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원사화

규원사화 단군기-3

광명인 2024. 12. 12. 06:00

[동방의 여러 산에는 ‘마이(馬耳)’나 ‘마니(摩尼)’ 등의 산이 있는데, 항간의 사람들은 뭉뚱그려 ‘마리(摩利)’라고 부를 뿐 일찍이 구별하지 않았다. 대저 ‘마이’와 ‘마니’는 모두 ‘頭’의 ‘머리’라는 뜻에서 나왔다. ‘태백’을 달리 일컬어 ‘백두’라 하였으며, 갑비고차[강화도]에서 하늘에 제사지내던 곳을 ‘두악’이라 하였는데, 이는 단지 단군이 반드시 ‘머리’라는 이름이 붙은 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 아니라,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은 반드시 ‘머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한다. 

태백이 이미 동방의 신령스러운 땅이 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큰 의식은 반드시 그 산에서 시작하였으니, 예로부터 동방 민족이 이 산을 숭상하고 공경함은 남다른 것이었다. 무릇 우리 선조들은 모두 신시씨[환웅천황]가 거느린 3천의 무리에서 나온 후예들이다. 환인(桓因)․환웅(桓雄)․단검(檀儉)의 삼신이 나라를 열고 기초를 바로잡은 공덕을 항상 전하여 예기하고 잊지 않았으니, 곧 옛 백성들이 그러한 신령스러운 산을 가리켜 ‘삼신산’이라 하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군사를 주재하는 자치우씨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치우씨는 만대에 걸쳐 굳셈과 용감함의 조상으로서 큰 안개를 일으키고 물과 불을 몰아쳐 부렸으니, 또한 만대에 걸친 도술의 근본이 된다. 한나라 고조는 풍패(豐沛)에서 병사를 일으키며 치우씨에게 제사를 지내고 북과 깃발에 희생의 피를 발랐으며, 마침내 10월에 패상(灞上)에 이르러 제후들과 더불어 함양(咸陽)을 평정하고 한나라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盖, 東方諸山, 以太白名者, 頗多. 俗士, 卒以寧邊.妙香山當之, 實由於一然《三國遺事》之說, 而彼等眼孔如豆, 安足以與論哉! 今白頭山上, 有大池, 周八十里, 鴨(淥)[綠]‧混同諸[江]發源於此, 曰天池, 卽上述神市氏乘雲朝[天]處也. 妙香, 曾無一小湾, 其不爲桓雄肇降之太白, 不足辨也. 
무릇 동방의 모든 산 중에 ‘태백(太白)’이라 이름하는 것이 자못 많은데, 세속의 선비들이 졸지에 영변의 묘향산을 그것으로 여기고 있으나 이는 그저 일연의《삼국유사》의 이야기에서 연유한 것일 뿐이니, 저들의 눈구멍이 마치 콩알 같음에 어찌 족히 더불어 논박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백두산 위에는 큰 못이 있어 주위가 80여 리며, 압록(鴨綠)혼동(混同) 등의 여러 강이 여기에서 발원하기에 ‘천지(天池)’라 일컫는데, 곧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신시씨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곳이다. 묘향산에는 일찍이 작은 물줄기 하나 없었으니, 그 곳이 환웅이 처음으로 내려온 ‘태백’이 될 수 없음은 밝힐 필요도 없다.

盖, 白頭巨岳, 盤據大荒之南, 橫 千里, 高出二百里, 雄偉山層崚蜿蜒磅礴, 爲東方諸國之鎭山. 神人陟降, 實始於此, 豈區區妙香一山, 只係狼林西走之一脉, 而得叅如許聖事耶! 世俗, 旣以妙香爲太白, 則其見, 只局於鴨水以南一隅之地, 便唱, 山之祖宗崑崙, 欣欣然以小中華自甘宜; 其貢使北行屢百年而不爲之恨, 僅以南漢下城之羞, 囂(囂)然, 自歎者也.
무릇 백두의 웅대한 산악 대황(大荒)의 남쪽에 굳게 자리하여 좌우로 1천리에 뻗치고 위로 2백리를 솟아 있으며, 웅장하면서도 층을 지은 험한 능선이 길게 이어지면서 아울러 하나가 되어 있으니, 동방의 모든 나라를 위엄으로 진압하는 명산이다. 신인의 오르내림이 실로 여기에서 처음 하였거늘, 구구하게 단지 서쪽으로 내달은 낭림의 한 줄기에 매어 달린 묘향의 산 하나가 어찌 그와 같은 많은 신성한 일들에 참여할 수 있었겠는가! 세속에선 이미 묘향태백으로 여기지만, 이는 곧 그 견해가 단지 압록강 이남의 한 모퉁이에만 국한된 것일 뿐이다. 곧잘 산의 으뜸이 되는 우두머리는 곤륜이라 노래 부르고 기꺼이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로 마땅한 듯 달갑게 여기며, 그 조공의 사절이 북으로 다닌지가 수백년이 되었으나 이는 한스러워 하지 않다가 겨우 남한산성 아래의 수치만을 떠들썩해 하니, 스스로 한탄스러울 뿐이다.

