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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정보/책소개

[책] 의식의 기원

by 광명인 2025. 4. 6.

[고대 인류의 정신 구조는 양원적(Bicameral)이었다. 이 구조는 좌우뇌의 분리된 작용에 기반하여, 인간이 내면의 자아 없이 외부의 명령처럼 '신의 음성'을 듣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당시 사회 질서는 법이나 억압이 아닌, 뇌의 우반구에서 발생한 '신의 명령'이라는 내면 청각적 통제로 유지되었다. 이 시기의 인간은 자기 반성, 내면적 갈등, 사적인 욕망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으며, ‘’라는 인식 주체도 부재했다.

그러나 기원전 2000년경부터 문자 언어의 발달은 인간의 사고 구조에 큰 변화를 주었다. 문자는 외부 권위로부터 독립된 사고를 가능케 했고, 신의 명령이라는 내면 목소리는 점차 침묵하게 되었다. 양원적 정신이 붕괴하면서 인간의 의식이 등장했고, 내면의 자아자기 서사라는 새로운 심리 구조가 형성되었다. 더 이상 우반구는 ‘신의 목소리’를 생성하지 않게 되었고, 인간은 좌반구 중심의 사고를 통해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 제인스의 "의식"과 "나(self)" 개념
제인스는 의식(consciousness)을 단순히 자각이나 깨어 있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면의 무대(inner space)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 이 의식 속에서 등장하는 ""는 어떤 존재인가?
  • 제인스는 그것을 사적인 공간 속에서 자신과 대화하는 나, 즉 자기 성찰을 가능케 하는 인식 주체로 봅니다.

이러한 "나"는 단지 생물학적 자아가 아니라, 언어를 통해 생성된 심리적 구성물입니다.

🧩 "To be private with"의 의미는? 
제인스가 말하는 "사적으로 존재한다(to be private with)"는 내가 내 안에 존재하는 다른 나와 대화하고, 반성하고, 시뮬레이션하는 내면적 상태를 말합니다.

  • 이는 감각 경험을 바깥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수렴되는 자기 정체성의 구성 과정입니다.
  • 이 때의 “나”는 사회적 자아가 아니라 내 안에서 형성된 상징적 자아, 즉 언어를 통해 구성된 자기 이미지입니다.

줄리언 제인스(Julian Jaynes)는 그의 저서 『의식의 기원(The Origin of Consciousness in the Breakdown of the Bicameral Mind)』에서 인간 의식약 3,000년 전부터 현재와 같은 형태로 발달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전에는 인간이 '양원적 마음(bicameral mind)' 상태로 존재했으며, 이는 좌뇌우뇌의 기능이 분리되어 작동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양원적 마음의 개념
제인스에 따르면, 고대 인간은 내적 독백이나 자기 성찰 없이 행동했습니다. 대신, 우뇌에서 생성된 환청신의 목소리로 인식하고, 이를 좌뇌가 받아들여 행동 지침으로 삼았습니다. 즉, 우뇌는 명령을 생성하고, 좌뇌는 이를 실행하는 구조였습니다. 이러한 환청은 당시 사람들에게 실제로 들리는 신의 음성으로 경험되었으며, 이는 그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

우뇌의 역할과 신의 목소리
양원적 마음 상태에서 우뇌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뇌는 언어와 관련된 기능이 제한적이지만, 감정 처리패턴 인식에 뛰어납니다. 제인스는 우뇌가 스트레스나 위기 상황에서 환청을 생성하여 좌뇌에 전달하며, 이러한 환청이 당시 사람들에게 신의 목소리로 인식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고대 사회에서 개인이 복잡한 결정을 내릴 필요 없이, 신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도록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

양원적 마음의 붕괴와 의식의 탄생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 구조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다양한 문화와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양원적 마음의 체계는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고, 대신 자기 성찰내적 독백을 통해 의사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제인스는 이러한 변화가 현재 우리가 이해하는 형태의 의식이 탄생하게 된 계기라고 주장합니다. ​

현대 사회와 양원적 마음의 흔적
제인스는 현대 사회에서도 양원적 마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경험하는 환청은 과거 양원적 마음 상태의 잔재일 수 있습니다. 또한, 종교적 체험이나 예술적 영감 등도 이러한 양원적 구조의 흔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제인스의 이론은 의식의 기원과 발달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제공하며, 뇌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문화적 요인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현재의 의식을 형성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의식이 모두 언어는 아니지만 의식은 언어로 생성되고 언어로 접근된다.”

