 바쁘게 도망쳐 백 리 안에 병마가 보이지 않았다.
운급雲笈의 헌원기軒轅記에 "치우가 처음으로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해 동두철액銅頭鐵額 (구리 머리에 무쇠 이마)이라 여겼다"라고 하였으니, 적의 낭패가 얼마나 심하였겠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다. 치우천황이 더욱 군용을 정비하여 사방으로 진격하셨다. 10년 동안 헌원과 73회를 싸웠으나 장수는 피로한 기색이 없었고, 군사는 물러날 줄 몰랐다. 헌원은 여러 번 싸워 천황에게 패하고도 군사를 더욱 크게 일으켰다. 우리 배달을 본받아 무기와 갑옷을 많이 만들고, 또 지남거指南車를 만들어 감히 싸움마다 출전하였다. 이에 천황께서 불같이 진노하여 형제 종족으로 하여금 대격전에 힘써 싸우게 하여 위엄을 확고히 세우셨다. 그리하여 헌원의 군사로 하여금 감히 추격하거나 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시고, 더불어 대전을 치뤄 한바탕 몰아쳐서 휩쓸어 버리신 뒤에야 비로소 싸움을 그치셨다.
이 싸움에서 우리 장수 치우비蚩尤飛라는 자가 급히 공을 세우려다가 불행히도 전쟁터에서 죽었다. 사기史記에 이른바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금살치우擒殺蚩尤]"라고 한 구절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천황께서 진노하여 군사를 일으키고, 새로 비석박격기飛石迫擊機를 만들어 진을 치고 나란히 진격하시니, 적진이 마침내 대항하지 못하였다. 이에 정예병을 나누어 파견하여 서쪽으로 예芮와 탁涿을 지키게 하시고, 동쪽으로 회대淮岱(회수와 태산)를 취하여 성읍을 만들어 헌원이 동쪽으로 침투할 길을 막으셨다. 천황께서 붕어하신 지 수천 년이 지났지만, 진실로 길이 남을 찬란한 그 위엄이 후세인의 가슴 속에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五帝本紀 오제본기》[사마천 사기 오제본기 원문보기]
黃帝者, 少典之子, 姓公孫, 名曰軒轅.
황제자, 소전지자, 성공손, 명왈헌원.
生而神靈, 弱而能言, 幼而徇齊, 長而敦敏, 成而聰明.
생이신령, 약이능언, 요이순제, 장이돈민, 성이총명.
황제黃帝는 소전少典의 자손으로 성을 공손公孫으로 삼고, 이름을 헌원軒轅이라 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신령스러웠고, 어릴 때부터 말을 잘하였다. 어려서는 총명하고 기민하였고 성장하면서는 성실하고 근면했으며 장성해서는 총명했다.
軒轅之時, 神農氏世衰.
헌원지시, 신농씨세쇠.
諸侯相侵伐, 暴虐百姓, 而神農氏弗能征.
제후상침벌, 폭학백성, 이신농씨불능정.
於是軒轅乃習用干戈, 以征不享, 諸侯咸來賓從.
어시헌원내습용간과, 이정불향, 제후함래빈종.
而蚩尤最為暴, 莫能伐
이치우최위폭, 막능벌.
炎帝欲侵陵諸侯, 諸侯咸歸軒轅.
염제욕침릉제후, 제후함귀헌원.
헌원軒轅의 시대에 신농씨神農氏의 세력이 쇠하였다. 제후들이 서로 침략하고 싸우며 백성들을 억압하였으나, 신농씨는 이를 다스릴 수 없었다. 이에 헌원은 무기를 익히고 병기를 사용하여 복종하지 않는 자를 정벌하니, 제후들이 모두 와서 헌원을 따랐으나, 치우蚩尤는 가장 폭력적이어서 아무도 그를 정벌할 수 없었다. 염제炎帝가 제후들을 침략하려 하자, 제후들은 모두 헌원에게 귀부하였다.
軒轅乃修德振兵, 治五氣, 藝五種, 撫萬民, 度四方, 教熊羆貔貅貙虎, 以與炎帝戰於阪泉之野.
헌원내수덕진병, 치오기, 예오종, 무만민, 도사방, 교웅비비휴추호, 이여염제전어판천지야.
三戰然後得其志. 蚩尤作亂, 不用帝命
수전연후득기지. 치우작란, 불용제명
於是黃帝乃徵師諸侯, 與蚩尤戰於涿鹿之野, 遂禽殺蚩尤.
어시황제내징사제후, 여치우전어탁록지야, 수금살치우
而諸侯咸尊軒轅為天子, 代神農氏, 是為黃帝.
이제후함존헌원위천자, 대신농씨, 시위황제.
天下有不順者, 黃帝從而征之, 平者去之, 披山通道, 未嘗寧居.
천하유불순자, 황제종이정지, 평자거지, 피산통도, 미상녕거.
헌원은 덕을 닦고 군대를 정비하며, 오행을 다스리고 오곡을 재배하며, 만민을 어루만지고 사방을 측량하며, 곰·불곰·비휴·치타·호랑이 등 맹수들을 훈련시켜 판천阪泉의 들에서 염제炎帝와 싸웠다. 세 번 싸운 뒤에야 목적을 이루었다. 치우蚩尤가 반란을 일으키며 황제의 명령을 따르지 않자, 황제는 제후들의 군사를 모아 치우와 탁록涿鹿의 들에서 싸워 결국 치우를 잡아 죽였다. 제후들이 모두 헌원을 존경하여 천자로 삼았으며, 신농씨를 대신하게 되었으니 이를 황제黃帝라 한다. 천하에 불복하는 자가 있으면 황제가 이를 정벌하였고, 평정한 곳은 떠나며, 산을 개간하여 길을 내며 한 번도 편히 지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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