余嘗歷觀載籍, 白頭山之異名, 頗多.《山海經》曰: 「大荒之中, 有山, 名不咸, 有肅愼氏之國」.《後漢書》曰: 「東沃沮, 在高句麗.蓋馬太山之東, 東濱大海, 北與挹婁接.」 註云: 「在平壤城西.」 此, 漢士眩學之(忘)[妄]語也. 
내가 일찍이 여러 서적들을 두루 살펴 보건대 백두산의 다른 이름이 자못 많았다.《산해경》에 이르기를 「대황의 가운데 산이 있으니, 이름하여 불함(不咸)이라 하며 숙신씨의 나라가 있다」 하였으며,《후한서》에 이르기를 「동옥저는 고구려의 개마태산(蓋馬太山)의 동쪽에 있다. 동으로 큰 바다를 접해 있고 북으로 읍루와 더불어 접해 있다」 하고는 그 주석에 「평양성의 서쪽에 있다」 하였는데, 이것은 한나라 선비가 잘 알지 못하고 배웠기에 생긴 망령된 말이다.

挹婁, 乃肅愼後身, 東沃沮, 又在今咸鏡之地, 則蓋馬之(謂)[爲]太白, 可知. 且《麗史․列傳》曰: 「女眞, 本高句麗之部落, 聚居于蓋馬山東」云, 當時女眞, 明在白頭山之東北, 蓋馬之爲白頭, 明矣.《魏書․勿吉傳》曰: 「國有徒太山, 魏言太白, 有虎豹熊狼不害人, 人不得上山溲溺…」云云.《北史․勿吉傳》[曰亦](亦曰): 「國有徒太山, 華言.太白, 俗甚畏敬之.」《唐書》曰: 「粟末部居最南, 抵太白山, 亦曰徒太山, 與高麗接.」《括地志》曰: 「靺鞨, (古)[故]肅愼也, 其南有白山, 鳥獸艸木皆白.」《金史․高麗傳》述高句麗以來靺鞨之事曰: 「黑水末曷, 居故肅愼地, 有山曰白山, 蓋長白山, 金國之所起焉.」 
읍루는 곧 숙신의 후신이며 동옥저 또한 지금의 함경의 땅에 있었으니, ‘개마’가 ‘태백’이 됨을 알 수 있다. 또한《고려사․열전》에 이르기를 「여진은 본래 고구려의 한 부락이었는데 개마산의 동쪽에 모여 살았다」라 하였으니, 당시의 여진이 분명히 백두산의 동북에 있었으므로 ‘개마’가 ‘백두’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위서․물길전》에 「나라에 도태산(徒太山)이 있는데 위(魏)나라 말로는 ‘태백’이라고 한다. 범과 표범․곰․승냥이 등이 있으나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사람들은 산위에 올라가서는 방뇨를 하지 않았다」 하였고,《북사․물길전》에도 역시 「나라에 도태산(徒太山)이 있는데 중원의 말로 ‘태백’이라 하며, 풍속에 그것을 매우 삼가며 공경한다」고 하였다.《당서》에는 「속말부가 가장 남쪽에 살고 있는데, 도태산(徒太山)이라고도 일컬어지는 태백산과 맞닥뜨린 곳에서 고려와 더불어 접해 있다」 하였다.《괄지지》에는 「말갈은 옛 숙신이다. 그 남쪽에 백산(白山)이 있는데 새와 짐승이며 풀과 나무가 모두 희다」라 하였고,《금사․고려전》에는 고구려 이래 말갈의 일을 기술하며 「흑수말갈이 옛 숙신의 땅에 거주하였는데, ‘백산(白山)’이라 불리는 산이 있었으니 곧 ‘장백산’으로서 금나라가 일어난 곳이다」라고 하였다.

葉隆禮《遼志》曰: 「長白山在冷山東南千餘里, 盖白衣觀音所居, 其山內禽獸皆白, 人不敢入, 恐穢其間…」云云, 又曰: 「黑水發源于此.」《明一統志》曰: 「長白山在三萬衛東北千餘里, 故會寧府南六十里, 橫亙千里, 高二百里, 其巓有潭, 周八十里, 淵深莫測, 南流爲鴨綠江, 北流爲混同江, 東流爲阿也苦河」云. 然則, 不咸‧蓋馬‧太白‧徒太(白)[白]‧長白等名, 皆爲同山異名, 而歷代方言之異也. 又《高麗史》光宗十年: 「逐鴨綠江外女眞, 於白頭山外居之」云, 則白頭之名, 始見於此. 而蓋字之音, 近[白於](於白)字之意; 東語, 「馬」‧「頭」亦同訓, 蓋馬, 白頭之異字同意亦可明辨, 而白頭之名, 其來亦尙矣.
섭융례(葉隆禮)의《요지》에는 「장백산은 냉산(冷山)의 동쪽 1천여 리에 있으며, 대저 백의관음이 기거하는 곳이다. 그 산 안의 짐승은 모두 희다. 사람들은 그 곳을 더럽힐까 염려하여 감히 들어가지 않는다」라 하였고, 또 「흑수(黑水)가 그 곳에서 발원하였다」라 하였다.《명일통지(明一統志)》에는 「장백산은 삼만위(三萬衛) 동북쪽의 1천여 리에 있으니 옛 회녕부(會寧府)의 남쪽 60리에 있다. 좌우로 1천리에 뻗어 있고 위로 2백리를 솟아 있으며, 그 곳의 정상에 못이 있는데 주위는 80리이며 못은 깊어서 측량할 수 없다. 남쪽으로 흘러 압록강이 되고, 북쪽으로 흘러서 혼동강이 되며, 동쪽으로 흘러서 아야고하(阿也苦河)가 된다」 하였으니, 불함․개마․태백․도태․장백 등의 이름은 모두 같은 산의 다른 이름으로 역대 방언의 차이점일 뿐이다. 또《고려사》의 광종(光宗) 10년조에 「압록강 밖의 여진 백두산 밖으로 몰아내어 살게 하였다」 하였으니, 곧 ‘백두’의 이름이 처음으로 여기에서 보인다. ‘개(蓋)’의 음은 ‘백(白)’ 자의 뜻과 가까우며, 동방의 말에 ‘말(馬)’과 ‘두(頭)’는 같은 새김이기에 글자의 뜻으로 새기면 ‘개마(蓋馬)’와 ‘백두(白頭)’가 글자는 다르지만 뜻은 같은 것이 분명하므로 ‘백두’라는 이름의 유래 또한 오래된 것이라 할 것이다.