일찍이 헤라클레스는 의식을 가리켜 “아무리 길을 걸어도 경계를 발견할 수 없는 광대한 공간과 같다”고 했으며, 아우구스티누스는 “셀 수 없이 많은 창고로 놀랍게 치장되어 있고 광활한 방들이 겹겹으로 들어차 있는 후미진 곳”이라 했다. 밀, 분트, 티치너는 “의식은 실험실에서 감각과 감정의 정확한 요소들로 분석될 수 있는 복합구조”라 했으며, 증기기관차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때 “잠재의식은 긴장을 유발하는 에너지의 발생기관인 보일러”라고 했다. 이처럼 의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의식을 의식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의식에 대한 기존의 여러 견해, 즉 의식이 물질의 속성이라거나 원형질의 속성이라거나, 혹은 경험·학습·추론·판단의 다른 이름이라는 견해는 물론, 의식을 인과적 영향력이 없는 단순한 부수현상으로 보는 견해가 모두 기각된다. 그 대신 인간의 옛 정신체계는 양원적(兩院的, Bicameral)이었다는 주장과 함께, 의식은 인류 역사의 한 특정 기점이었던 정신의 양원적 구조의 소멸 시기와 연계되어 있다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편다. 그는 심리학·문학·인류학·철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끌어낸 논거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제시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근본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그 영향력은 프로이트에 비견되며 20세기가 산출한 가장 의미 있는 학문적 성과로 꼽힌다. 고대 문헌을 분석하고, 고고학적 성과물을 분석하며 이상심리학적 증거들을 제시함으로써 옛 인류의 양원적 정신 역량은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대목에 이르면, 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을 넘어 세인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저자: 줄리언 제인스 (Julian Jaynes)
1920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웨스트 뉴턴에서 태어났다. 학부 공부를 하버드 대학에서 시작했으나 맥길 대학에서 마쳤으며, 예일 대학에서 심리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예일 대학 이후 영국에서 배우 겸 극작가로 일하다가 미국으로 돌아와 1966년부터 1990년까지 프린스턴 대학 심리학과에서 강의했다. 그는 각종 회의의 초빙 강사로서 그리고 수많은 대학의 외래 강사로서 자주 초청되었다. 1984년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비트겐슈타인 심포지엄에 초청되어 총회에서 강연했다. 그의 저작들은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는데, 초기에는 동물심리학에 초점을 두었으나 나중에는 인간의 의식문제에 집중하여 『의식의 기원』을 집필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20세기가 낳은 가장 의미 있는 학문적 성과물로 꼽혀 1978년 전미도서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다.

역자 : 김득룡(金得龍)
한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The Individual and The Intersubjective; Building on Mill and Habermas for a Conception of Education for Freedom」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남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낸 뒤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다. 동서문화연구소장, 한남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형색과 소리』, 역서로는 『발터 벤야민: 예술, 종교, 역사철학』, 『베버와 하버마스: 사회이론과 가치』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사회의식과 역사발전의 관계」, 「비판이론가들의 합리성개념화작업」 등이 있다.

목차
해제: 의식의 세계를 넘어 5

서론 의식의 문제 21
물질의 속성으로서의 의식 25 | 원형질의 속성으로서의 의식 26 | 학습으로서의 의식 28 | 형이상학적 불가피성으로서의 의식 31 | 단순한 구경꾼 이론 33 | 창발적 진화 35 | 행동주의 37 | 망상활성화 체계로서의 의식 40

