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칼럼] '한국은 중국 땅'이라는 중국夢
6·25전쟁 기간 국군 사망자는 13만 7899명, 부상자는 45만 742명에 이른다. 민간인 사상자와 실종자는 공식통계만 99만 968명에 달한다. 이런 대규모 한국인 인명피해는 누구에 의해 발생했을까.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이 지리멸렬했던 만큼 3년간 이어진 전쟁의 사상자 대부분은 중공군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중공군은 온정리전투와 현리전투 등 대규모 공세를 펼 때 미군보다 훈련이 부족하고 장비도 빈약한 국군만 집요하게 노렸다. 그런 중공군을 이끈 사령관이 펑더화이였다.
펑더화이는 국공내전 당시 서북인민해방군을 이끌며 같은 부대에서 정치장교로 활동하던 시중쉰(시진핑 현 국가주석의 아버지)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펑더화이와 시중쉰은 문화대혁명 때 함께 숙청돼 고초를 겪는 ‘운명 공동체’로 관계가 깊어졌다. 2011년 펑더화이의 고향 집을 찾아가 “대단히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평했던 시진핑 주석이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선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시 주석 발언에서 한국을 얕잡아 본 펑더화이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한국을 낮춰보는 중국인의 시선은 비단 시 주석이나 펑더화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대다수 중국인은 한국을 자신의 영역으로 여겼다. 1944년 카이로 회담 직후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가 마련한 ‘조선 문제 연구 요강 초안’에도 중국군의 한반도 파견과 한강 이북 지역을 중국군이 관리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도 적지 않은 중국인이 한반도를 ‘중국 땅’이라고 생각한다. 바이두 같은 중국 인터넷 포털에선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주장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북한은 아예 ‘중국령’이라고 단정하거나 좋게 봐줘야 ‘중국의 작은 동생’ 정도로 쳐준다.
왜곡된 인식의 배경에는 조공체제로 대표되는 중화주의 세계질서를 지향하는 중국인의 오랜 ‘로망’이 자리 잡고 있다. 아시아 다른 나라가 짧은 시기에만 조공체제에 참여했거나, 외교사절을 파견한 것을 ‘조공을 바쳤다’고 중국 측이 일방적으로 표현했던 반면 한국은 ‘역사적 실체’로서 속국(屬國), 번방(藩邦)이었다고 여긴다. 그런 조공체제의 핵심인 조선이 일본에 넘어간 것은 중국엔 뼈아픈 ‘역사의 일탈’이었다. 그들에게 한반도는 마땅히 중국의 울타리 안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제 앞가림도 하기 힘들었을 중국이 6·25전쟁 때 미국에 맞선 데에는 이런 역사 인식도 작용했다.
지난 7일 동계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과 만난 자리에서 시 주석은 “올해는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이자 한국의 광복 80주년”이라며 “불확실성이 늘어난 국제·지역 정세에 중·한 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발전을 공고히 해야 한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미국 워싱턴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중·일 간 분쟁지인 센카쿠 제도 방위를 포함한 미·일 안보 강화를 골자로 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묘한 시기에 나온, ‘반일 공동전선 구축’이 연상되는 시 주석 발언은 우연으로 넘기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 1차 탄핵소추안에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외교정책을 고집했다’는 사유를 넣었던 민주당의 행보에 ‘화답’ 성격도 없지 않아 보인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을 자신의 자장(磁場)에 넣겠다는 ‘중국몽’을 꾸고 있다. 우리는 그런 중국에 꿈에서 깨라고 답할 준비가 됐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때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출처: 한국경제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5092423?sid=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