東方諸山, 有馬耳‧摩尼等山, 俗人幷以「摩利」呼之, 曾不相別. 盖馬耳‧摩尼, 幷出於頭字之意也. 今廣州有修理山, 此必「鷲山」之意也; 積城有紺岳山, 則乃「玄山」之意也; 忠州有達川, 則是「月川」之意也; 而馬耳‧摩利之爲頭嶽或頭山之訛, 尤可辨矣. 
동방의 여러 산에는 ‘마이(馬耳)’ ‘마니(摩尼)’ 등의 산이 있는데, 항간의 사람들은 뭉뚱그려 ‘마리(摩利)’라고 부를 뿐 일찍이 구별하지 않았다. 대저 ‘마이’와 ‘마니’는 모두 ‘’의 ‘머리’라는 뜻에서 나왔다. 지금의 광주에 ‘修理山’이 있는데 이는 필시 ‘수리산(鷲山)’이라는 뜻이며, 적성에 있는 ‘紺岳山’은 곧 ‘검은산(玄山)’이라는 뜻이며, 충주에 있는 ‘達川’은 바로 ‘달천(月川)’이라는 뜻이니, ‘마이’나 ‘마리’가 ‘頭嶽’ 혹은 ‘頭山’이 잘못 전해져 그리되었음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太白之一名曰白頭, 甲比古次之祭天處曰頭岳, 此非檀君祭天, 必隨「頭」名之山也, 乃檀君祭天處, 必成「頭」名之山也. 盖, 「頭」者, 最上或元首之稱也. 白頭爲東方諸山之宗, 而又是東人始降之地, 兼復, 元首檀君, 恒行祭天禮于其山, 當時之人, 名之曰頭山也, 必矣. 而甲比古次之頭嶽, 亦不出於此外也. 獨不知, 牛首河之名, 亦只出於沈牛首之俗耶? 此不可斷矣. 
‘태백’을 달리 일컬어 ‘백두’라 하였으며, 갑비고차[강화도]에서 하늘에 제사지내던 곳을 ‘두악’이라 하였는데, 이는 단지 단군이 반드시 ‘머리’라는 이름이 붙은 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 아니라 단군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은 반드시 ‘머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한다. 무릇 ‘머리’라 함은 가장 높다거나 혹은 으뜸 되는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백두’가 동방 모든 산의 으뜸이 되고, 또한 동방의 사람이 하늘로부터 처음 내려온 땅이 되며, 게다가 더하여 으뜸 되는 우두머리인 단군이 항상 그 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예식을 행하였기에 당시의 사람들이 ‘머리산(頭山)’이라 이름하였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니 갑비고차의 ‘두악’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수하(牛首河)’라는 이름은 알지 못하겠는데, 이 역시 단지 소머리를 물 속에 담그는 풍속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는 단정 지을 수 없다.

然則, 神市氏(之)降, 旣在[白頭於山](於白頭山), 乃漸(徒)[徙]西南, 復沿浿水而南來, 三氏之族, 又各四遷也. (耳)[且]太白旣爲東方靈地, 祭天大儀必始於其山, 則自古, 東民之崇敬是山也, 不尋常. (耳)[且]古(者)昔, 禽獸悉沾神化, 安捿於其山而未曾傷人, 人亦不敢上山溲溺而瀆神, 恒爲萬代敬護之表矣. 夫我先民, 皆出於神市所率三千團部之裔. 後世, 雖有諸氏之別, 實不外於檀祖同仁之神孫. 因‧雄‧儉.三神之, 開創肇定之功德, 常傳誦而不忘, 則古民指其靈山曰三神山者, 亦必矣.
그러므로 신시씨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이미 백두산에 있으면서 점차 서남쪽으로 옮기고, 다시 패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으며, 삼씨(三氏)의 겨레들은 각자 더욱더 사방으로 옮겨갔다. 또한 태백이 이미 동방의 신령스러운 땅이 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큰 의식은 반드시 그 산에서 시작하였으니, 예로부터 동방 민족이 이 산을 숭상하고 공경함은 남다른 것이었다. 또 옛날에는 짐승들이 모두 신의 교화에 젖어 그 산에 편안히 깃들여 살며 사람을 해치지 않았으며, 사람 또한 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는 등의 신을 모독하는 행위를 감히 하지 않았으니, 만대에 걸쳐 항상 받들고 보호하는 지표가 되었다. 무릇 우리 선조들은 모두 신시씨가 거느린 3천의 무리에서 나온 후예들이다. 뒷 날 비록 여러 씨(氏)의 구별이 있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단군 선조께서 똑같이 어여삐 여기는 신의 후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환인(桓因)․환웅(桓雄)․단검(檀儉)의 삼신이 나라를 열고 기초를 바로잡은 공덕을 항상 전하여 예기하고 잊지 않았으니, 곧 옛 백성들이 그러한 신령스러운 산을 가리켜 ‘삼신산’이라 하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盖, 神市以降, 神化之漸, 逐歲益深, 立國經世之本, 自與人國逈異. 其神風聖俗, 遠播於漢土, 漢土之人, 有慕於神化者, 必推崇三神, 至有東北.神明之舍之称焉. 
대저 신시씨가 하늘에서 내려온 이래로 신의 교화가 점차 세월에 따라 더욱더 깊어 감에, 나라를 세우고 세상을 경영하는 근본이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와는 자못 다르게 되었기에, 그 신성한 풍속이 멀리 한나라 땅에까지 퍼져서 한나라 땅의 사람 가운데 신의 교화를 사모하는 자가 있었으니, 오로지 삼신을 추앙하여 동북 지방에는 ‘신명의 집(神明之舍)’이라는 명칭까지 있게 되었다.