제1권 인간의 정신

제1장 의식의 의식 46
의식의 포괄성 47 | 의식은 경험의 복사물이 아니다 54 | 의식은 개념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58 | 의식은 학습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60 | 의식은 사유에 꼭 필요하지 않다 66 | 의식은 이성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72 | 의식의 처소 76 | 의식은 필수적인가 79
제2장 의식 81
언어와 은유 81 | 은유로서 이해하기 87 | 정신의 은유언어 90 | 석의체와 피석의체 92 | 의식의 특징 96
제3장 일리아스의 정신 106
일리아스의 언어 109 | 고대 그리스인의 종교 112 | 양원적 정신 117 | 그밖의 유보사항 126
제4장 양원적 정신 129
양원적 인간 129 | 양원적 신 131 | 정신병 환자의 환각 133 | 목소리의 주인공 135 | 목소리의 위치와 기능 136 | 시각적 성분 138 | 신들의 등장 140 | 소리의 권위 142 | 순종의 통제 146
제5장 2중 뇌 149
첫째, 두 반구 모두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 156
둘째, 우반구에 신 같은 기능의 흔적이 존재한다는 것 157
셋째, 두 반구가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 163
넷째, 인지기능에서 두 반구의 차이는 신과 인간의 차이를 반영한다는 것 168
다섯째, 뇌에 대한 새로운 견해 174
제6장 문명의 기원 178
인간집단의 진화 179 | 언어의 진화 182 | 언어는 언제 진화했나 182 | 소리내기, 의미변형어(수식어), 명령어 185 | 명사들 187 | 청각적 환각의 기원 188 | 이름의 시대 190 | 농업의 출현 192 | 첫 번째 신 194 | 환각을 일으키는 왕 196 | 신-왕 197 | 문명의 계승 201

제2권 역사의 증언

제1장 신과 무덤과 우상 204
신들의 집 205 | 예리코에서 우르까지 206 | 히타이트식 변형 209 | 올멕과 마야 211 | 안데스 문명 214 | 잉카의 황금제국 216 | 살아 있는 망자 219 | 말하는 우상들 225 | 소규모 조상들 226 | 우상이론 229 | 우상들의 말 237
제2장 문자시대의 양원적 신정정치 241
메소포타미아: 소유자로서의 신 244 | 입씻기 의식 249 | 개인의 신 250 | 왕이 신이 될 때 252
이집트: 신으로서의 왕 253 | 멤피스 신학 254 | 오시리스 신, 죽은 왕의 목소리 255 | 목소리의 저택 256 | 카에 관한 새로운 이론 259 | 신정정치의 시간적인 변화 265 | 복잡성 266 | 법 개념 269
제3장 의식의 원인 277
양원적 왕국의 불안정성 278 | 문자쓰기와 함께 온 신적 권위의 약화 282 | 신들의 실패 283 | 아시리아의 생성 284 | 화산분출, 이주, 정복 287 | 의식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292 | 서사시 속의 이야기 엮기의 기원 294 | 기만에 나타나는 유사 ‘나’의 기원 296 | 자연도태 297 | 결론 298
제4장 메소포타미아의 정신 변화 300
기도 306 | 천사들의 기원 309 | 악마들 311 | 새로운 천국 313 | 점술 317 | 징조술과 그 텍스트 318 | 제비뽑기 321 | 복점 324 | 즉흥적 점술 328 | 주관성의 변두리 330 | 아시리아 서간과 구바빌론 서간의 비교 331 | 시간의 공간화 336 | 길가메시 337 | 결론 340
제5장 그리스의 지적인 의식 342
일리아스를 통해서 내다보기 345 | 선의식적 원질들 348 | 투모스 350 | 프레네스 352 | 크라디 355 | 에토르 357 | 누스 360 | 사이키 362 | 오디세우스의 계략들 364 | 어리석은 페르세우스 372 | 기원전 700년에서 기원전 600년 사이의 서정시와 만가 377 | 솔론의 정신 383 | 혼의 발명 386
제6장 카비루의 도덕적 의식 393
「아모스서」와 「전도서」의 비교 396 | 모세 5경에 관한 몇 가지 관찰들 398 | 시각적 요소의 상실 403 | 사람들 사이의 비일관성 406 | 인간 내부의 비일관성 408 | 신들에 의한 점술 409 | 「새무얼 상」 411 | 카비루의 우상들 415 | 나비임의 최후 418

제3권 현대세계에서의 양원정신의 흔적

제1장 권한위임의 추구 424
신탁 429 | 델포이 신탁 429 | 일반적 양원 패러다임 433 | 다른 신탁들 436 | 여섯 단계의 신탁 기간들 439 | 시빌 442 | 우상의 부흥 444
제2장 예언자와 신들림 현상에 대하여 452
유도된 신들림 458 | 부정적 신들림 463 | 현대의 신들림 470 | 방언 474
제3장 시와 음악에 대하여 480
시와 노래 483 | 음악의 속성 488 | 시적 영감과 신들림 491 | 타미리스에 대한 설교 500
제4장 최면 503
뉴턴적인 힘의 피석의체 505 | 최면에 걸린 사람의 변화 속성 508 | 최면유도 511 | 환각 상태와 반논리적 순종 513 | 권한위임자로서의 최면가 521 | 최면에 대한 양원적 이론의 증거 523 | 반박: 최면이 존재하나 526
제5장 정신분열증 534
역사적 기록에 있는 증거 535 | 문제의 어려움 538 | 환각 539 | 유사 ‘나’의 소멸 550 | 정신-공간의 해체 554 | 이야기 엮기의 실패 557 | 신체 이미지 경계의 혼란 559 | 정신분열증의 이점들 561 | 정신분열증의 신경학 563 | 결론 567
제6장 과학이라는 복신술 570

후기 587
인지적 폭발 599 | 자아 601 | 정서에서 감정으로 605 | 공포에서 불안으로 606 | 부끄러움에서 죄의식으로 607 | 짝짓기에서 ‘섹스’로 610

책 속으로
만일 우리가 이 망상체의 진화과정을 들여다보며 그것이 의식의 진화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를 알아보려 한다면 그들간에는 어떤 상관도 없음을 발견할 것이다. 망상체는 신경계 중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판명되었다. 사실 망상체가 신경계의 가장 오래된 부분이고, 그 주변에서 더 질서정연하고 세부적이며 더 진화된 신경다발이나 신경핵이 발달했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우리가 지금 망상체의 진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적어도 의식과 그 기원의 문제는 이와 같은 연구로는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게다가 그런 추리는 일종의 환상이다. 이 환상은 심리현상을 신경해부학과 화학으로 번역하려는 우리의 성향에서 너무도 자주 발생하고 있어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는 행동으로 미리 알고 있었던 것만을 신경계에서 알 수 있다. 우리가 비록 신경계의 완벽한 회로도를 밝혀내더라도 우리의 원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비록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종의 개별 수상돌기나 축색돌기에서 나오는 감지 가능한 가닥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고, 그 신경전달 물질은 물론 그들이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뇌에 있는 수억 개의 신경원연접에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았다 하더라도, 뇌 지식만으로는 그 뇌가 우리와 같은 의식이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우리는 먼저 위에서, 의식이 무엇인지의 개념부터, 우리의 내성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신경계를 다루거나 신경학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 점을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의식이 무엇인지 서술하면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이것이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보았고 또 그 주제에 대한 역사는 은유와 지칭 간의 혼동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았다. 모든 것이 애매해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것이 아닌 것들을 밝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다음 장에서 하려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p.43

이러한 초기 문화가 양원적 왕국으로 발전해감에 따라 이들 중요 인사들의 무덤은 점차 무기, 가구, 장신구, 그리고 특히 음식 그릇 등으로 채워져 갔다. 이것은 기원전 7000년 후의 유럽과 아시아 전역의 모든 묘실들(chamber tombs)에도 해당되며, 이들은 양원적 왕국의 크기와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극도로 정교화되어갔다. 전체가 연속적으로 지어진 복잡다단한 피라미드 내부에 있는 이집트 파라오들의 웅장한 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다음 장을 참조하라). 그러나 다소 경외감은 떨어지지만, 유사한 설치물들이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기원전 3000년경 전반부까지만 해도 우르의 제왕들은 자신들 주변에서 허리를 굽신대며 시중들고 있던 그들의 모든 종자(從者)들과 함께, 그것도 때로는 그들이 산 채로 묻혔다. 이제까지 이런 무덤 18개가 발견되었는데, 이들 지하 묘실에는 음식, 음료수, 의복, 보석, 무기, 황소 머리 모양의 수금, 심지어 수레를 장식하기 위해 멍에를 멘 채로 제물이 된 수레 끄는 동물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보다 좀 나중의 것들이 키시(Kish)와 아슈르(Ashur)에서 발견되었다. 아나톨리아의 알라카 휘위크(Alaca Huu)에 있는 황실 묘들은 잠들어 있는 주인들의 음산한 식욕을 달래기 위해 구운 황소들의 시체로 지붕을 해주었다.--- p.220