及其末流之弊, 則漸陷於荒誕不經, 愈出愈奇, 怪誕之說, 迭出於所謂燕.齊海上怪異之方士. 盖其地, 與我震邦相接, 民物之[敎](交)特盛, 自能聞風驚奇. 又推演傅會曰: 「三神山, 是蓬萊‧方丈‧瀛洲, 在渤海中…」云云. 且患其無驗, 則曰: 「望之如雲, 終莫能至…」云云, 以惑其世主.《神仙傳》又以「海中」字, 推以斷之曰: 「海上有三神山, 曰蓬萊‧方丈‧瀛洲山, 謂之三島…」云云. 
그러나 그 말단의 폐해에 이르러 곧 점차 허무맹랑함에 빠지고 더욱 기괴해지더니 괴이하고 허망한 말들이 꼬리를 물고 갈마들어 나왔는데, 심지어 ‘연나라와 제나라의 바다 위에 신선의 술법을 닦는 괴이한 사람이 있다’라고 말해지기까지 하였다. 무릇 그 땅은 우리의 진방(震邦)과 더불어 서로 접해 있어서 백성과 사물의 교류가 특히 왕성한데, 직접 그 풍문을 듣고는 놀라며 이상하게 여겼다. 또한 생각을 미루어 넓히고 억지로 이치에 맞춰 말하기를 「삼신산은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洲山)으로 발해 가운데 있다……」라고 하였다. 또한 그 증거가 없음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바라보면 마치 구름과 같은데 결국에는 능히 다다르지 못한다……」라고 말하며 세상의 주목을 미혹케 하였다.《신선전》에서는 또 ‘海中’이라는 글자만으로 추측하고 단정지어 말하기를 「바다 위에 삼신산이 있는데 봉래․방장․영주산이라 하며, 이를 일컬어 삼도(三島)라 한다」라고 하였다.