나는 지금 이 시기에 이들 문명권의 무덤에는 음식과 음료가 담긴 항아리가 내내 보편적으로 존재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일반적이긴 했으나, 예외인 경우도 있었다. 한 예로, 레오나르드 울리 경(Sir Leonard Woolley)이 메소포타미아의 라르사(Larsa)에 있는 (기원전 1900년경으로 추정되는) 한 개인 무덤을 처음으로 발굴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그 내용물이 빈약한 데 놀라움과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심지어 가장 정교하게 건축된 묘실에서도 입구쯤에 놓여 있는 한두 개의 토기 항아리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고 다른 곳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것들은 없었다. 그는 이들 무덤은 언제나 특정 주택의 지하에 있었으며, 그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여전히 망자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인 까닭에, 라르사 시대의 망자들은 묘실용 가구나 많은 양의 음식이 필요치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이에 대한 설명을 얻게 되었다. 묘실 입구에 있던 음식과 음료는 아마도 비상용이어서, 망자가 가족과 ‘어울리기’ 위하여 (올라올 때) 즐거운 기분으로 나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던 듯하다.--- p.224

현대세계에서 우리는 엄격한 권위주의적 정부 하면 군국주의와 경찰의 억압을 연상한다. 이런 연상은 양원적 시대의 권위적 국가들에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군국주의, 경찰, 공포의 지배, 이 모든 것들은 희망과 증오 같은 다양한 사적 상태로 갈려 정체성 위기를 겪으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주관적·의식적 민중을 통제하기 위해서 사용된 필사적인 조치였다. 양원적 시대에는 공포도 억압도 심지어 법도 아닌 양원적 정신 자체가 사회적 통제였다. 그곳에는 사적인 야망이나 사적인 적의나 사적인 갈등이나 사적인 어떤 것도 없다. 왜냐하면 양원적 인간에게는 사적으로 될 어떤 내적 ‘공간’ 같은 것이 없었으며, 사적으로 존재할(to be private with) 유사 ‘나’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주도권은 신의 목소리에 있었다. 그리고 신들이 스스로 성스런 법률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생긴 것은 오직 기원전 2000년경의 후기 국가연합이 통합되면서였다.--- p.278

기원전 2000년경 문자쓰기가 성공하면서 신들의 이런 한계는 경감되기도 하고 악화되기도 했다문자쓰기는 한편으로는 함무라비의 경우와 같이 시민구조의 안정을 가져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양원적 정신의 청각적 권위를 점차 침식해 들어갔다. 특별히 정부의 메시지와 회계는 점점 더 설형문자 석판에 기록되어갔다. 이들의 전체적인 문서보관처가 아직도 발견된다. 관리들의 서신은 흔한 것이 되었다. 기원전 1500년 바위투성이인 시내산의 고지대 광부들조차 자신들의 이름과 자신들과 광산 신의 관계를 벽에 새겨넣었다. 양원정신의 신적 환각성에서 명령은 청각적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청각부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된 두뇌의 피질 영역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귀먹은 진흙덩이 위에 기록되고 무언의 돌에 각인하기 시작하자, 신이 침묵을 지켰고, 신의 명령이나 왕의 지시들은 기피하게 되었고, 청각적 환각으로는 불가능했던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 바뀌게 되었다. 신의 말씀은 즉각적인 복종이 수반되는 편재적 힘을 갖는 게 아니라, 하나의 통제가능 영역(a controllable location)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p.282

제비뽑기의 심리학에 대하여 두 가지 점에 주의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첫째로, 이러한 관행은 양원정신의 붕괴 후 우반구의 기능이 더는 신의 목소리로 언어적으로 암호화되던 때처럼 들려오지 않게 되자, 이를 보충하기 위해 문화 안에서 아주 특별하게 발명된 것이다. 실험실 연구에서 우리는 공간적 정보와 모형에 관한 정보를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곳이 우반구였던 것을 안다. 이 부위는, 고의 블록 테스트(Koh’s Block Test)에서처럼, 부분들을 어떤 패턴이 되게 맞추는 일이나, 점들의 위치와 점들의 양을 하나의 모형으로 지각해내거나 멜로디 같은 소리 패턴들의 위치와 양을 지각해내는 일에 탁월하다. 제비뽑기가 해결하려는 문제 또한 동일한 종류의 것이다. 즉 패턴의 부분들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일, 누가 무엇을 하기로 되어 있는지를 선택하는 일, 또는 어떤 땅이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일 등이다. 원래 단순한 사회일수록 그러한 결정은 신이라고 불리는 환각적 목소리, 즉 일차적으로 우반구에 관련되어 있는 목소리로 쉽게 결정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아마도 이런 결정들이 점차 복잡해졌기 때문에 신들이 더는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지 않게 되자, 제비뽑기가 이러한 우반구 기능의 대리자로 역사에 등장했던 것이다.--- p.322