而於是「海上」‧「六鰲」, 荒怪之說, 繼出於(閑)[閒]人之(革)[筆], 乃我國之士, 則更效嚬於此, 曰: 「金剛.蓬萊也, 智異.方丈也, 漢拏.瀛洲也.」 則此, 又返咀漢士之餘唾也.《史記․封禪書》曰: 「三神山者, 其傳, 在渤海中. 盖嘗有至者, 諸僊人及不死之藥皆在焉, 其物禽獸盡白, 而黃金銀爲宮闕…」云云. 又仙家書類或曰: 「三神山, 有還魂‧不老等艸, 一名震檀」云.
이와 같이 ‘해상(海上)’이나 ‘육오(六鰲)’ 등의 황당무계한 말들이 한가로운 사람들의 붓 끝에서 연이어 나왔음에도 우리나라 선비들은 다시 그것을 억지로 흉내만 내어 「금강산이 봉래산이며, 지리산이 방장산이고, 한라산이 영주산이다」라고 말하니, 이는 또한 한나라의 선비가 뱉은 침을 도리어 받아 곱씹는 격이다.《사기》의 <봉선서>에 말하기를 「삼신산이란 발해의 바다 가운데 있다고 전해진다. 무릇 가본 적이 있는 사람에 의하면 뭇 신선들과 불사의 영약이 모두 있으며, 그 곳의 사물과 짐승들은 모두 희고 황금과 은으로 궁궐을 지었으며……」 하였고, 또한 선가(仙家)의 서책에서 혹은 말하기를 「삼신산에는 넋을 부를 수 있거나 먹으면 늙지 않는 등의 풀이 있는데 일명 ‘진단(震檀)’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今白頭山, 自古有白鹿‧白雉或白鷹之屬;《括地志》所云: 「其南有白山, 鳥獸草木皆白」者, 是也; 方士之說, 亦頗有所據也. 又白頭山一帶, 時産山蔘, 世人擬之以不老草. 山氓欲採取, 則必沐浴致齋祭山以後, 敢發, 其還魂‧不老之名, 想, 亦原於此也. 古, 烏斯帝北巡而得靈草, 則此尤驗矣. 且白頭山産紫檀樹, 從古所稱檀木者, 是也. 
지금의 백두산에는 예로부터 흰사슴이나 흰꿩 혹은 흰매의 무리가 있었으며, 이는《괄지지》에서 말한 바 대로 「그 남쪽에 ‘백산’이 있는데 날짐승과 들짐승 및 초목이 모두 희다」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니, 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의 얘기 역시 상당히 근거하는 바가 있다. 또한 백두산 일대에는 때때로 산삼이 나는데,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불로초로 생각하였다. 산에 사는 백성들이 이를 캐고자 하면 반드시 목욕하고 정성을 들여 산에 제사를 드린 후에야 감히 캐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고 하는데, ‘환혼(還魂)’이나 ‘불사(不老)’라는 이름은, 생각건대 역시 이러한 것에 근거한 것일 것이다. 옛날 오사제(烏斯帝)께서 북쪽을 순행하다 신령스러운 풀을 얻었다 하였으니, 곧 그것으로 더욱 증거가 된다. 또한 백두산에는 자단수(紫檀樹)가 나는데 예로부터 단목(檀木)이라 일컫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而古記所傳, 九変震檀之說, 想, 必有因於此, 而「不老震檀…」云云者, 盖亦聽者之錯誤也. 然則, 燕.齊方士, 扼腕而言「海中三山」者, 亦並遊於夢中, 欺其主而又自欺也. 今我國有 「願得三山不老草, 拜獻高堂白髮親」之句, 殆爲養老者, 春祝之定文, 究其原則, 亦可噴飯. 何不, 卽往白頭山, 拜檀帝之靈, 而祈其萬壽耶?
생각건대 옛 기록에 전하는 ‘구변진단(九変震檀)’이란 얘기는 반드시 이러한 것에 연유함이 있을 것이나 ‘불로진단(不老震檀)’ 운운하는 것은 아마도 역시 전해들은 사람의 착오일 것이다. 그러한 즉, 연나라와 제나라의 방사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바다 속의 삼신산’을 말하는 것 역시 똑 같이 꿈속을 노닐며 그 주인을 속이고 또한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된다. 지금 우리나라에 「원하건대 삼신산의 불로초를 얻어, 윗채에 계신 백발의 어버이에게 바치고자 한다」는 글귀가 있으니, 아마도 노인을 봉양하는 자가 젊음을 찾아 드리고자 하는 전형적인 글인 것 같은데, 그 근원을 따져 보면 역시 웃음을 참지 못할 뿐이다. 어찌하여 백두산에 가서 단제(檀帝)의 영정에 절을 하고 만수를 기원하지 않는 것인가?

漢.淮陽之地, 古陳國地, 本太昊之墟, 婦人崇好祭祀用史巫, 故其俗崇巫鬼.《陳詩》曰: 「坎其擊鼓, 宛丘之下. 亡冬亡夏, 値其鷺羽.」 又曰: 「東門之枌, 宛丘之栩. 子仲之子, 婆娑其下.」 吳札, 聞其歌則曰: 「國亡主, 其能久乎?」云. 此 又伏犧所傳, 倚數觀變之餘弊也.
한나라 회양(淮陽) 땅은 옛적 진(陳)나라의 땅으로 본디 태호씨(太昊氏)의 옛터인데, 그 땅의 부인들이 제사지내 받들기를 좋아하여 화려하게 꾸민 무당을 이용하였기에 그 곳의 풍속은 무당과 도깨비를 숭상하게 되었다.《시경》의 <진시(陳詩)>에서 이르기를, 그 북을 둥둥치며 완구(宛丘) 아래에서 놀고 있네. 겨울이나 여름도 잊고 저 백로깃을 가지고 춤추네. 또 이르기를, 동문(東門)에는 흰느릅나무 완구땅에는 상수리 나무. 자중(子仲)씨 딸이 그 아래서 덩실덩실 춤을 추네.라 하니, 오찰(吳札)이 그 노래를 듣고는 말하기를 「나라는 망하고 주인은 없는데 그 향락이 오래 가겠는가?」 하였다. 이는 또한 복희씨가 전한 ‘의수관변(倚數觀變)’의 남겨진 폐단이다.

《孟子》[舜曰](曰: 「舜)生諸馮, 東夷之人也.」《尙書》曰: 「舜肆類于上帝, 禋于六宗, 望秩于山川, 徧于羣神.」 虞舜以前, 曾無是事, 此或原於上古東邦祭天報本之禮, 及山嶽‧河川‧洋海‧沼澤, 皆有奉命主治之神者也. 
맹자》에 이르기를 「순(舜)은 제풍(諸馮)에서 났으며 동이 사람이다」라고 하였으며,《상서》에 이르기를 「순(舜)에 이르러 드디어 상제(上帝)에게 성대히 를 올리고, 육종(六宗)에게 정성으로 제사를 지내며, 섶을 태워 멀리 산천에 제를 지내고, 여러 신들에게 두루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다. 우순(虞舜) 이전에는 일찍이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옛적에 동방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고 그 근본에 보답한다’는 예식과, ‘산악․하천․해양․소택에 있어서도 모두 하늘의 명을 받들어 맡은 곳을 주관하여 다스리는 신이 있다’는 생각에서 근원하였을 것이다.