종교적 환각은 일종의 각성 상태에서의 꿈인 이른바 황혼 상태(twilight states)에서 특히 자주 관찰된다. 이 상태는 많은 환자에게 몇 분에서 몇 년에 걸쳐 지속되지만 가장 흔하게는 6개월 정도 지속된다. 그런 상태는 종교적 환상, 자세, 의식(儀式), 예배 등으로 특징지어지며, 환자는 환각으로 이루어진 환경 속에 살고 있어서 병원 환경 역시 지워버리는 점을 제외하면, 양원 상태 같은 환각 속에 산다. 환자는 천국의 성인들과 접촉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의사나 간호사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신이나 천사가 변장한 것이라고 믿고 있을 수 있다. 그런 환자들은 천국에 사는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하면서 기쁨으로 소리 칠 수도 있고, 신의 목소리와 대화하고 또는 밤에 별을 불러 별과 대화할 때는, 두 역할을 왔다갔다할 수도 있다. 편집증 환자는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환각 속에서 천사나 예수나 하나님이 환자에게 양원적 방식으로 이야기를 걸어오면서 어떤 새로운 방식을 알려주는 종교적 경험을 하는 따위의 정신분열적 증세를 보일 수 있다. 그는 우주의 권력자와 특별한 관계가 있음을 확신하게 되고,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자신을 병적으로 관련짓고, 환자는 더 따져볼 수도 없게 되어 몇 년 동안 그것에 사로잡히는 망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p.546

근대 과학도 이와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이 시기의 지적 영역에서도 마찬가지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소 위장된 형태를 취하긴 했지만, 크게 보면 근대 과학도 종교적 형식을 갖고 있다. 내가 과학주의라 부르고 싶은 이 경향은 일군의 과학적 아이디어들의 집합체를 이루면서 급격히 신앙적 신조로 굳은, 우리 시대에 과학과 종교가 분리되면서 남긴 공허를 채우는, 과학적 신화다. 근대 과학이 고전적 과학이나 그때 진행되던 논쟁과 다른 점은 근대 과학이 대신하려 하는 종교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이들은 가장 두드러진 특징에서 종교와 공통점이 있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합리적 우수성,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와 두드러져 비판받지 않는 지도자의 계승, 과학적 비판의 외곽에 있는 경전 같은 일련의 텍스트들, 특정한 사고 방식과 해석 방식, 그리고 완전한 헌신 요구 등에서 말이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추종자들은 종교가 한때 주었던 것을 두루 받는다. 세계관, 중요성의 위계체계, 그가 무엇을 하고 생각할지를 알려줄 복점 치는 장소, 요컨대 인간에 대한 총체적 설명을 제공받는다. 이 총체성은 모든 것을 실제로 설명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도록 그 활동과 관심을 엄격하고 절대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얻어진다.--- p.579

의식과 함께 시간의 공간화가 점차 중요성을 확보해가고 크로노스(chronos) 같은 공간화에 대한 새로운 단어도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공간화를 너무 가볍게 표현한 것이다. 의식과 여타의 인지가 상호작용 하면서 새로운 능력을 창출하는 하나의 인지적 폭발이 일어났다. 양원적 인간은 모든 포유동물들이 그렇듯이 과거의 자신에 뒤따라 일어나는 현재의 모습에 대한 인지와 행동적 예상 능력과 감각적 재인 능력이 있었다. 이에 비해 의식적 인간은 공포, 기쁨, 희망, 야심 등이 존재할 수 있는 상상의 미래를 이미 실재하는 것처럼 들여다‘볼’ 수 있으며, 또한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거나 잘했던 일을 음미하면서 과거를 ‘볼’ 수 있다. 이때 과거는 하나의 공간의 유체를 통해 나타나는데, 이것이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따라 우리는 기억 또는 회상이라 부르는 하나의 새롭고 신비로운 여정 속으로 이동하게 된다. --- p.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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