漢土, 自古, 以雍州積高爲神明之隩, 故立畤郊上帝, 諸神祠皆聚云, 則此又與檀祖祭太白, 同其類也. 齊俗有八神之祭, 八神者曰天主‧地主‧兵主‧陰主‧陽主‧月主‧日主及四時主也. 天好陰, 故祠之必於高山之下‧小山之上, 此祭天太白之麓之類也. 地貴陽, 祭之必於澤中圜丘, 此祭天頭嶽之類也. 
한나라 땅에는 예로부터 옹주(雍州)의 높은 산을 신명이 거처하는 곳으로 여기고 제사 터를 세워 상제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뭇 신들의 사당 또한 모두 그 곳에 모여 있다 하니, 이는 또한 단군이 태백에서 제사지내던 것과 같은 것이다. 제(齊)나라의 풍속에 ‘팔신제(八神祭)’라는 것이 있는데, 여덟 신이라 함은 천주(天主)․지주(地主)․병주(兵主)․음주(陰主)․양주(陽主)․월주(月主)․일주(日主) 및 사시주(四時主)를 말한다하늘은 음(陰)을 좋아하기에 제를 올릴 때는 반드시 높은 산 아래의 작은 산 위에서 지냈으니 이는 태백산의 기슭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던 것과 같은 것이며, 땅은 양(陽)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제사를 지낼 때는 반드시 못 가운데의 둥근 언덕에서 지냈으니 이는 두악(頭嶽)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던 것과 같은 것이다.

兵主, 祠蚩尤, 蚩尤氏爲萬代强勇之祖, 作大霧, 驅水火, 又爲萬代道術之宗. 是以, 太初之世, 恒爲東方戎事之主, 海岱一帶, 曾爲其族虎據之地. 藍侯之民, 再進而建奄‧徐諸國於淮岱之地, 則八神之說, 萌於是時也.
군사를 주재하는 자는 치우씨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치우씨는 만대에 걸쳐 굳셈과 용감함의 조상으로서 큰 안개를 일으키고 물과 불을 몰아쳐 부렸으니, 또한 만대에 걸친 도술의 근본이 된다. 그러한 까닭에 태초의 세상에서는 항상 동방의 군사(軍事)를 주재하는 자가 되었으며, 해대(海岱) 일대는 일찍부터 그의 부족들이 자리잡고 앉은 땅이 되었다. 남후(藍侯)의 백성들이 다시 더욱 나아가서 엄국(奄國)과 서국(徐國) 등의 뭇 나라들을 회대(淮岱)의 땅에 세웠으니, ‘팔신(八神)’ 등의 얘기는 이 때 싹튼 것이다.

漢.高起兵於豊沛, 則祠蚩尤, 釁鼓旗, 遂以十月至灞上, 與諸侯平咸陽, 而立爲漢王, 則因以十月爲年首. 此雖, 襲於秦之正朔, 而亦有因於敬蚩尤也. 後四歲, 天下已定, 則令祝官, 立蚩尤之祠於長安, 其敬蚩尤之篤如此.
한나라 고조는 풍패(豐沛)에서 병사를 일으키며 치우씨에게 제사를 지내고 북과 깃발에 희생의 피를 발랐으며, 마침내 10월에 패상(灞上)에 이르러 제후들과 더불어 함양(咸陽)을 평정하고 한나라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런 연유로 10월을 새해의 시작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비록 진(秦)의 책력을 이어서 따른 것이긴 하지만 역시 치우씨를 공경함에서 연유되었다 할 것이다. 그 뒤 4년에 천하가 이미 안정되자 곧 축관(祝官)에게 명하여 치우씨의 사당을 장안에 세우게 하였으니, 치우씨를 공경함이 이와 같이 돈독하였다.

《晋書․天文志》「蚩尤旗類彗而後曲象旗, 主所見之方下, 有兵」云, 則是乃蚩尤氏, 上爲列宿也.《通志․氏族略》「蚩氏, 蚩尤之後也」云, 則是蚩尤氏之後而永居於漢土者也. 蚩尤氏之英風雄烈‧播傳異域之深, 推此可知, 而今世人, 殆無過問者, 則此, 又國史散滅之故也, 而後代學者, 竟不免疎迂之譏矣.
진서․천문지》에 치우기(蚩尤旗) 유형의 혜성은 그 뒷 꼬리의 곡선이 마치 깃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주로 나타나는 방향의 아래에는 병사가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곧 치우씨가 하늘로 올라가서 별자리가 되었음을 말한다.《통지․씨족략》에 「치(蚩)씨는 치우의 후손이다」라 하였으니, 곧 이들은 치우씨의 후손으로서 영원히 한나라 땅에 머무른 자들이다. 치우씨의 영웅된 기풍은 다른 지역까지 매우 널리 퍼졌음을 이로 미루어 알 수 있으나 지금의 세상 사람들 가운데 이를 물어 오는 자가 거의 없으니, 곧 이는 또한 나라의 역사가 흩어지고 없어진 까닭이기도 하지만, 후대의 학자들도 그것을 소흘히하고 멀리하였다는 비난을 결국에는 면할 수 없을 것이다.

盖, 燕.齊之士, 沈惑於神異之說, 亦尙矣. 自齊.威宣‧燕.昭之時, 遣使求三神山. 秦.漢之際, 宋無忌‧正伯‧僑克‧尙羡‧門子高之徒, 則皆燕人也; 文成‧五利‧公孫卿‧申公之屬, 皆齊人[人]也. 昔, 太公治齊, 修道術, 後世其地, 多好經術者. 則此又太公爲之助俗也, 燕.齊之士, 安得以不好怪異之說哉!
무릇 제나라와 연나라의 선비들은 신비하고 괴이한 말에 깊이 현혹되고 또한 이를 높이 여겼다. 제나라의 위왕(威王)과 선왕(宣王) 및 연나라의 소왕(昭王) 때부터 사신을 보내 삼신산을 찾게 하였으니, 진(秦)과 한(漢) 때의 송무기(宋無忌)․정백(正伯)․교극(僑克)․상선(尙羨)․문자고(門子高) 같은 무리는 모두 연나라 사람이고, 문성(文成)․오리(五利)․공손경(公孫卿)․신공(申公) 등의 무리는 모두 제나라 사람이다. 옛날 태공(太公)이 제나라를 다스리며 도술을 닦았더니, 뒷날 그 땅의 사람들이 도술 부리는 것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곧 이것은 또한 태공이 세상의 풍속을 그렇게 이끈 것이므로, 연나라와 제나라의 선비들이 어찌 괴이한 말들을 좋아하지 않았겠는가.

余幼而嫌梳頭, 老婢諭曰: 「不梳頭者, 蚤虱鑽穴, 將至耳腦相通, 寧不懼乎?」 余曰: 「寧有是事乎?」 曰: 「東部山邨之兒, 正如是矣.」 及後, 到山村, 無有是事. 嘗與客坐談, 客曰: 「木之最大者, 有(經)[徑]數間者.」 曰: 「寧有是事乎?」 曰: 「嶺東之地, 多斯木, 斫而橫之, 則行旅可連枕而宿其上, 一面至(數十人)[十數人].」 其後, 余隨舍叔父, 至嶺東, 曾無是木. 
내가 어렸을 때 머리에 빗질하기를 싫어하였더니 늙은 종이 빗대어 말하기를 “머리를 빗지 않으면 이가 구멍을 뚫어 장차 귀와 뇌가 서로 통하게 되기에 이르는데 어찌 두렵지 않는가?”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였더니, “동쪽 산골 마을의 아이가 바로 그렇게 되었다”고 하여, 나중에 산 마을에 가 보았더니 그런 일이 있은 적이 없었다 한다. 한번은 손님과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데 손님이 말하기를 “나무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직경이 몇 칸이나 되는 것이 있습니다”라고 하기에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더니, “영동 땅에 그런 나무가 많습니다. 베어서 가로질러 놓으면 지나가는 나그네가 그 위에서 배게를 나란히 하고 누워 잘 수 있는데, 한 쪽 면에 열 명이 넘는 사람이 누울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후에 내가 작은 아버님을 따라 영동에 가 보았더니 일찍이 그러한 나무는 없었다 한다.

及讀《莊子》曰: 「北溟有魚, 其名爲鯤, 化而爲鳥, 其名爲鵬, 其長數千里, 其翼若垂天之雲.」 余問於師曰: 「可信有此事否?」 曰: 「窮髮之北, 安知, 其必無耶?」 雖然, 其後歷觀載籍, 且無是語. 今, 大荒數萬里, 未聞有數千[里]巨湖, 且寒威酷烈, 絶冠天下, 安容如許大物, 能逍遙於寒熱兩極之間耶? 其云「摶扶搖而上[者](有)九萬里」者, 欲杜世人之辨也. 
장자》를 읽으니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은 곤(鯤)이다. 변화하여 새가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하는데, 그 길이는 수천리가 되며 그 날개는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도 같다」라 하였다. 내가 스승에게 여쭙기를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은 믿을 만한 것입니까?” 하니 “초목이 나지 않는 북극 지방인데 어찌 알겠냐 마는 그것이 반드시 없다고만 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 그리하여 비록 그 후에 모든 서적들을 낱낱이 살펴보았지만 또한 그러한 말은 없었다. 지금에 대황의 수만 리 넓은 땅에 수천 리에 걸친 큰 호수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으며, 또한 추위의 위세가 혹심하기로 으뜸인 하늘 아래 어찌 그와 같은 큰 사물을 받아들여서 능히 춥고 더운 양극 사이를 유유자적히 노닐게 할 수가 있겠는가. 「큰 바람을 북돋우며 9만리의 상공으로 오른다」라고 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분별을 가로막기 위해서이다.

又看《神異經》曰: 「崑崙之西, 有大蛇繞山, 長三萬里…」云云. 長三萬里大蛇, 盤據於崑崙之西, 則西域諸國, 應遊牧於鱗角之下, 世間寧有是事耶? 盖喜作迂怪之說者, 必藉於聽者之所不知. 此, 漢土迂怪之士, 只憑東方三神之說, 而囂囂然, 胥出浮言, 以惑其聽者也.
또한《신이경(神異經)》을 보았더니 「곤륜산의 서쪽에 큰 뱀이 있어 산을 휘어 감고 있는데 그 길이가 3만리이다」 하였다. 길이가 3만리나 되는 큰 뱀이 곤륜의 서쪽에 또아리를 틀고 앉았으면 서역의 뭇 나라들이 응당 그 비늘조각 아래에서 짐승을 길렀을 터인데, 세상에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무릇 이상한 말을 짓기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듣는 사람이 모르는 것을 빌미로 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한나라 땅의 기괴한 선비들도 단지 동방의 삼신 예기에 빙자하여 공연히 시끄럽게 거짓말을 퍼트려 인심을 선동하고 이로서 듣는 자들을 미혹케 하였다.

高麗.仁宗九年, 因妖僧妙淸之說, 置八聖堂于西京.林原宮中. 淸平爲之說曰: 「第一曰護國白頭嶽太白仙人, 有大(彗)[慧]大德, 助主神, 造大界, 卽桓雄天王之謂也. 第二曰龍圍嶽六通尊者, 有変化萬理之能, 掌人間禍福. 第三曰月城嶽天仙, 掌風雨之神. 第四曰駒麗平壤仙人, 掌光明之神. 第五曰句麗木覓仙人, 掌人間壽命之神. 第六曰松嶽震主, 有大勇大力, 掌神兵, 恒鎭守國都, 以驅外敵, 卽古蚩尤氏之神. 第七曰甑城嶽神人, 掌四時穀蔬草木之事, 卽古高矢氏之神. 第八曰頭嶽天女, 掌地上善惡, 卽神市氏之后‧桓儉神人之母. 皆在主神調度之下, 掌治天下諸事之神…」云云. 

고려 인종(仁宗) 9년에 요승 묘청(妙淸)의 말로 말미암아 서경의 임원궁에 팔성당(八聖堂)이 설치되었다. 청평이 그 예기를 보충하여 이르기를 「그 첫번째를 호국백두악(護國白頭嶽)의 태백선인(太白仙人)이라 하는데, 큰 지혜와 큰 덕을 지니고 주신을 도와 큰 세상을 만드니 곧 환웅천왕을 일컫는 것이다. 그 두번째를 용위악(龍圍嶽)의 육통존자(六通尊者)라 하는데, 1만 가지의 이치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길융화복을 관장하고 있다. 그 세번째를 월성악(月城嶽)의 천선(天仙)이라 하는데, 바람과 비를 관장하는 신이다. 그 네번째를 구려(駒麗)의 평양선인(平壤仙人)이라 하는데, 광명을 관장하는 신이다. 그 다섯번째를 구려(句麗)의 목멱선인(木覓仙人)이라 하는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이다. 그 여섯번째를 송악(松嶽)의 진주(震主)라 하는데, 큰 용기와 큰 힘을 지니고서 신의 군사를 관장하고 항시 나라의 도읍을 지키며 외적을 몰아내니 곧 예전의 치우씨 신이다. 그 일곱번째를 증성악(甑城嶽)의 선인(神人)이라 하는데, 사시(四時)와 곡식 채소 및 초목의 일을 관장하니 곧 예전의 고시씨 신이다. 그 여덟번째를 두악(頭嶽)의 천녀(天女)라 하는데, 땅위의 선악을 관장하니 곧 예전 신시씨의 황후이며 환검신인의 어머니이다. 이들 모두가 주신의 영도 아래 있으면서 천하의 모든 일을 관장하여 다스리는 신이다」라고 하였다.

盖仁宗之於妙淸, 信惑太甚, 卒致西京之變, 使金富軾討平. 妙淸, 發身於沙門, 蠱惑其世主, 寵傾宗戚, 權壓內外, 漸致驕傲, 敢謀不軌, 其罪固不可誅. 然而, 當時猶有, 恨國力之不振, 憤外侮之荐至, 採古來之神明於殘散傳說之中, 欲以激當時之人心, 其行雖乖, 其志則猶有可采者矣. 古之說史者, 只以妖僧荒誕之說, 唾棄而不采, 則猶有一分迂踈之責[八聖矣](矣. 八聖)之名, 必表以佛家名字, 僧侶之筆, 安不得如斯耶? 此不可深怪也.

무릇 인종이 묘청에 대하여 믿고서 현혹됨이 너무 심하여 결국에는 서경의 변란이 일어나기에 이르자, 김부식으로 하여금 토벌하여 평정하게 하였다. 묘청은 불문(佛門)에서 몸을 일으켜 임금의 마음을 미혹시키고 종친과 외척의 총애를 독차지하여 권력으로 안팎을 누르고는 점차로 교만해져 감히 모반을 도모하고자 하였으니, 그 죄는 진실로 주살 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당시에도 여전히 국력이 위세를 일으키지 못함을 한탄하고 외적들의 업신여김이 거듭됨을 분개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에 헤지고 흩어져 전해 내려온 얘기 가운데에서나마 예로부터 내려오는 신명(神明)을 골라내어 이로서 당시의 인심을 격앙시키고자 하였으니, 그 행위는 비록 어그러졌다 하지만 그 뜻은 오히려 가려서 취할 만한 것이 있다고 할 것이다. 옛적에 역사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단지 요승의 황당무계한 말만을 들어 침을 내뱉듯이 버리고는 가려서 취하지 않았으니, 이는 오히려 조금은 그 일에 어둡고 소홀한 책임이 있다 하겠다. 여덟 성인의 이름을 반드시 불가의 이름으로 나타낸 것은 승려의 글이기에 어찌 그와 같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는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